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떤 교통법규도 사람보다 소중하지 않다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10:05
  • 호수 1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에 지인 두 명과 오사카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해프닝 때문에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다. 출발 2시간 전에 인천공항에서 지인들과 만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 줄을 섰다. 우리 앞에 두 줄이 형성되었는데 나는 오른쪽 줄에, 지인들은 왼쪽 줄 뒤에 섰다. 내가 선 줄은 시간이 갈수록 줄이 짧아지는데, 지인들이 선 왼쪽 줄은 이상하리만큼 느리게 수속이 진행되었다.

왼쪽 줄의 검색을 담당하는 직원이 안경을 썼는데 그의 눈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혹은 성격이 치밀해서인지 여권을 보고 또 보는 모습이 멀리서도 감지되었다.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지인들에게 탑승시각에 늦을지도 모르니 내 옆에 붙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앞사람에게 탑승시간이 적힌 항공권을 보여주며 양해를 구하고 내게 붙으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자기 줄에 서있겠다는 지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 먼저 검색대를 통과해 셔틀을 타고 A항공사의 탑승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도록 지인들이 오지 않아 초조했다. 항공사 직원에게 동행인을 기다렸다 같이 탑승하겠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간청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방금 셔틀을 탔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는 내가 잡아두고 있을 테니 어서 오라’고 큰소리쳤지만 앞이 캄캄했다. “어서 탑승하세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셔틀에서 내렸대요. 곧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동행인들과 함께가 아니면 나도 탑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가방을 내려놓고 탑승동 저편을 향해 서서 (보이지도 않는 지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J 비슷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오고 있어요! 1분만 기다려주세요.” 생난리를 치며 우리 셋은 오사카행 비행기에 무사히 몸을 실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 후 십여 분이 지나 비행기가 이륙했고, 비행기는 예정된 도착시간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착륙했다. 우리 일행을 기다려준 항공사 직원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우리 때문에 출발이 지체된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매뉴얼대로라면 항공사 직원은 탑승구의 문을 닫았어야 했다. 매뉴얼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매뉴얼과 규칙보다 인간을 우선시해 우리를 기다려준 게 아닐까. 인천공항이 아니라 오사카공항에서 탑승시각에 늦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은 매뉴얼 사회다. 매뉴얼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일본의 공항에서 우리가 지각했다면 비행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2박3일 내내 스시를 배 터지게 먹고 귀국했다.

6월19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주석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19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주석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어느 의사의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보았다.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의사가 대낮에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회전하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놀랐다. 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 특권층으로 분류되는 종합병원의 외과의사가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트럭 운전자의 과실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교통사고의 책임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교통 상식이 바뀌어야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할 때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면 이번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차보다 보행자, 차량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어떤 교통신호도 교통법규도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하지 않다.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데 좀 더 유연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