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글로벌세아·BFG·DN까지…5조 클럽 중견기업들의 반란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2 11: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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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2곳 중 6곳이 대기업 신규 지정…이차전지 등 추진 기업 두각
교보·두나무·금호·대우조선 등 기업집단 소멸되거나 강등
 

올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갈 대기업들이 새롭게 공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25일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대기업집단’으로도 불린다. 대기업집단은 일부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과 상호출자 금지 등 전체 규제를 적용받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으로 나뉜다. 이들 기업에는 기업집단 현황, 비상장사 주요 사항, 대규모 내부거래 등에 대한 공시 의무가 부여된다.

5월1일자로 지정되는 자산 5조원 이상 공시집단은 82개로 작년보다 6개 늘었다. 자산총액 상위 5대 기업은 삼성(1위), SK(2위), 현대자동차(3위), LG(4위), 포스코(5위) 순이다. 2010년부터 5위를 지켰던 롯데는 포스코에 밀려 6위가 됐다. 이 외에 국내 10대 기업의 재계 순위 변화는 없었다. 아울러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공개 매수해 지분 30% 이상 최다 출자자가 되면서 SM엔터테인먼트도 상호출자제한 규제를 받게 됐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4월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4월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82곳 중 6곳, 대기업 신규 지정

이번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주목되는 점은 대중에게 생소한 중견기업들의 ‘대약진’이다. LX(44위), 에코프로(62위), 고려에이치씨(69위), 글로벌세아(71위), DN(73위), 한솔(77위), 삼표(80위), BGF(82위) 등 8곳이 대기업집단에 합류하면서 재계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신사업 성장과 인수합병(M&A) 등으로 몸집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전기차 등 신산업 성장에 따라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수가 증가했다. 특히, 8개 신규 지정집단 중 에코프로, 고려에이치씨, 글로벌세아, DN의 경우 자산총액이 전년보다 2조원 이상 급증했다”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시장 성장, 해운운임 상승 등에 따라 해운·온라인 유통 업종 주력 집단들의 자산총액 기준 순위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독립 경영에 나선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2년 만에 대기업 총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반도체, 물류, 상사가 주력 업종인 LX그룹은 자산총액이 2021년 출범 당시  8조원에서 지난해 11조2730억원으로 늘어났다. LX그룹은 지주사인 LX홀딩스를 주축으로 LX인터내셔널, LX하우시스, LX판토스 등을 거느리고 있다. 구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그의 조카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도 신흥 재벌 총수가 됐다. 전기차 이차전지 소재 기업 에코프로의 자산총액은 6조9400억원이다. 전년 대비 자산 증가 규모는 2조5800원으로 신규 지정집단 가운데 최대다. 2007년 코스닥에 상장한 에코프로는 현재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과 함께 코스닥 시총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기환경 개선 솔루션 자회사 에코프로에이치엔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79.5% 급증했다. 전기차로 인해 이차전지 시장이 폭풍 성장하면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고려해운을 주력 계열사로 둔 고려HC도 신규 대기업집단에 지정돼 눈길을 끈다. 1954년 설립된 고려해운은 일본, 중국, 동남아, 러시아, 인도 등의 컨테이너 정기 노선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 해운사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5조118억원으로 2021년 대비 무려 1조3000억원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조7918억원을 기록하면서, 1603억원이었던 2020년과 비교해 9배 이상 뛰었다. 고려HC 동일인(총수)으로는 박정석 고려해운 회장이 지정됐다. 박정석 회장은 부친 박현규 전 고려해운 사장에 이은 2대째 전문경영인이었지만, 고려해운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주주 지위에 올랐다. 

의류 브랜드 OEM 생산을 하던 글로벌세아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급격하게 몸집이 불어났다. 지난해 말 쌍용건설을 인수하면서 유형자산 재평가 등으로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 급증한 것이다. 아울러 신사업 확장을 위해 2018년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부문을 인수해 플랜트,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20년에는 국내 1위 골판지 상자 제조사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을 품에 안았다. 

금호·대우조선, M&A로 기업집단 소멸 

반대로 자산총액 하락으로 인한 대기업집단 순위 하락도 눈에 띄었다. 먼저 현대해상화재보험과 일진그룹이 2023년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현대해상은 금리 상승에 따른 매도가능채권 가치가 하락했으며, 일진은 자회사 매각 등으로 자산총액이 크게 감소했다. 교보생명보험(13조→9조원)과 두나무(10조→7조원)도 자산총액이 감소하면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기업들이 포함된 상호출자제한집단 기업에서 제외됐다. 이 외에 금호아시아나와 대우조선해양 등은 각각 한진과 한화에 주력회사가 매각돼 기업집단에서 소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해 ‘외국인 동일인(총수)’들에 대한 뒷말도 끊이지 않는다. 공정위가 외국인 총수 기준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2023년 외국인 총수는 미국 국적자인 이우현 OCI 부회장과 김범석 쿠팡 의장이다. 먼저 미국 국적이라는 게 뒤늦게 확인된 이우현 회장은 외국인 총수로 지정됐다. 자연스럽게 재계 시선은 김범석 의장에게 쏠렸다. 그동안 김 의장은 규제 미비와 함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총수에 지정되지 않았다. 2021년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쿠팡은 3년째 ‘총수 없는 기업’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외국인임에도, 공정위는 두 사람에 대해 각각 다른 판단을 한 것이다. 현행법상 대기업집단 총수로 지정되면 배우자나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 등과의 거래를 모두 공시해야 하며,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 사정권에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김 의장은 총수에 지정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반면, 이우현 부회장은 외국 국적자임에도 2018년부터 OCI 총수로 지정돼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연합뉴스·에코프로 홈페이지
구본준 LX 회장,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 ⓒ연합뉴스·에코프로 홈페이지

여전히 뒷말 많은 ‘외국인 총수’ 지정

공정위는 이우현 회장과 김범석 의장의 총수 지정과 관련해 ‘규제 대상 회사의 범위’가 다르다고 판단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OCI는 총수 친족이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라는 점에서 총수를 법인으로 변경하게 되면 규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쿠팡은 김범석 의장의 국내 개인회사, 국내 친족회사가 없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의 범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총수에 대한 제도가 미비한 측면도 있다.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이 주된 내용인 공정거래법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총수를 규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법 집행이 어려울뿐더러, 통상 분쟁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공정위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추가 협의하며,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총수 2세가 외국 국적을 가진 대기업집단이 16개(31명)에 달하는 등 명확하지 않은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은 추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재계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은 마냥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기업이 막대한 영향력과 자산 규모를 갖추면서 명실공히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반대로 각종 규제와 공시 의무를 지게 되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대기업집단은 강도 높은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으며, 경영자는 공정위에 자료를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했을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관리·감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오너 입장에서 공시자료 대기업집단에 포함돼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내부거래 규제와 특수관계자 지분 현황 등 모든 걸 공개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자산 규모를 축소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각종 규제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범위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재계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2024년부터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으로 바꾼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도 5조원에서 7조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올해 기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82개사 중 21개사가 빠지게 된다. 에코프로 등 새롭게 대기업집단에 편입된 6개사가 모두 제외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공시집단은 말 그대로 대기업집단에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각종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외부의 견제·감시를 가능하게 하고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사익편취 행위와 같은 불공정 관행을 차단하는 중요한 수단이다”라면서 “공시집단 기준 상향은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를 면제해 준다는 것으로 시장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공정위가 중대한 불공정 행위인 사익편취 행위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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