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총선 전략은 ‘이념 전쟁’…반공·자유 앞세운 ‘세대포위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4 11: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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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朴 ‘비정상화의 정상화’ 넘어 ‘보수의 가치’ 재건 꾀해”
“방어적 가치인 반북·반공을 애국·자유로 확대하는 게 관건”
“통치 기반 취약하다는 방증”…‘보수·중도 선거연합 해체’ 우려도

정치는 세 개의 축으로 이뤄진다. 일정과 메시지, 인사(人事)다. 이들은 각기 흩어져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일정과 메시지, 인사를 하나로 꿰어서 보면 고도의 기획과 전략, 노림수 즉 ‘전체 그림’이 보인다. 어떤 화살(정치적 수단)로 어느 과녁(정치적 목표)을 겨냥하고 있는지가 보이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과녁을 노리고 있을까. 여느 정치인들이 속내를 숨기는 것과 달리 내년 ‘총선 승리’라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윤 대통령은 최근 여소야대 구도에 정부 주도 입법 등의 어려움을 자주 토로하면서 “내년부터는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발언을 부쩍 자주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이 모인 사석에서는 내년 총선의 목표로 구체적인 숫자인 170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선거법 위반 논란 등은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강한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 입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승리에 ‘올인’하는 尹…170석 목표 제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윤석열의 정치에서 눈여겨 살펴봐야 할 지점은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목표가 아닌 총선 전략이라는 정치적 수단이 된다. 최근 용산(대통령실)과 여의도(국민의힘)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미 총선 전략의 수립을 마쳤고, 일정과 메시지 그리고 인사를 통해 그 총선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최근 윤 대통령이 펼치는 정치를 보면 탄핵 이후 무너진 보수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음이 보인다”면서 “일정과 메시지, 인사 모두에서 뚜렷한 방향성이 관찰된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윤 대통령이 ‘이념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전임 정부의 정책 등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 보수의 가치 재건을 통해 보수의 외연 확장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권은 이런 점을 들어 윤 대통령의 보수 재건 시도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됐던 ‘비정상화의 정상화’와는 차별화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최근 윤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남다르다. 윤 대통령은 6월28일 보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일정)에 참여했다. 1999년 이후 어느 대통령도 찾지 않았던 행사다. 이 자리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와 야당을 겨냥해 ‘반국가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다음 날에는 “김정은 정권 타도” “자체 핵무장” 등을 주장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인사)했다. 곧이어 친북 논란이 있는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다시 검증해 ‘가짜 유공자’ 서훈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보름여 동안 나타난 윤 대통령의 상당수 언행에서는 ‘반북’과 ‘반공’이라는 이념적 코드가 읽힌다. 계산했고, 의도됐다는 뜻이다. 

당장 야당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 반국가 세력에 가서 요직의 검찰총장은 왜 했나”(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등의 반문과 함께 윤 대통령의 ‘극우화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대결 정치를 유도하고, 국민 통합 대신 편 가르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야권의 이런 반응을 윤 대통령과 여권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내년 총선까지 야당과의 대화나 협치 등은 없을 것이며, 이런 대치 정국이 내년 총선에 나쁘지 않다는 계산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체 윤 대통령의 계산법은 무엇일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과 용산은 철저한 정치적 득실 계산 아래 ‘이념 전쟁’이라는 열쇳말로 요약되는 일정과 메시지, 인사를 펼치고 있다. 첫 번째 계산은 우선 유리한 정치 운동장에서 방어 대신 공격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여소야대 국면 속 입법 성과를 내기 힘든 만큼 ‘발목 잡기’ 프레임을 강조해 내년 총선의 구도를 ‘야당 심판론’으로 치르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와 예산심사 등을 치러야 하는 하반기 정국에서 이념 전쟁을 앞세워 수비 대신 공격을 펼치겠다는 속내도 있다. 

여기에 여권은 내심 ‘이념 전쟁’ 혹은 ‘보수의 사상 전쟁’이라 부를 수 있는 정국이 되면 기존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인 60대 이상이 최대한 결집하는 효과와 함께 공정에 민감하고 반중(反中)·반북(反北) 정서가 강한 2030세대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른바 ‘윤석열식 세대포위론’이다. 용산은 최근 이런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후 지지율 상승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윤 대통령이 총선 전략으로 앞세운 이념 전쟁이란 화살은 총선 승리라는 과녁에 끝까지 날아가 꽂히게 될까. 시사저널이 그 전망과 변수,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측근 전진 배치한 尹, 다목적 포석 ‘차관 정치’

인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지금 어떤 철학과 기조로 국정을 운영하려고 하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일정과 메시지, 인사 등 대통령이 가진 세 개의 화살 중 무엇보다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목표에 필요한 것도 역시나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이념 전쟁’을 치르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단순히 도드라지는 한두 명의 인사가 아니다. 인사 전체에서 뚜렷한 방향성이 확인된다. 인사는 크게 ①이념 전쟁을 치를 최전방 공격수 ②중원(부처)을 장악할 미드필더 ③후방을 지원할 수비수 등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먼저 이념 전쟁을 최전선에서 치를 반공·반북 성향의 인사들을 최전방에 배치했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임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보면, 최근 임명된 김채환 신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이나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등의 인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이 박근혜 퇴진 시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김채환 원장), “70% 이상의 국민이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것을 모른다”(박인환 위원장) 등의 극단적 음모론을 펼친 것으로 확인돼 임명 과정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김 원장은 7월3일 취임사에서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명확한 안보관을 지니고 공직 가치가 바로 선 공무원을 양성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전진 배치하는 인사도 최근 단행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19개 정부 부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개 부처의 차관 12명을 교체했는데, 김오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을 국토교통부 1차관에 기용하는 등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을 부처에 보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에서 자신과 국정 코드를 공유해온 실세 차관들을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내세우며 ‘차관 정치’를 예고한 데는 내년 총선을 앞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총선을 앞두고 가시적인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해선 추진력을 갖춘 대통령실 출신 차관들이 부처를 장악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은 최근 문화·체육계는 물론 언론계까지도 그립감을 확실히 쥐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인사를 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문화체육특별보좌관에 임명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유 특보를 다시 장관급 자리에 앉히면서 문화·체육계에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확실히 입히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기에 이동관 대통령대외협력특보도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인선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친미·반중 여론’ 높은 2030세대에 세대포위론 작동할까

과연 윤 대통령이 선택한 ‘이념 전쟁’이라는 전략은 총선 승리로 가는 길일까. 세 갈래로 실시한 윤 대통령의 인사는 과연 이념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될까. 지지층은 과연 더 많이 모이게 될까. 

여권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낙관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특히 용산이 그렇다. 근거는 지지율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7월 1주 차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8%로 작년 6월말 이후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서는 보통 여당이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획득할 수 있는 대통령 지지율의 마지노선을 40%로 잡는다. 저공 행진과 지지부진으로 요약되던 대통령 지지율이 ‘이념 전쟁’으로 국정 운영 기조를 튼 이후 상승세를 탔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평가한 이유로는 외교(20%), 결단력·추진력·뚝심, 국방·안보, 노조 대응(6%), 공정·정의·원칙, 주관·소신, 부정부패·비리 척결(이상 4%) 등이 꼽혔다. 윤 대통령이 친미·반중 외교 노선 등 보수·우파적 선택을 밀어붙인 게 효과를 봤다고 용산이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결과다. 

특히 여권은 최근 한국 사회에 반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는 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6월26~27일 한국갤럽이 서울경제신문의 의뢰로 수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한 의견은 5.1%에 불과했다. ‘미국과의 동맹과 협력 강화’(36.8%)나 ‘미국과 중국 사이 중립과 균형’(56.0%) 등과는 상당한 격차다. 

무엇보다 여권은 2030세대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는 ‘친미·반중 여론’에 주목하고 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20대와 30대는 각각 44.8%, 45.2%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각 2.9%, 2.6%만이 긍정적인 답을 했다. 50대(6.9%), 60대(7.1%)와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에 용산에서는 내심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이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은 물론 2030세대의 지지까지 끌어모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여권 관계자는 “야당에서는 그저 대통령이 극우화됐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철저한 계산 아래 지금 윤 대통령과 용산은 움직이고 있다. 현재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이라는 돌발 악재로 잠시 주춤할 수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용산이 잡은 기조대로 정국이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념 전쟁은 외줄타기…극우로 보이면 선거는 끝”

긍정적인 시나리오만 있을까. 그림은 그림일 뿐 기획대로 정국이 운영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제기된다. 유승민 전 의원은 ‘차관 정치’에 대해 “실세 차관이 대통령실과 직거래를 하면 장관 패싱 사태가 일어나고, 장관 중심으로 일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거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공조직이 무너진다. 완전히 용산 중심으로 가는 것”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가장 큰 우려의 목소리는 지금 윤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이념 전쟁이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지만, 중도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지율을 안정시키겠다는 생각 같은데, 잘 보면 영남에서 더 결집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한 지역에서 몰표가 나온다고 승리하는 선거가 아니다. 

실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이 지금 ‘이념 전쟁’의 기조를 추진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보수·중도 연합’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인사들을 배치한 것 등이 이들이 한 극단적 발언을 두둔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이렇게 되면 합리적 온건 지지층과 중도층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는 정치의 격언을 고려하면, 이런 우려는 사실 윤 대통령에게 뼈아픈 지점일 수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은 이미 2030세대를 ‘민주 동맹’에서 이탈시키는 데 공이 있는 이준석 전 대표를 내쫓더니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의원마저 ‘적’으로 규정하면서 ‘보수·중도 연합’을 스스로 해체했다. “저는 지난 6월 정치 참여 선언에서 10가지 중 9가지가 달라도 정권교체라는 한 가지 생각만 같으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박 컨설턴트는 “전쟁이든 선거든 우군을 많이 확보해야 이긴다. ‘동맹’이 중요한 이유”라면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연설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총선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대선 때 선대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 윤 대통령과 용산이 이념 전쟁이라는 총선 전략을 짠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정권의 지지 기반과 이념적 기반이 위축돼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이념 전쟁이라는 기조는 한순간만 스텝이 꼬이면 극우로 몰리는 외줄타기와 같다. 당·정·대 모두에 내부의 건강한 견제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 기조가 추진되면 될수록 국민의 일반적 눈높이와는 멀어지고, 극우적 인식이 여권 내부에서 지배적인 세계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 방어적 가치인 ‘반북·반공’을 ‘애국·자유’로 확대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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