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8명 “방류 반대”인데도 왜 민주당 지지율은 꿈쩍도 안 할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7 12:05
  • 호수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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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투쟁 딜레마…이재명 ‘대여투쟁 올인’에 존재감 사라진 ‘김은경 혁신위’
‘과거사 후폭풍’ 본격화되는데도 정국 주도권 못 쥐는 민주당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다. 같은 사람도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 상황 등이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는 의미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바다 방류를 두고 정치권이 연출하고 있는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지금 여야는 말을 완전히 바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정부에 전달한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담긴 최종 보고서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과학적 보고서이기보다는 정치적 보고서”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전 집권여당일 땐 말이 달랐다. “IAEA 기준에 맞는 적합성 절차에 따라서 (방류가) 된다면 저희가 굳이 반대할 거는 없다”(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본 관할 내 사항이기 때문에 주권적 영토 내 사항”(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IAEA에 신뢰를 드러내는 발언이 고위직의 입을 통해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등에서 공식적으로 나왔다. 

ⓒ시사저널 박정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7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숭례문 앞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과학 대 괴담’ vs ‘국민 안전’ 프레임 전쟁

국민의힘도 야당일 때와 말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최근 “지구는 돌고 있듯이 아무리 민주당이 IAEA를 공격해도 오염수에 관한 과학적 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메시지를 매일 내고 있다. 하지만 야당일 때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알프스(ALPS)라고 하는 다핵종 제거 설비를 예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삼중수소, 트리튬이 남아있고 이것은 각종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다”(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강행할 경우 한일 양국 법정과 국제재판소에 제주도가 앞장서 소송을 제기하겠다”(원희룡 당시 제주지사·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 국민 안전을 우려하며 방류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 쏟아졌다.

정반대로 바뀐 것은 말뿐만이 아니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대국민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여당이 ‘과학’을 강조한다면, 야당은 ‘안전’이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국민의힘은 IAEA의 최종 보고서로 과학적 결론이 도출된 만큼 민주당이 괴담 선동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대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민주당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공포를 조장한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사실을 과장해 어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공격도 한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 안전’에 방점을 찍는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는 만에 하나도 있을 수 없으며, 겪어보지 못한 위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IAEA와 일본 정부가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여러 조치가 충분치 않다는 논리가 뒷받침된다. 그렇게 IAEA가 낸 보고서(메시지)는 물론 IAEA의 권위와 신뢰 자체(메신저)에도 의심을 표한다. 일본 정부가 고체화 후 육상 보관 등 주변국에 피해를 덜 주고 덜 위험한 대안을 검토했어야 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 안전을 지키는 민주당 대 국민 안전을 포기하는 국민의힘’ 프레임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치적 득실 차원에서만 보면, 민주당의 초반 대응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많았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우군이 됐다. 국민은 일본 정부가 고집하는 ‘처리수’나 정부·여당이 선호하는 ‘오염 처리수’라는 용어 대신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민 10명 중 8명가량은 방류를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추세적으로 계속 발표됐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 미묘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에 과연 당력을 집중하는 게 맞는지, 그리고 그 총력전의 방향성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시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여론조사 추세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이 압도적임에도 대통령 지지율이나 정당 지지도에 반영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 추세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과 접전 양상으로 답보 추세다. 정부·여당 입장에서 보면 분명한 악재가 있음에도 야당이 그 반사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흐름인 셈이다. 광우병 사태로 정부·여당 지지율이 급락했던 이명박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왜 민주당은 압도적 여론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시사저널이 접촉한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도부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당 지도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의제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정작 민주당이 지금 부각시켜야 할 중요한 의제 세 가지가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①‘김은경 혁신위’ ②‘윤석열의 실수’ ③‘일제 강제동원 배상’ 논란 등이 지금 국민 머릿속에서 지워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지적은 민주당에 뼈아픈 대목일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금 민주당이 정국을 관리하고 의제를 다루는 전략과 전술이 입체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지금 민주당 내 소수의견, 당 지도부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시선을 살펴봤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 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에 가려진 김은경…허공에 뜬 쇄신안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출범 20여 일 만에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당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김은경 혁신위가 야심 차게 띄운 1·2호 쇄신안인 ‘불체포특권 폐지’와 ‘꼼수 탈당 방지안’은 힘을 받지 못한 채 공전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에 직면해 진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논의 자체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혁신위에 힘이 실리지 않는 모습이다. 

혁신위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이유로는 지도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에 당력을 총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위에 힘이 실리려면 혁신위가 띄운 쇄신안이 당내 논의의 중심에 서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데, 지도부가 오염수 투쟁에 총력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의 자원과 여론의 시선이 분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7월을 오염수 방류 투쟁의 중대 분기점으로 보고 주말 장외집회 개최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온라인 민심’을 보면 이런 모습의 한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낙점된 6월15일부터 7월5일까지 검색어 트렌드를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살펴봤다. 김 위원장이 임명된 6월15일 ‘김은경’과 ‘이재명’의 평균 검색량은 100과 26이었는데, 6월20일 54와 47을 거쳐 7월5일에는 1과 32로 극적 반전된다. 김은경에 대한 평균 검색량은 6월20일부터 계속 하락세를 그리고, 6월22일 이후에는 한 자릿수대로 내려앉았다. 김은경 혁신위는 6월23일 1호 쇄신안으로 체포동의안을 내놨는데, 별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혁신위 간판에 대한 검색량 자체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불체포특권’과 ‘오염수’의 평균 검색량을 보면, 혁신위가 불체포특권을 꺼내든 6월23일 각각의 검색량은 13과 33이었는데 7월5일에는 1과 65로 벌어진다. 불체포특권 자체에 대한 민심의 관심이 그만큼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한 핵심 관계자는 “혁신위는 민주당이 내로남불과 도덕 불감증이라는 국민적 질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동시에 공천 학살이 아닌 자정 작용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면서 “지도부가 대여투쟁에 총력전을 펼치더라도 혁신위의 공간을 일정하게 열어줬어야 했다. 지금 그 소중한 마지막 기회가 사그라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 머릿속에서 사라진 강제징용 해법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 태평양 섬나라 등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며 IAEA의 최종 결론이 나온 이후 대응하는 것이 국내 여론 관리 차원 등에서 훨씬 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여론이 결집하는 것은 물론 야당에 빌미를 주는 행동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적극 대응한 이유로 윤 대통령 보호를 꼽는 분석이 많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일한 윤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교도통신 등의 보도가 나오면서 정부가 더 이상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철폐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일본에서 계속 나오자 국내 여론은 한동안 들끓었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위해 오염수 방류 등을 IAEA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일본 측에 양보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한 뉴스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좋은 공격 포인트가 발견된 셈이었지만,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와 ‘굴욕 외교’를 부각하는 대신 ‘국민 안전’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운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국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당의 전략을 우려 섞인 눈으로 보는 민주당 관계자들이 있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 초선 의원의 지적이다.

“‘안전’이라는 가치를 앞세우게 되면 첫째, 사안은 전문가들의 영역이 되고 둘째, 국민과 지지층은 관전자로 머무르게 되고 셋째, IAEA 같은 국제적 권위를 가진 기관의 최종 결론이 나오면 퇴로가 마땅히 없어진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방류 문제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지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왜 없는지 잘 따져볼 때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와 관련해 오염수 방류 문제에 ‘올인’하면서 논란이 됐던 강제동원(징용) 해법 이슈가 국민 시선에서 사라졌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윤 대통령은 ‘제3자 변제안’ 카드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빠르게 진행했지만, 국내적으로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당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그렸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 발표 4개월 만에 공탁 절차를 시작하면서 제3자 변제안을 둘러싼 법적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결국 과거사 문제에 일본 가해 기업은 빠지고 한국 정부와 피해자 간 국내 분쟁으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왜곡된 본질에 여론이 폭발하고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기회인데, 방류 반대에 올인하면서 기회를 놓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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