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장선 ‘50년 만기 주담대’…이젠 가계부채 증가 주범?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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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한 달 만에 1조2000억원 넘자 당국, 연령 제한 검토
인수위 시절부터 도입 추진…은행 “정부 따라서 출시한 것뿐”
6개월 만에 31조원 ‘특례보금자리론’ 부채 증가 부추켰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특례보금자리론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특례보금자리론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판단, 연령 제한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세대 갈라치기’, ‘4050 주거마련 사다리 걷어차기’ 등 격한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50년 만기 주담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했고,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실행됐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정책적 고민과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출한도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 사용”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에 제동을 걸 태세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이 해당 상품 출시 한 달여 만에 대출 잔액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당국은 50년 만기 상품이 가계대출 증가세에 일조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난다. 하지만 DSR이 1년 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 능력을 보기 때문에 당장 현재 대출자 입장에서는 월 원리금은 낮아지고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해당 상품이 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일부 은행에서 50~60대 고객이 50년 만기로 대출받은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이에 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주택금융공사의 정책모기지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50년 만기)과 동일한 ‘만 34세 이하’로 연령 제한을 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의 우려도 또 나왔다. 16일 열린 ‘수출금융 종합지원방안 간담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새정부 출범 이후 감소하던 가계부채가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다”며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이 사용되거나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에서 소득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 상식에 벗어나서 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이 없는지, 상환능력이 부족한 분들에게 과잉 대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신중하게 살펴봐 달라”고 주문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은행장 및 정책금융기관장과의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은행장 및 정책금융기관장과의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양시장 소외된 4050 “주거마련 사다리 걷어차나”

연령 제한 검토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4050세대를 중심으로 격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한 50대 남성은 “분양 시장에선 청년층, 신혼부부 등에 밀려 소외당하고 있는데 이젠 50년 만기 주담대마저 연령 제한을 걸어 4050 주거마련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30대 후반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만 34세로 가입을 제한한 청년도약계좌 때와 마찬가지로 34세 이하만 청년인가”라며 “만기 40년이든 50년이든 중간에 매매해 상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엉뚱한 곳에 칼을 대려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주담대 실행 이후 대출 만기까지 이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7.5년이었다. 주택을 보유한 자가 가구도 평균 10.5년이었다. 금리 고정 거치 기간이 끝나면 대출을 갈아타거나 교육, 이직 등 다양한 이유로 대출 실행 10년을 전후로 상환을 한다는 의미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을 50년 만기 주담대로 몰아가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정부가 먼저 꺼내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50년 주담대’ 상품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DSR 규제 완화의 대안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출 규제 완화 차원에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도입을 추진했다. 이에 지난해 6월 주택금융공사는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올 1월 출범한 특례보금자리론에서도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았다. 물론 연령 제한이 있다. 특례보금자리론 만기 50년 상품은 만 34세 이하 혹은 신혼부부만 선택이 가능하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연합뉴스

한은 금통위원 “가계대출 증가, 특례보금자리론 영향 커”

정부가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자 올 1월 sh수협을 시작으로 6월 대구은행, 7월 시중은행 등에서 잇따라 같은 상품을 내놓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해 나온 상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출시한 것뿐”이라며 “50년 만기 주담대는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은데 일부 사례를 들어 은행 상품구조를 손대려고 하는 것이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제 막 시중은행에서 도입한 50년 주담대 상품보다 정책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부추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 1월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달 말 기준 31조원이 공급됐다.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해당 상품은 주택가격이 9억원 이하면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실제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 3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지난 5월25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4월 들어 금융권 가계대출이 증가로 전환됐는데 이런 현상은 시장금리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으나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국 역시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통해 8월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를 0.25%포인트 상향 조정한 데 이어 향후 공급 추이·조달금리 여건 등을 감안해 추가 조치도 강구하기로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 거래량 증가와 특례보금자리론,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등 정부의 규제 완화와 맞물린 측면이 크다”며 “50년 만기 주담대에 연령 제한을 도입해도 가계부채 증가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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