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북道 합작해 만든 ‘최악의 새만금 잼버리’
  • 전북 부안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3 10: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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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북도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
‘컨트롤타워’ 정부도 손 놓고 있어

‘실패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받아든 최악의 성적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잼버리가 폭염과 부실 운영으로 조기 철수 사태를 겪으면서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불붙을 전망이다. 2017년 8월 아제르바이잔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무려 6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는데도 대회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은 대형 국제행사에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점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세계잼버리대회가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사업의 속도를 만회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용됐다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당장 책임론이 불거진다. 우선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2020년 7월 잼버리 조직위가 출범했을 때부터 정부 부처 자격으로 조직위원장을 도맡았다. 잼버리 조직위 최창행 사무총장도 2020년까지 여가부 정책기획관을 지냈다. 사공은 많았지만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약점도 드러났다. 세계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은 총 5명인데, 이 가운데 3명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한 부처에서 총괄조직위원장을 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는데, 세 명의 공동조직위원장 체제가 꾸려지다보니 누구도 나서서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됐다. 반면 전북지사는 집행 역할에 머문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예산 역시 정부 지원 없이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북도는 “폭염·침수 피해 예방을 위한 예산이 제때 내려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잼버리 현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앙정부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지만 너무 뒤늦은 결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가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행사인 데다, 예산이 1000억원가량이나 투입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진작부터 책임지고 전면에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국가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라는 점에서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아쉬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스카우트들이 퇴영한 이후 썰렁해진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 ⓒ시사저널 정성환
8월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에서 각국 스카우트들이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잼버리는 핑계일 뿐 목적은 해창 갯벌 매립”

전북도 또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북도가 주도적으로 새만금 대회를 유치했고, 이후 실무 준비를 해온 만큼 중앙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궁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회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는 폭염, 벌레, 위생 등은 모두 예견됐거나 대처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이 때문에 전북도는 한동안 거센 책임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북도는 대회 유치 입안 단계부터 석연치 않은 행보로 몰락의 길이 예고됐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우선 문제가 됐던 게 검증된 지역을 제외하고 굳이 새만금을 잼버리 개최 후보지로 선정한 배경이었다. 당시 도내 후보지로 무주군 백운산 자락의 태권도원과 덕유산국립공원 구천동 야영장 등도 거론됐다. 무주는 산악 지역으로 잼버리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적지로 꼽혔다. 하지만 전북도는 새만금 이외의 대안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갯벌 매립뿐만 아니라 도로·공항 등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사업에 정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잼버리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앞섰던 탓이다. 전북도가 처음으로 2023 잼버리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은 2012년 4월이다. 그때는 숙원인 새만금 사업이 이제 막 물막이와 방조제 공사가 끝나고 부지 매립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는 전북도가 잼버리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이미 간척이 완료된 곳 대신 해창 갯벌 매립을 고집한 이유다. 똑같이 간척지에서 열린 2015년 일본 잼버리가 50년 전인 1965년 간척이 완료된 땅에서 개최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새만금 현장에서 활동가로 잔뼈가 굵은 남대진 군산환경운동연합 대표의 말이다.

“잼버리 개최는 내세운 핑계일 뿐 해창 갯벌 매립이 원래 목적이었다. 매립해야 하니까 준비기간도 부족했다. 잼버리 성공에 일말의 진심이 있었다면 이미 매립이 끝난 안정된 땅을 골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무 심고 기반시설을 갖출 시간이 그런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두 번의 해수 유통만으로도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던 해창 갯벌 267만 평은 영원히 사라졌다. 

당국은 왜 매립에 목을 맸을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간 새만금 개발을 진행해온 세력들은 해수 유통 확대와 이로 인한 갯벌 복원 확대는 물론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를 무척 싫어한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매립해야 자신들에게 조직과 예산이 계속 지원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토건자본에게도 돈이 된다. 결과적으로 수천억원의 농지관리기금이 매립 비용으로 편법 전용돼 토건자본의 이윤이 됐다. 모두 우리 혈세다. 바로 이런 게 요즘 말로 카르텔이다.”

스카우트들이 퇴영한 이후 썰렁해진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 ⓒ시사저널 정성환
스카우트들이 퇴영한 이후 썰렁해진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 ⓒ시사저널 정성환

새만금 기반시설 조기 구축 수단으로 활용

한국농어촌공사는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농지관리기금 1845억원을 들여 해창 갯벌을 매립했다. 매립된 이 갯벌이 잼버리 개최 장소가 됐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텐트조차 치기 어려운 상태로 마무리됐다. 농업용지로 개발된 터라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은 논 같은 상태인 데다 아직 염분도 남아있어 나무 심기도 어려운 뻘밭이었다. 환경단체들은 레저관광용지 개발을 위해 실제 필요보다 더 많은 부지를 매립하면서 배수시설 등 공사가 늦어진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2016년 새만금개발청의 용역은 숙영지, 전시장, 대집회장 등을 위한 매립 필요면적을 약 389헥타르(㏊)로 계산했으나 실제 매립 면적은 884㏊에 달했다.

전북도가 잼버리 개최를 새만금 내 부족한 기반시설(SOC) 조기 구축의 타당성 논리로 차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전북도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전북연구원은 2017년 ‘새만금과 전북 대도약 자신감 획득’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잼버리 유치로 새만금 기반시설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는 명분을 확보하게 됐다”고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전북도는 이듬해인 2018년 8월 자료를 내고 “‘저비용 고효율’의 잼버리로 전북에 필요한 공항 같은 절대적 SOC 등 각종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전북, 새만금, 국가 위상, 도민의 삶과 질을 한껏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잼버리의 성공 개최보다는 새만금 개발사업이 주 목표였던 셈이었다. 

전북도의 바람대로 기반시설 구축에 속도가 붙었다. 도는 특별법을 근거로 새만금국제공항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조기 개통 등을 요구했고, 중앙정부의 집중적 예산 투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2021년에만 물류 체계 트라이포트(공항·항만·도로) 건설과 그린산업단지 조성 명목으로 1조4136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천문학적 예산을 받아 기반시설이 착착 들어서는 동안 새만금 야영장의 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북도가 잼버리의 성공을 통해 특별자치도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새만금 개발사업의 장기적인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나, 각종 실수로 행사의 주도권이 중앙정부로 넘어갔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오히려 무능한 이미지만 남기고 말았다”면서 “게도 구럭도 다 놓친, 전북도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썰렁한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엑소더스에 전북 도민들 ‘망연자실’

“태풍은 수도권도 관통하는데 왜 서울로?”…플랜A 빼앗긴 ‘힘없는 전북’에 좌절감

8월8일 오전 10시20분쯤 전북 부안 간척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웰컴센터 앞 도로. 낮기온 33.4도의 폭염 속에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이날 퇴영하는 오스트리아 스카우트 지도자와 청소년들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줄지어 메고 있던 배낭을 화물칸에 넣은 후 관광버스에 올랐다. 일부 대원은 대회기간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많은 야영지에서 사용했던 한국 농촌의 전통적 운반수단인 리어카에 캐리어를 싣고 운반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을 태운 차량 10여 대는 경찰차의 안내를 받으며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간 새만금 잼버리는 대회 시작부터 야영지 내 폭염과 해충, 그리고 화장실의 악취·청소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북상 중인 태풍 ‘카눈’에 카운터펀치를 맞고 결국 넘어졌다. 

그로기 상태의 새만금은 스카우트들의 발길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백주대낮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엑소더스(대탈출) 사태를 망연자실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정부가 북상 중인 태풍에 대비해 참가자 전원을 아예 서울 등지로 옮기는 이른바 ‘플랜B’를 가동하면서다. 이미 8월4일부터 영국·미국·싱가포르 스카우트 6000명가량은 조기 퇴영해 ‘반쪽짜리 잼버리’로 전락했다. 이날 잼버리 현장에 남아있던 150개국 3만7000여 명도 전북 지역에 남은 5500여 명을 제외하고, 1100여 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새만금을 떠나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새만금 잼버리’가 아니라 ‘한국 잼버리’가 된 셈이다.

스카우트들이 떠난 후, 북적였던 부안군 하서면 간척지 야영지에는 적막이 흘렀다. 이들이 일주일간 머물었던 2만3000여 개의 텐트는 대거 자취를 감췄고, 점점 유령도시처럼 변해 갔다. 야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잼버리 전망대에서 지켜보던 방문객들은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주에서 온 이미숙씨(58)는 “막상 철수한다고 하니 서운하고 허탈하다”며 “대원들이 전라북도를 어떻게 기억하고 떠날지 우선 걱정된다”고 했다.

전북도 또한 ‘파행 잼버리’ 후폭풍에 침통한 분위기다. 이날 전북 부안 새만금 잼버리 델타센터 주변에서 만난 한 전북도청 직원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답답한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당장의 비난도 부담이지만, 대회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금 정부 분위기를 봐선 감사원 감사에다 검찰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역 발전을 위해 대회를 유치했는데 안 한 것만 못해졌다는 한탄이었다. 

전북 도민과 공직자들은 새만금 잼버리를 서울 및 수도권 일대로 옮겨 진행한다는 소식에 ‘잼버리 뺏긴 힘없는 전북’이란 좌절감을 맛보았다. 여성가족부 등 중앙부처에서 주관한 새만금 잼버리가 전북에는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게 됐고, 파행을 맞은 잼버리의 원인을 전북에 전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높았다. 전북 경제단체 한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도, 잼버리 조직위도, 전북도마저 잼버리 파행을 ‘태풍’ 때문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나 사과 발언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이번 태풍의 경로를 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새만금은 위험하고 서울은 안전한가. 국제행사마저 서울공화국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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