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광복절 돌풍’ 일으킨 《오펜하이머》, 日선 왜 문제작 됐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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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과 동시에 55만 관객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정상 올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8주기…日 개봉, 아직도 불투명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오펜하이머》가 지난 15일 개봉했다. 《오펜하이머》는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한국에 막강한 팬덤을 보유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원자폭탄(원폭)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삶을 그린 영화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3주 가량 늦게 개봉했다.

원폭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영화가 ‘광복절’에 개봉한다는 점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다. 개봉일에 대해 배급사인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 측은 “한국 대작들의 개봉 일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국에서 ‘광복절 특수’를 노린 전략은 통했다. 《오펜하이머》의 사전 예매량은 53만 장을 돌파했다. 외화 블록버스터의 사전 예매량이 50만 장을 넘은 것은 지난해 말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 이후 처음이다.

개봉일 성적도 훌륭하다. 지난 15일 동원한 관객은 총 55만2942명. 그동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선보인 작품 중 최고 오프닝 성적이다. 올 여름 극장가의 선두 주자였던 류승완 감독의 《밀수》,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 물의 길》, 올해 개봉한 외화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오프닝 스코어를 모두 뛰어 넘었다. 2019년 광복절에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기록한 관객 수인 55만1246명을 넘기면서 최근 5년간 ‘광복절 최고 스코어’까지 달성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70개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역대 가장 흥행한 ‘2차 세계대전 영화’로 기록되며 8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한 국가에서는 개봉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폭 피폭국인 일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에서 영화 《오펜하이머》가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 블록버스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화 시장에 개봉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일본에서도 《인셉션》 《테넷》 등으로 인기를 얻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원폭 투하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남아 있는 일본인들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8월은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달이다. 일본 히로시마에는 1945년 8월6일, 나가사키에는 8월9일 원폭이 투하됐다. 올해 8월로 원폭 투하 78주기를 맞았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20만 명이 넘는다. 일부 생존자들은 아직까지도 원폭으로 인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개발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를 다룬 영화를, 특히 일본 내 곳곳에서 추도식이 열리는 8월에 개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매체인 더 재팬타임스는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추도하고 있을 때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사업적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논평한 바 있다. 특정 지역 사람들의 감정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배급사 역시 《오펜하이머》의 일본 개봉을 꺼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바벤하이머’ 불똥까지 튀었다. ‘바벤하이머’는 미국에서 같은 날(7월21일) 개봉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합성한 단어다. 원폭 폭발 장면을 연상시키는 불꽃 앞에서 《오펜하이머》의 주연 킬리언 머피 어깨 위에서 웃고 있는 마고 로비의 모습, 핫핑크 색상의 버섯구름 이미지가 들어간 티셔츠 사진 등이 ‘바벤하이머’ 해시태그와 함께 네티즌들 사이에서 밈처럼 쓰였다. SNS 상에서 이 밈이 유행하면서, 미국에서는 ‘바벤하이머’ 열풍이 두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논란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웠던 ‘바벤하이머’ 열풍에 《바비》 공식 홍보 계정이 참여하면서 확산됐다. 공식 홍보 계정이 해당 이미지에 “잊을 수 없는 여름이 될 것” “우리는 뚫고 지나가지”라며 댓글을 단 것이 원폭 피해자를 무시하고, 원폭 투하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로 인한 논란의 여파까지 미치면서, 원폭 개발을 다룬 영화인 《오펜하이머》의 일본 내 개봉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영화가 원폭 개발자에 초점을 맞추느라 피해자의 고통을 비추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은 영화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비추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미국 케이블 뉴스 채널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조건을 어기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원폭의 여파와 희생자에 대해서 묘사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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