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 시키지 않아 범죄율이 증가했다?”
  • 변문우 기자·이승주 인턴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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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반복되는 흉악범죄 예방 위해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 나서
“격리와 차단만이 해결책 아냐…제도 관련 인프라 구축부터 필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자’ 중 상당수가 과거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 신림동 등산로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후 죽인 범죄자 최윤종도 과거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최윤종은 군 복무 중에도 총기와 실탄을 들고 탈영했던 전적이 드러났다. 또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흉기 난동을 피워 승객들을 다치게 한 남성도 과거 미분화 조현병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신질환자들의 흉악범죄가 연일 반복되며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사법입원제’ 도입을 다시금 추진하자는 분위기다. 사법입원제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자·타해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치료 목적으로 강제 입원시킬 때, 법원이나 정신건강 전문가로 구성된 준사법기관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미국 대부분 주와 독일, 프랑스 등에서 법원 심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현행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절차가 까다롭다. ▲보호자 2명 이상의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 ▲경찰과 의사 동의로 3일 입원하는 ‘응급 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명령하는 ‘행정 입원’ 외에는 방법이 없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24일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이튿날 오전 자수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6일 밝혔다. ⓒ 연합뉴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24일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이튿날 오전 자수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6일 밝혔다. ⓒ 연합뉴스

사법입원제 온도차…당정은 강력 추진, 野는 신중

국회에서도 과거부터 사법입원제 도입이 화두에 올라왔다. 앞서 20대 국회에선 2019년 가정법원이 입원 심사를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우후죽순 발의했었다. 2018년 12월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망 사건을 막으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들은 ‘환자 인권’ 등의 쟁점 소지로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당정은 최근 급증하는 범죄들을 계기로 다시금 ‘사법입원제’ 카드를 꺼내드는 분위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3일 입원제도 실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법·제도상 전체 입원의 35% 가량이 비자의 입원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보호자에 의한 입원은 보호자에게 너무 과도한 부담을 주고 행정 입원의 경우 민원 발생 등으로 행정기관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의힘도 정부와 함께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정부에서도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당정 협의를 통해 해당 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며 “원내 차원에서도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관련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등의 발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에선 사법입원제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도 제기하고 있다. 범죄자의 교화와 사회로의 복귀도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번 정신질환을 진단받으면 평생 정신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사회적 격리와 차단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모씨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모씨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입원제, 환자 인권 지키기 위해 도입해야”

그러나 의학계 일각에선 오히려 사법입원제가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행 강제입원은 절차가 복잡하고 그 과정 중에 의사가 기소를 당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입원제도에 대한 효율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의료적 판단과 법적 책임을 분리할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정신질환자가 방치되다 보면 결국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감부터 되는 경우가 생긴다”며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법입원제가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사법입원제가)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관리만 제대로 된다면 강력 범죄는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사법 인프라상, 사법입원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현 교수는 “(입원이) 응급을 요구하는 일인데 하루 이틀 안에 지금의 법 시스템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현재 판사 수 자체가 적다고 지적했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도 “미국, 독일 등 해외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판사가 없다”며 “인프라부터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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