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없고 ‘친명’ ‘비명’만 남은 계파전쟁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8 07:3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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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혁신안’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까지 사안마다 첨예하게 맞서
“이 대표, 재신임 투표 승부수 던질 가능성” 관측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다. 검찰이 이 대표에게 8월30일 출석을 통보하면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9월 시작하는 정기국회 중 국회에 제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체포동의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이 불가피해지면서 친명(親이재명)계와 비명(非이재명)계 간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외부 인사를 불러 당의 혁신 과업을 맡겼지만 우여곡절 끝에 조기 종료하면서 이 대표의 리더십에도 상처를 입혔다. 더욱이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내놓고 간 혁신안이 오히려 계파 간 갈등만 더 첨예하게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혁신위는 당내 최고 대의기구인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을 때 권리당원 1인 1표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로만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반영비율을 없애 대의원제를 무력화하고 권리당원 영향력을 확대해 이 대표 체제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8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이 대표의 내년 전당대회 재출마 계산 깔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당 지도부는 혁신안을 관철시켜야만 하는 2가지 목표가 있는 것 같다. 우선 9월에 체포동의안이 오면 가결이든 부결이든 이재명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논란을 뭉개고 갈 수는 없으니 국민이나 당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재신임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현행 전당대회 룰대로 재신임 투표를 하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만 대의원을 무력화하고 권리당원 투표 반영비율을 높이면 이길 수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이 대표의 내년 8월 전당대회 재출마다. 내년에 선출될 당대표는 2026년 지방선거 공천을 하고 2027년 대선 경선룰까지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분석했다.  

혁신안을 두고 8월16일 열린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총의 공식 안건이 아니었음에도 20여 명의 의원이 자유발언을 통해 찬반 의견을 냈는데, 대의원제 축소와 공천룰 개편 논의 시점 및 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많았다. 당 지도부는 이와 관련해 추가적인 조치나 절차를 거칠지, 다른 시점에 논의할지 등을 별도로 논의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당내 분란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이지만 혁신안과 관련해서는 지도부 간에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친명’인 장경태 최고위원은 “시점은 정하기 나름이다. 왜 이 시점에 대의원제를 고민하냐는 문제 제기인데, 총선이 끝나면 바로 전당대회다. 그때는 표 계산으로 유불리가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룰을 개정하기 어렵다. 전당대회 할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가 왜 전당대회 직전에 룰을 바꾸냐는 것이다. 9월에 할지, 11월에 할지, 내년 2월에 할지는 조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총선 전에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영교 최고위원 역시 “과거에 대의원만 있다가 이제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제가 생겼다. 권리당원이 많아진 만큼 권리당원 중심의 흐름으로 가는게 맞다고 본다. 지금 이 시점에 논의할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원들도 권리당원이 많아지니 향후 그런 흐름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대의원 대 권리당원으로 대립할 내용이 아니라 변화되는 흐름으로 소통하고 조율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혁신안에 힘을 실었다. 

반면 ‘비명’으로 분류되는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혁신안을 관철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질의에 “대의원제 개편을 주장하는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금 논의하지 말자는 의견이다. 계파 간 갈등이라기보다는 민주 더미래, 민주주의 4.0 등 당내 여러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들이다. 지금은 논할 시기가 아니라는 문제 제기가 이미 공개적으로 나왔고, 지도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에 (혁신안을 지도부가 통과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많다. 아무리 전략적인 고려가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의원이 있었다면 의총에서 여러 반대 의견을 듣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혁신안 주장 자체가 틀렸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지금이냐라는 의견이 많았다. 혁신안 내용에 공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많다. 다만 전당대회 준비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이런 논의를 하는 게 통상적인 과정이었으니 그때 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8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 전국혁신회의 1차 전국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위, 추진 과정에서 친명으로 쪼그라들어”

8월28~29일 열리는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혁신안을 두고 또 한번 계파 간 갈등이 분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의총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반대 의견이 쏟아진 만큼 워크숍에서는 더한 격론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당 지도부는 앞서 열린 의총에 이어 추가적인 의견이 나온다면 계속 경청하고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대변인은 “정기국회 대비 워크숍이니만큼 국정감사, 법안, 결산 3가지가 논의의 축이 될 것이다. 그다음에 각종 현안에 대한 당의 전략 설명이 있을 것이다. 총선 전략 논의도 있긴 하겠지만 주는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혁신안 관련 논의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총에서 얘기하실 분들은 다 해서 그사이에 상황 변화가 특별히 있지 않는 한 의원들이 재차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의원들이 지도부에 의사표현을 했고, 지도부가 아직 그에 대한 의사표현을 안 했으니 추가적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많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외부 인사까지 불러 혁신위를 꾸렸음에도 계속 혁신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혁신위가 떠난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이 대표는 어떤 혁신안이 나오든 받아서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했다. 의총에서 혁신위에 의원들 목줄을 내놓겠다고 결의한 건데, 그렇게 잉태한 혁신안에 대해 지도부가 논의해 보겠다고 흥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혁신은 물 건너간 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으로 비칠 걸 우려해 외부 인사를 부른 건데 왜 혁신안을 의원들이 가감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혁신안 내용과 관련해서는 “당초 혁신위는 친명도 비명도 아니었다. 출범할 때는 ‘혁신안을 받지 않으면 민주당이 국민 심판을 받게 될 거야’라는 권위와 힘이 있었는데, 추진 과정에서 친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 작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온 혁신위가 대의원제 개편안을 혁신안에 포함시키면서 의원들 소원수리 해주는 기관이 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혁신안)뒤에 있는 공천룰 개편안을 받기 싫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앞에 있는 대의원제 개편안을 이유로 혁신안 자체를 반대할 빌미를 줘버렸다. 대의원제 개편안은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뺄 수도 있을 것이다. 험지 출마든 불출마든 이 대표가 자기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리더십이 설 것이다”고 말했다. 

권지웅 전 비대위원은 이번 혁신안에 대해 “번지수가 틀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혁신안이 계파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혁신안은 원래 논쟁적이고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을 관철시킬 혁신위의 지위와 힘이 없는 상태에서 논쟁의 상징적인 사안을 던짐으로써 오히려 혁신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사태 해결이 진정한 혁신” 

권 전 위원은 “‘대의원의 투표 비율을 없앤 것이 다음 전당대회를 위한 지도부의 전략 아니냐’는 질문에 클리어하게 답할 수 없다면 지도부는 이 이슈는 내려놓고 정말 해야 할 혁신으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국민이 보기엔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이 진정한 혁신인데, 이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을 안 하고 있다. 이 대표가 당대표가 된 지 1년이 됐는데 무엇이 나아졌나. 혁신보다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당으로 여겨지는 부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앞서 재보궐선거, 대선 다 졌는데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진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고액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 징계안을 두고도 계파 간 의견 차는 여전하다. 국회 윤리특위는 8월22일 김 의원 징계안에 대한 투표를 실시하려 했으나 표결 개시 1시간 전에 김 의원이 돌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표결이 오는 30일로 전격 연기됐다. 비명계는 당내 온정주의를 비판하며 단호한 대처를 주장하는 반면, 일부 친명계 의원은 ‘마녀사냥’을 경계해야 한다며 김 의원을 두둔하고 있다. 모든 국정 사안이 여권 대 야당의 정쟁 대결로만 치닫는 게 지금 용산과 여의도 풍경이라면, 모든 당내 사안이 친명 대 비명의 정쟁 대결로만 치닫는 또 하나의 풍경이 지금 민주당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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