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에는 왜 부구청장이 2명일까…황당한 ‘인사’ 내막
  • 정성환·전용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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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남구, 3급 부구청장 인사 진통 여파…부구청장직 ‘2명’이 동시 근무
30년 묵은 광역·기초자치단체 부단체장 ‘인사 갈등’…법과 관행의 충돌

광주 남구청에 부구청장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시와 남구 간 인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부구청장 임명을 둘러싼 광주시와 인사 갈등의 여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광역자치단체와 일선 기초단체 간에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지루한 ‘공방전’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법에 따른 자치권 확보와 광역과 기초단체 간 인사교류를 앞세운 관행이 충돌하면서다. 광주 남구에서 빚어진 ‘한 지붕 두 부구청장’이라는 진풍경을 통해 해묵은 광주·전남 부단체장 인사 내막을 들여다봤다. 

광주 남구청에 부구청장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양 측의 인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남구의 ‘3급 자체승진’으로 촉발된 광주시와 인사 갈등의 여파라는 지적이다. 광주 남구청 전경 ⓒ시사저널
광주 남구청에 부구청장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양 측의 인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남구의 ‘3급 자체승진’으로 촉발된 광주시와 인사 갈등의 여파라는 지적이다. 광주 남구청 전경 ⓒ시사저널

‘한 지붕 두 부구청장’…기이한 ‘동거’ 전말은 

광주시는 지난 1일 김순옥 여성가족교육국장을 남구 부구청장직으로 전출했다. 하지만 기존 이현 남구 부구청장의 명예퇴직은 이달 31일로 예정돼 있어, 한 달 동안 남구에 부구청장이 2명이 한지붕 두 가족으로 동거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자치구에서 3급 공무원 자리는 부구청장 1명 뿐이다. 한 명이어야 할 부구청장이 왜 두 명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김 국장은 광주시 인사 발령에 따라 3일 남구로 첫 출근했지만, 직접적인 부구청장 업무를 맡지 못하고 있다. 이에 김 국장은 오는 14일까지 장기재직 휴가에 들어갔다. 남구는 김 국장이 휴가를 마친 뒤 이르면 이달 중순께 부구청장으로 임명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 남구의 ‘3급 자체승진’으로 촉발된 광주시와 인사 진통의 여파라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광주시와 남구는 올해 초부터 ‘3급 공무원 자체 승진’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남구는 지난 1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이현 자치행정국장에 대한 3급 승진을 의결, 부구청장에 임명했다. 민선 8기에 기초지자체가 자체 인사를 통해 4급 공무원을 3급으로 승진시킨 것은 광주 5개 자치구 중 남구가 유일하다. 남구의 도발(?)은 3급 부구청장 자체 승진을 통해 연쇄 승진 인사가 가능해 인사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후 남구는 광주시와 5개 자치구가 지난 2018년 체결한 인사교류 활성화 협약에 따라 자체 승진을 단행했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광주시는 남구가 인사교류 협약을 위반했다며 맞섰다. 광주시는 시 주도의 3급 승진 관례를 지키지 않았다며, 남구를 상대로 인사교류 중단과 남구 승진자 교육 배제 등의 페널티를 줬고, 이 부구청장은 자치구 공직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되자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와 5개 구청장 협의회는 민선 8기 인사협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으나 서로 입장차가 커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시는 “승진 요인 부족으로 3급의 경우 퇴직 준비교육 등에 따른 승진 요소는 시에서 승진시켜 국장 인사와 함께 자치구 부구청장을 시에서 내려 보내고 대신 자치구의 4급 내지 5급을 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광주 구청장협의회는 “민선 8기 동안 시에서 5개 구청별로 3급 부구청장을 1차례씩 승진을 보장해 달라”고 맞서고 있다.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 “인사 관행 어겨” vs 남구 “자체 임명은 진정한 자치”

부단체장 임명을 둘러싼 인사 갈등 전례는 많다. 지난 2017년에도 당시 민형배 광산구청장이 광주전남에서 처음으로 3급 부구청장을 자체 승진시켜 광주시와 인사 갈등을 겪기도 했다. 남구는 지난 2005년에 역시 시에서 내려 보내던 4급 도시국장을 자체 승진 의결해 광주시와 인사 파행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매년 인사철이면 기초지자체의 반발에도 광역자치단체에서 일방적으로 낙하산 인사를 단행 관행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초 전남 순천시에선 공무원노조가 전남도청 출신 부시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실력행사를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는 3일 오전 8시부터 전남도청 출신 유현호 부시장의 순천부시장 발령은 전남도의 일방적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부시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온도의 차이가 있긴하지만 해당 기초자치단체는 자체승진을 ‘관치 관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치행정’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단체장을 시민이 직접 뽑는 1995년 이래로 기초지자체의 부시장, 부군수, 자치구 부구청장의 경우 광역지자체가 소속 공직자를 자치구로 보내는 ‘관행’이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현실적인 인사운영과 지방자치법이 달리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10조 4항은 “시의 부시장과 군의 부군수, 자치구의 부구청장은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 보하되 그 직급은 시장과 군수, 구청장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지방자치법은 소속 공무원 승진 등은 해당 지자체장에게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조문에 충실한다면 당연히 부단체장 임명권은 해당 시장군수구청장이 갖는 것이 맞다. 

그러나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딴판이다.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부시장이나 부군수, 부구청장을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임명한 곳은 가뭄에 콩 나듯 극히 드물다. 과거 서울 도봉구, 영등포구 등 4개 구청과 대전 대덕구가 부단체장을 자체 승진시킨 사례가 있다. 도 단위에서는 강원 속초시와 춘천시가 부단체장을 자체 승진·임명했다가 광역-기초지자체 간 갈등으로 원대 복귀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는 기초자치단체의 장이 상급단체인 시·도에서 요청하는 인사교류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이나 권한 배분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은 광역자치단체의 인사교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다”며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광역자치단체에 미운털이 박히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가 3일 오전 유현호 순천 부시장의 출근저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전공노 전남지역본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가 3일 오전 유현호 순천 부시장의 출근저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전공노 전남지역본부

근무기간 짧아 현안해결 관심 밖…경력 쌓기용 ‘간이역’ 역할

상급 자치단체 출신 부단체장 임명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공무원노조는 광역지자체의 부단체장 임면권(任免權)을 없애고 일선 시·군·구 자치단체의 자체적인 인사를 통해 부단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무원들도 부단체장이 시·군 자치단체에 머무르는 기간은 대략 1년으로 경력 쌓기용 ‘간이역’ 역할 뿐이라며 낙하산식 부단체장 임용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이해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본부장은 “전남도가 일방적으로 임명한 부단체장은 각 시군의 실정을 모르거나 짧은 기간 동안 재직하고 타 기관으로 전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체장이 새로 오면 직원들의 업무보고에 2주 정도가 소요돼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짧은 기간 있다 보니 시군의 특수성과 행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떨어져 행정 난맥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부작용을 지적했다. 

전남의 한 군청 관계자도 “대다수 부단체장이 전남도의 승진 통로로 거쳐 갈 뿐, 군의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결방안 없이 시간만 지나가길 바라는 복지부동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부단체장은 업무추진비도 군과 관련없는 전남도청 공무원과 부단체장과 관계가 있는 지인들의 경조사비에 충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광역發 낙하산들 때문에”…일선 시·군 인사적체 호소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승진을 가로막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기관·사무관 승진이 늦춰지면 연쇄적인 인사적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이 광역자치단체에서 내려온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에 승진이 가로막혀 퇴직할 때까지 5~6급 이하의 하급직에 머무르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시·군에서 부단체장은 시장·군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공무원이다. 

도청 서기관 한 명이 되돌아가면 5급이 4급으로, 6급이 5급으로, 7급이 6급으로 승진하면서 시·군 직원 네 명의 승진길이 열린다. “한 지자체의 경우 도청 출신 사무관 4명에 4급 공무원인 부군수까지 합치면 총 21명의 군청 직원이 도청 공무원들 때문에 승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공무원노조의 설명이다.

공무원 A씨는 “안 그래도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인사적체에 시달리고 있는데 서기관 한 자리를 전남도에서 가져가 적체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4급 자리를 내부 승진자로 채워야 하급 공무원들도 연달아 승진 기회를 얻는데 승진길이 막히니 군청 출신 공무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공직사회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전남도청 전경 ⓒ전남도
전남도청 전경 ⓒ전남도

“일선 시군, 부단체장에 오를 인사 요소 한계”

반면 결이 다른 시각도 있다. 전남도 한 관계자는 “도 자원의 시·군 행정체험이라는 장점이 있고 시군의 입장에선 현안 해결은 물론 열악한 재정 형편상 국·도비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 역할을 담당할 적임자가 광역자치단체 출신 부단체장이다”고 옹호했다. 

전남지역 한 사무관 퇴직공무원도 “일선 시·군의 경우 부단체장에 오를만한 인사 요인이 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며 “전남도의 광역행정을 일선 시·군에 전파해 행정의 질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국장급까지는 시군의 자체 승진으로 메꾸더라도 부단체장은 광역에서 받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굳이 새끼 호랑이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시장군수의 심중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잠재적인 정치적 라이벌로  분류되는 해당 지역 출신 간부공무원을 부단체장으로 발탁하는 것보다 도청에서 타지 출신 부시장, 부군수를 받는 것이 위험요소의 싹을 자른다는 측면에서 낫다는 일부 시장군수의 비뚤어진 인식도 한몫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역단체의 부단체장 임면권 행사는 ‘관치행정’의 산물”

전남 22개 시·군의 부단체장(4급 이상)은 전원이 전남도청 출신이다. 전남도 본청의 과장이나 준국장 공무원이 일선 시 군 부단체장으로 전출된다. 일선 시 군 부단체장에게는 관용차와 3000~5000만원대의 업무추진비, 공사입찰 경리관, 인사위원장 등의 자격이 주어져 전남도 본청 과장 보다 근무여건이 좋다. 

이에 따라 일부 부단체장들은 시장 군수를 상대로 도 본청 ‘전입’을 막는 인사 로비를 벌인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로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또 ‘직업이 부단체장’인 일부 공직자들 때문에 전남도 본청의 부단체장 대상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인사진통을 겪는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단체장 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남의 한 대학교수는 “지난 30여년 간 지방자치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시·군 부단체장에 대한 시장·군수의 임명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그간 관행으로 굳어진 광역자치단체의 부단체장 임면권(任免權)을 없애고, 시·군·구 자치단체의 자체적인 인사를 통해 부시장·부군수·부구청장을 임명하는 것이 지방자치가 묵은 ‘관치행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치행정’으로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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