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세요” “진료 불가” 최대 규모 총파업에 의료 현장 멈췄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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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4만5000명, 역대 최대 규모 ‘무기한’ 총파업 돌입
입원환자 퇴원·전원 조치에 외래 중단…응급환자 수용 거부도 속출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첫날인 7월13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의 일반병동 병실이 텅 비어있다. 부산대병원은 파업으로 환자 관리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자 전날 대부분의 환자를 퇴원 조치했다. ⓒ 연합뉴스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첫날인 7월13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의 일반병동 병실이 텅 비어있다. 부산대병원은 파업으로 환자 관리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자 전날 대부분의 환자를 퇴원 조치했다. ⓒ 연합뉴스

보건의료인들이 19년 만에 ‘전면전’을 선포하며 거리로 나섰다. 간호사부터 약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4만5000명이 7월13일 오전 7시를 기해 역대 최대 규모 총파업에 돌입했다. 수술·진료부터 사실상 전 영역에 의료 공백이 발생하면서 국민 생명과 건강에도 비상이 걸렸다. 현장 복귀를 촉구한 정부는 ‘불법’ 엄단 의지를 내비치며 ‘무기한 파업’ 예고에 맞불을 놨다. 줄다리기가 장기화 할 수 있다는 우려 속 환자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응급환자 못 받습니다” 의료 공백 초비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의료 현장은 혼선과 우려가 교차하며 초긴장 상태다. 

전체 병원 인력 가운데 약 70%인 10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한 충남대병원은 진료를 대폭 축소하고 7월14일까지 잡혀 있던 수술 일정과 외래진료 예약을 연기했다. 정형외과는 진료를 중단했고, 다른 과 역시 당일 외래 접수가 차단되는 등 차질이 빚어졌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접수창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진료 불가 안내에 직원들과 고성을 주고받는 상황도 벌어졌다. 환자들은 “예약을 해놨는데 갑자기 취소하면 아픈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교수든 누구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항의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7월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노조 요구사항이 담긴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 연합뉴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7월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노조 요구사항이 담긴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 연합뉴스

부산대병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부산 서구에 위치한 본원과 양산부산대병원 소속 3500여 명 가운데 80% 넘는 인력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병원은 ‘일시 멈춤’이 됐다.

부산대병원은 총파업을 앞두고 중환자와 산모 등 100여 명을 제외한 일반병동 환자 700여 명은 모두 퇴원시켰다. 날벼락 맞은 부산대병원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면서 인근 타 병원 입원실은 포화 상태가 됐다. 부산 동아대병원의 경우 부산대병원 환자가 몰려들면서 급기야 모든 응급 환자에 대한 수용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파업에 참여한 상급종합병원은 서울의 경희대병원·고려대안암병원·고려대구로병원·이대목동병원·한양대병원, 경기 아주대병원·한림대성심병원 등 전국 20곳 안팎에 달한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 총파업이다.

보건의료노조 측이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등 필수 인력은 유지키로 했지만 유례 없는 규모로 파업이 전개되면서 응급 환자 이송 및 전원을 중단하거나 수용 불가 방침을 밝힌 곳이 속출하고 있다.

응급실은 법적으로 파업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병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응급 수술이나 조치 후 환자를 병동으로 올려 보낼 수 없게 돼 연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파업을 앞두고 병원들이 수술과 외래 일정을 연기 또는 취소하고 퇴원 환자까지 내보내며 임시방편으로 대응했지만,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7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대회에서 인력·공공의료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7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대회에서 인력·공공의료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틀간 ‘집중 투쟁’을 선언한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 돌입 첫날인 7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총파업대회를 열고 의료 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등을 촉구했다. 폭우 속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약 2만 명의 보건의료 노조원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 책임을 윤석열 정부로 돌렸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대화와 협상을 중단한 보건복지부가 파업을 유도한 것”이라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 위원장은 “‘국민들 간병비 고통 해결하자’, ‘국민 생명 살려낸 공공병원 살려내자’는 요구를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이런 정치파업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날을 세웠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및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인력 확충 ▲필수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공공의료 확충 등 7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요구안에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 위한 회복기 지원 ▲코로나19 영웅에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도 포함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7월1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한 시민이 파업 안내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7월1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한 시민이 파업 안내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엄단’ 의지 속 대치 장기화 우려

정부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며 ‘업무복귀 명령’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노조가 발표하고, 발언하는 내용을 보면 파업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며 “이 부분이 정당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법적 검토를 거쳐 필요하다면 업무복귀 명령까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노조가 정부 정책에 대해) 당장 하라는 식으로 스케줄을 제시하고 정부가 하는 것에 따라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부를 파업 대상으로 보는 것이고,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총파업 첫날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 파업 상황점검반’을 ‘중앙비상진료대책본부’로 전환하고, 시·도, 시·군·구별로 비상진료대책본부를 구성해 필수유지 업무를 점검하는 등 진료 차질에 대응할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당한 쟁의 행위를 벗어나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보건의료인들이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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