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양평까지…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나 [쓴소리 곧은 소리]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ccw7370@hanmail.net)
  • 승인 2023.07.14 16:05
  • 호수 176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교체로 여야 위치 바뀌면 금세 과거와 다른 사람 돼버려
정치권, 공론장에서 사유를 말하지 않고 변절과 기억상실만 반복

요즘처럼 상대의 정책과 주장을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정치를 경험한 적이 있었을까? 요즘 우리 정치는 주요 사안마다 매번 진영논리에 의한 극단적인 대결정치로 치닫고 있다. 야당의 의혹 제기로 시작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변경’ 논란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 고속도로 종점 변경에 대해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업 백지화’로 맞섰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7월6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월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오염수 투기 반대 촉구 결의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7월6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월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오염수 투기 반대 촉구 결의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방류 반대에 이순신 장군까지 등장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응했던 여야 모습도 극단적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일본이 돈이 아까워 핵오염수를 앞바다에 버려 대한민국 바다를 오염시키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 바다가 온통 오염되는 양 선동했다. 여당은 국민 불안에 대한 체계적인 설득 과정 없이 이 대표의 발언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 선동이라고 맞섰다.

여야는 심지어 책임 있는 공직자의 표상인 이순신 장군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 민주당이 회의실 걸개그림 안에 이순신 장군 그림을 배경으로 ‘국민안전수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라는 문구를 적어 오염수 방류 반대를 반일감정으로 증폭시키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염수와 임진왜란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라며 “지금 민주당의 행태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위대한 선조들의 모습이 아니라, 조선을 망국의 길로 몰고 간 쇄국주의자들과 흡사하다”고 비판했다.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렇게 극단의 막장까지 가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혹시 우리 정치판이 국민과 국가의 공공복리 실현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권력 잡기와 자리 나누기에만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정책 경쟁보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타락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여야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여당 시절, 야당 시절 자신의 정책이 무엇인지 반추해 보고 정책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실현하기보다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행동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변절의 정치를 양산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는 여야가 정권교체로 위치가 바뀌면 너무 쉽게 스스로의 입장을 반사하듯 반대로 바꾸는 ‘기억상실의 정치’와 ‘변절의 정치’에 빠졌다. 정치인이 정책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과 살길만을 찾아 민의를 배신하는 변절자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좋은 정책이고 필요한 입법이라면 야당은 여당이었을 때, 여당은 야당이었을 때 주장하던 바를 실천하면 금방 여야 협치가 이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무슨 일인지 변절과 네거티브 캠페인에 빠져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처럼, 변절의 방귀를 숨기기 위해 먼저 화를 내고 싸운다.

우리 정치는 여야의 위치가 바뀔 때, 정책노선의 변경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못해 기회주의적 변절자로 몰리면서 정쟁화하는 경향이 있다. ‘기회주의적인 변절자’와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생각이 이전과 달라졌거나 바꿀 필요가 있을 때, 공적인 공간에서 의견을 표명해 주변의 반응과 의견을 들으면서 변경된 노선을 정리해 가는 사람은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런 절차와 방법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 표명을 숨긴 채 유불리한 상황을 보면서 기회를 좇는 사람은 ‘기회주의적인 변절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별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오염수’와 ‘고속도로’ 이슈가 정쟁화된 것도 기회주의적 변절자의 태도 탓이 크다. 여야가 노선 변경의 사유를 말하는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의 태도를 보였다면 정쟁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집권여당 당시 하지 않았거나 검토 대상에서 배제했던 대책을 현 정부·여당에 요구하는 게 아이러니다. 반대로 과거 야당 시절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고 당시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놨던 국민의힘은 현 야권의 우려를 ‘괴담’이라고 공격했는데 이것 역시 자기부정이다.

두 당이 과거 발언과 입장을 뒤집어 자신이 비판했던 상대의 논리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여야가 자기 변절의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의종군까지 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공적 책임자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을 정쟁의 도구로 소비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정권의 위치에 따라 정책이 바뀐 변절의 사례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질문이나 설명 없이 방귀 뀐 놈이 먼저 성내

국회 속기록 등에 따르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20년 10월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염수가 1∼2년 정도 걸려 동해로 흘러들어 온다는 그린피스나 일본 가나자와대·후쿠시마대 등의 발표 내용을 인용하고, 오염수와 관련해 국제 소송과 가처분신청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무위원들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현재 민주당의 입장과 반대였다. 2021년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이 IAEA 기준에 맞는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고속도로 노선 변경 건도 마찬가지다. 논쟁 중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강상면 종점 노선은 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민간업체가 두 달간 타당성 조사를 벌여 제시한 안(案)으로 드러났다.

두 사건 모두 정권 변화에 따라 정책노선이 변경된 것에 대해 서로가 충분히 사실관계를 공개적으로 묻고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더라면 정쟁은 멈췄을 것이다. 노선 변경을 묻거나 설명하지 않고 공격 본능부터 앞세우는 변절의 정치가 문제다. 우리 정치는 자신의 노선 변경을 국민에게 충분하게 설명하고 동의받지 않는 관행 때문에 정쟁이 된다.

정치권의 협치가 시급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산물 소비가 급감했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어민·수산업계·소상공인에게 돌아갔다. 지금은 오염수 방류 이후 국내 수산물 소비 감소와 어민·수산업계·소상공인 피해 규모 예측치도, 피해 산정과 보상 방식도, 수산물 안전관리 대책도 일본에 제시할 그 무엇도 정쟁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피해를 막는 일에 초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