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침묵 속에 끝난 민주당 혁신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2 14: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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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 논란에 묵묵부답…혁신안 내고 조기 퇴장 수순
“당이 온정주의로 대처”…이재명 대표 책임론도 커져

‘김은경호 혁신위원회’가 8월10일 사실상 조기 종료 수순에 들어갔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시작된 개인사 논란이 진실게임으로 이어지며 여론을 뜨겁게 달궜고, 혁신위의 위상과 신뢰를 흔들어놨다. 뚜렷한 혁신안을 제시하지도 관철시키지도 못한 채, 혁신위가 오히려 혁신의 대상이 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사실상 ‘실패’한 혁신위가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이래경 혁신위원장이 9시간 만에 낙마한 데 이어 임명 초기 기대를 낳았던 김 위원장마저 별다른 성과 없이 역할을 내려놓으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책임론만 커진 상황이다. 

8월5일 개인사 논란이 불거진 이후 김 위원장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 위원장의 큰아들이 나서서 한 차례 해명 글을 올리고 가족이 본 피해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예고했을 뿐이다. 민주당 인사들도 ‘개인사’ 문제라며 일체 말을 아꼈지만, 계속되는 진실 공방과 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혁신위의 조기 종결로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혁신안을 발표하면 위원장 사퇴 없이도 사실상 역할을 다하게 된다. 민주당은 최종 혁신안을 김 위원장이 발표할지 여부를 두고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혁신안을 발표하는 당사자의 신뢰도가 훼손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8월10일 국회에서 ‘김은경혁신위원회’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8월10일 국회에서 ‘김은경혁신위원회’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당내, 혁신안 발표에도 부정적

설화 논란이 발단이었다. 김 위원장은 7월30일 참석한 '2030 청년 좌담회'에서 작은 아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나눈 대화를 소개하면서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가? 왜 미래가 짧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과 1대1로 표결해야 하나?"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발화점이 됐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면서 대한노인회는 성명을 내고 ‘헌법에 보장된 참정권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격노했다. 민주당이 이해식 의원을 보내 당의 사과 입장을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김 위원장은 차일피일 사과를 미루면서 사태를 키우다가 당내에서 강한 우려가 제기되자 나흘 만에야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했다. 그런데 당시 사과하면서 한 “남편 사후에 시댁 어른들을 18년 모셨다. 어르신들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살아본 적은 없다”며 노인 비하 의도가 없었다고 사과했다.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사태는 이틀 후인 8월5일 김 위원장의 시누이 김지나씨가 인터넷상에 “김은경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라는 폭로 글을 올리면서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김씨는 해당 글에서 “(김 위원장은) 단 한 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부모님은) 18년 동안 김은경에게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으셨다. 2년 전 어머님을 먼저 보내고, 끝내 자살한 아들이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는 자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의 남편은 2006년 극단적 선택을 했고, 김 위원장의 시어머니는 2021년 12월, 시아버지는 2022년 12월 사망했다. 김씨는 또 김 위원장이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를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8월6일 자신을 김 위원장의 큰아들이라고 밝힌 A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반박 글을 올렸다. A씨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신 막내 고모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으신 분”이라며 김씨의 글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모들은 부양 책임은 지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상속은 받아가셨겠지만, 저희 가족은(어머니, 저, 동생)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고 반박했다. 또 “생전에 아버지가 운영했던 회사를 저희 어머니가 가로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저희 집이 회사를 이끌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양하길 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셨고, 저는 수시로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고향에 찾아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짓 선동으로 가족을 공격하는 일은 제발 멈춰주시기 바란다”며 추후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8월3일 서울 중앙당사 앞에서 노인 폄하 발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흠결 있는 사람이 만든 혁신안, 존중 못 받을 것”

김 위원장은 아들의 해명 글 이후 혁신위가 사실상 종료된 8월10일 전까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8월7일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발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분들이 계신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대신 사과했다. 하지만 이 대표도 김 위원장의 개인사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내내 침묵하던 이 대표가 휴가에서 돌아온 첫날 유감의 뜻을 표한 것은 김 위원장 관련 논란이 당에 부담을 준다는 기류가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혁신안에 힘이 실릴지 의문이 제기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아무리 좋은 내용의 혁신안을 만들어도 흠결 있는 사람이 만든 건 권위가 안 선다. 국민이 ‘흠결 있는 사람이 어떻게 혁신을 얘기하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 혁신안이 존중받을 수 없다. 그저 당이 욕을 덜 먹기 위해 마무리하고 종결 짓기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대처 또한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채 교수는 “민주당은 민주화운동을 해왔다는 우월성을 가지고 도덕성과 민주성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첫째, 아들의 말을 강조하다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1인 1표를 부정했다. 둘째,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국민 통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셋째, 시누이 말이 맞는다면 ‘시부모를 모셨다’는 거짓말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지금까지 이런 흠결을 가진 사람에 대해 자당이든 타당이든 사퇴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조국 사태’처럼 타이밍을 못 찾았다. ‘비명계’ 혁신위원장이었다면 엄청나게 공격하고 사퇴로 결말짓지 않았겠나”라고 되물었다. 

엉뚱한 사건을 계기로 혁신위를 조기 중단하게 된 상황에서 혁신안이 유의미하게 토론되기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혁신위가) 첫 번째 안이었던 불체포특권 포기안은 잘 던졌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세월아 네월아 한 달이 걸렸다. ‘일주일 줄 테니 서명 받아와라. 못 받으면 혁신 의지가 없는 걸로 알고 짐 싸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갔어야 하는데, 시간을 끄는 당에 끌려가면서 스스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스스로 발에 걸려 넘어졌고 아무도 일으켜 세울 생각도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혁신위의 '클라이맥스(climax)'는 다른 장면이었어야 했다. 혁신위가 제시한 안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받으면 혁신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롤 논의하는 과정에 하이라이트가 찍혀야 하는데, 50일 동안 전혀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안을 던져도 당내에서 무게감 있게 토론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그러면서 “어떤 혁신안이 나와도 경량급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혁신안이 없어서 혁신을 못 했던 게 아니다. 수년 동안 혁신안에 대해서는 수백 건의 안들이 나와 있었고, 이번 혁신위에 필요했던 것은 파열음을 만들더라도 기득권 의원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이었다. ‘내로남불’과 온정주의, 실정 때문에 민주당에 실망해서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쳐다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어야 되는 것이었는데, 기대감을 끌어올리지도 못했고 오히려 ‘그럼 그렇지’ 하고 더 손을 떼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혁신안” 주장도

혁신위는 8월10일 당대표 선출에서 대의원 투표를 배제하고 공천 시 현역 의원 하위 평가자에 대한 감점을 강화하는 내용의 3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고 대의기구인 당대표와 최고위원은 권리당원 1인 1표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로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또 "선출직 공직자 상대평가 하위자에게도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 감산을 적용하는 규정을 하위 10%까지는 40%, 10~20%는 30%, 20~30%는 20%를 감산할 것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그동안 부족한 말로 불편함을 드린 점에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저의 여러 일로 (혁신안이) 가려질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혁신안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지웅 전 민주당 비대위원은 “혁신위의 승부처는 정말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정당을 바꿨느냐, 바꾸는 제안을 했느냐 아니냐가 돼야 한다. 대의원제 축소나 확대가 국민이 보기에 어떤 의미가 있나. 계파와 이해관계가 있지 않고는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민이 실망한 부분인)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건 등에 관련한 혁신안이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위원은 김 위원장의 논란에 대해 “개인사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사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여명 비례 투표’ 발언이나 ‘윤석열 정부 밑에서 일한 것이 치욕이었다’는 발언 등이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아 신뢰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향후 이재명 대표의 행보와 관련해서는 “돈봉투 진상조사나 코인 사태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 해야 할 일은 이미 있다. 혁신위를 통해 하려고 했는데 못 했다면 이제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변하고 있고 변할 거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보다는 낫다’로는 더 이상 설득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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