尹 ‘우크라·대만’ 말 한마디에 얼어붙은 ‘한·러-한·중’ 관계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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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中, 심각 외교 결례”…대통령실 “러 행동 보고 판단할 것”
野 “대통령이 일방·굴종외교로 국익 해쳐”…신냉전 고착화 우려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과 윤석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REUTERS=연합뉴스 대통령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과 윤석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REUTERS=연합뉴스·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한·러’는 물론 ‘한·중’ 관계까지 급격히 얼어붙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대만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발언하면서다. 이에 러시아와 중국이 잇달아 반발하자 외교부는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지난 20일 중국 외교당국이 ‘윤 대통령이 말참견을 했다’며 비판한 것에 대해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강하게 항의했다. 외교부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 국격을 의심케 하는 것”이라며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호진 외교부 제1차관은 같은 날 저녁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도 초치했다. 장 차관은 싱 대사에게 “우리 정상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언급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무례한 발언을 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 측이 이번 건으로 인해 양국관계 발전에 불필요한 지장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일 보도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대만 간 양안(兩岸) 갈등에 대해 “결국 이런 긴장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린 국제사회와 함께 이런 변경을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 간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중국 측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중국은 그간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중국 대륙과 홍콩·마카오·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만이 합법적 정부라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타국의 대만 언급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고 크게 반발해 왔다. 해당 사안은 미·중 갈등에서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이며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 해결은 중국의 몫이다. 타인의 말참견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을 ‘말참견’으로 규정한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도 ‘가시밭길’이 점쳐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20일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발언에 대해 “가정적 상황에 대한 표현”이라면서도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행동할지 향후 러시아 행동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과 관련해 대규모 민간인 공격과 대량 학살이 자행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긴 어려울 수 있다”며 조건부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러시아 외교부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무기 제공도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며 즉각 반발에 나섰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도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시작한다는 건 이 전쟁에 일정 부분 개입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한국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자국산 최신무기의 대북 지원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에선 윤 대통령이 미국에 치우친 ‘일방 외교’로 국익을 해치고 있다며 공세에 돌입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헌법은 안전 보장 및 국가·국민에 중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 국군의 외국 파견 등은 국회 비준을 받도록 한다”며 “이런 문제일수록 국민에게 먼저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이 독단 결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결국 미국을 향한 ‘굴종 외교’ 성격을 띤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미국과 얘기가 된 ‘하청 발언’이라면 미국도, 윤 대통령도 용납될 수 없다”며 “알아서 긴 ‘선제적 굴종’이라면 즉각 (발언을) 취소하고, 러시아에 해명하고, 국민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한·중, 한·러 관계 악화로 ‘한·미·일-북·중·러’라는 이른바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은 신냉전 구도 최전선에 한국을 내세우고 있다”며 “프랑스와 브라질 등이 미·중 진영 대결에서 균형 외교 노선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불안정한 세계정세 속에서 맹목적 미국 추종은 한국 경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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