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이 다했다는 ‘최선’, 피해자 아닌 일본 정부 위한 것”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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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인터뷰서 “설득에 최선”…징용 피해자 측 “들러리만 세워”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4월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대일 외교 정책 방향과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외신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윤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한 대상이 피해자가 아닌 '일본 정부'라며 탄식을 쏟아낸다. 정작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복귀(수출 심사 우대국)를 포함해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한국 자세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26일 야권과 시민사회계는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 순방 직전 워싱턴포스트(WP)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을 두고 거센 질타를 쏟아냈다. 

 

"피해자 들러리만 세운 정부…설득 아닌 배제"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라며 "설득하는 문제에 있어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대통령 발언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동시에 피해자의 요구를 외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일갈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여러 차례 면담과 토론 등이 있었지만 이 절차들이 모두 "폭력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정부 정책 추진 이유와 배경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또 경청하는 '설득의 시간'이 아니라 미리 결론을 정해 놓은 뒤 피해자들을 들러리 세우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강제징용 '제3자 배상안' 발표 전 여러 과정에서 형식상으로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일관되게 피해자를 배제하는 방향이었다고 성토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외교부는 강제징용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자산 매각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에 판결 보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내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를 정면으로 막은 데 이어 박진 장관이 직접 양금덕 할머니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더니, 정작 뒤에서는 양 할머니의 인권상 수상까지 노골적으로 막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해법안 도출 전후 과정 전반에서 우리 정부가 피해자를 우선에 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며 "정부는 줄곧 일본이 요구한 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3월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을 마친 뒤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3월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을 마친 뒤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연합뉴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도 윤 대통령이 언급한 '최선을 다한 설득' 주체에 피해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임 변호사는 "지난 3월 배상안 발표가 있기 전 정부는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사과' 요구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피해자들은 이를 믿고 대화 테이블에 앉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꺼내든 것은 한국 기업이 배상금을 변제하는 '제3자 배상안'이었고,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설명도 협상도 없었다는 것이 피해자 측 주장이다.

양금덕 할머니 등 생존 피해자들도 정부 결정에 반발하는 시위에 직접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며 사실상 일본에 면죄부를 준 발언과 판단에 분노를 드러냈다. 

임 변호사는 "(제3자 배상안 발표 이후에도) 확정된 안을 받을지 말지 (피해자들에게) '통보'를 한 것이지 '설득'의 과정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9월2일 오후 자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만난 모습 ⓒ연합뉴스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2022년 9월2일 자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만난 모습 ⓒ연합뉴스

느긋한 일본 "한국 자세 지켜보겠다" 궤변

외교부는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안을 거부한 피해 생존자 양금덕(94)·김성주(95) 할머니와 이춘식(99) 할아버지에 대한 '설득'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승소 확정을 받은 피해자 15명 가운데 피해자 10명의 유족은 판결금 지급에 동의했다. 

생존 피해자 3명과 피해자 2명의 유족 등 5명은 정부 해법에 반발하며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지만, 피해자들은 정부안 수용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방식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둘러싼 국내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는 반면 일본 정부는 느긋한 입장이다.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안 제시와 한·일 정상회담 후에도 일본은 '물컵의 반을 채우라'는 요구에 '성의 있는'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복귀에 대해서도 확답을 피하며 연일 "한국 측 자세를 지켜보겠다"는 답변만 반복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한국이 자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킨 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며 "한국 측의 향후 자세를 신중하게 지켜보겠다"며 "결론이 있지 않아서 책임 있는 판단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 자세를 신중히 파악해 그에 따른 판단을 하겠다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의 전날 기자회견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한·일 관계에서 계속 '우위'를 가져 가겠다는 일본 정부 측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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