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의 바그너그룹 “사실상 끝났다”
  • 김휘동 유럽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3 10:05
  • 호수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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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용병들, 푸틴에 대한 앙심 상당하단 관측
푸틴, 다른 용병집단에 분리·합병시킬 듯

‘푸틴의 요리사’로도 불린 최측근이었지만,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눈 밖에 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숨지면서, 그가 이끌던 바그너그룹의 운명에 관심이 쏠린다. 프리고진은 8월23일 갑작스러운 전용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현재 서방 언론에서는 추락의 원인을 두고 항공·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며 프리고진의 전용기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에서 시작된 사보타주(테러 행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그 주체로는 6월 반란에 대한 앙심을 품은 푸틴 대통령이 제일 먼저 거론되고 있다.

지난 6월 반란 이후 프리고진은 바그너의 거점을 벨라루스로 옮기며 이곳에 신생 법인을 설립하고 조직 재정비에 나서는 듯 보였다. 특히 사망 하루 전에는 아프리카로 추측되는 장소를 배경으로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게시하며 “러시아를 위대하게, 아프리카를 자유롭게”라고 발언했다. 앞으로 바그너그룹이 자신들의 노른자 사업이 몰린 아프리카 활동에 집중할 것이란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바그너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프리고진에게 각별한 충성심을 보였던 벨라루스 주둔 바그너 용병들의 해산이 최근 관측되고 있다. 용병들은 벨라루스를 떠나 귀향을 선택하거나 소수는 아프리카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장 프리고진은 물론 그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우트킨, 발레리 예브게니예비치 칼로프 등 바그너 최고 참모들도 같은 사고로 숨지면서 사실상 지도부 전부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유럽 언론들은 바그너가 더 이상 스스로 기존 조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군사 전문 싱크탱크인 ISW는 “바그너그룹이 더 이상 기존의 준독립 군사조직 체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바그너의 벨라루스 주둔에 대해 더 이상 러시아 정부가 벨라루스 정부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감축된 급료로 인해 바그너 용병들이 퇴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러시아가 바그너 지우기에 들어간 것이다. 러시아 언론 또한 러시아 내 바그너 용병들을 기리는 공동묘지와 시설들의 철거를 보도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한 용병이 8월24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 설치된 임시 추모소에서 사망한 프리고진과 우트킨 사진 앞에 꽃을 올려놓고 있다. ⓒAFP 연합
바그너그룹의 한 용병이 8월24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 설치된 임시 추모소에서 사망한 프리고진과 우트킨 사진 앞에 꽃을 올려놓고 있다. ⓒAFP 연합

“벨라루스 주둔 바그너 용병들 해산”

바그너의 미래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바그너가 러시아 정부군에 사실상 흡수 편입되는 것이다. 단순히 세력뿐 아니라 방대한 실전 전투 경험과 네트워크, 또 막대한 수입원까지 가진 바그너그룹이기에 러시아 정부 입장에선 적지 않은 이득이다. 특히 바그너는 아프리카 내에서 다양한 이권 사업에 개입하며 금과 같은 천연자원 광물 채득권을 갖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연간 약 2억9000만 달러 규모의 금을 채굴할 수 있는 금광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바그너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새로운 리더 임명을 통해 소유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 리더로는 안드레이 트로셰프 전 러시아군 대령이나 러시아 정찰총국의 안드레이 에버리아노프 장군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트로셰프 전 대령은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푸틴이 차기 바그너그룹 리더로 세우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프리고진이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을 제거하는 기술자로 알려진 에버리아노프 장군은 과거 러시아의 이중첩자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에 대한 암살 시도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방 정보 당국은 이번 프리고진의 사망 또한 그가 푸틴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수행한 것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러시아의 바람대로 바그너의 용병들이 통제되느냐다. 현재 푸틴이 프리고진의 죽음 배후에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바그너그룹 용병들 사이에서 푸틴에 대한 앙심이 상당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당초 바그너와 러시아 정부 사이의 갈등도 여전히 남아있다. 창립 이후 러시아 정부의 비공식 핵심 전력이 돼왔던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투입되면서 러시아 정부에 대해 극심한 불만을 쌓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리고진이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바그너 창립자로서 공개 석상에 자신을 드러낸 것 또한 내부의 불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관측인데, 프리고진은 이후 종종 러시아 국방부 등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했다. 그 최정점이 바로 6월 반란이었다.

 

용병기업들에 ‘충성 맹세’ 요구한 푸틴

바그너가 다른 러시아 정보 당국 및 러시아 용병기업들로 흡수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내에는 우후죽순으로 용병기업들이 생겨났다. 바그너와 러시아 군 당국 간 불화 이후 러시아 군 및 정보 당국 수뇌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용병기업들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으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소유의 ‘패트리엇’과 러시아 재벌인 겐나디 팀첸코의 ‘레두트’가 있다.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 또한 그들의 민간 군사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군사 업무를 수행하거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지원하는 모든 이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는 정규군뿐만 아니라 군사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군과 민간단체에도 확대 적용되는 것으로, 여러 용병기업과 더불어 사실상 바그너그룹을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내부 비판을 의식한 러시아 정부가 정규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민간군사기업과 용병들을 앞세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용병들은 국제법과 규범을 따르지 않는 집단”이라며 “바그너를 교훈 삼아 러시아 정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용병집단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며 ‘충성 맹세’ 또한 단순히 바그너와 같은 반란 행위의 재발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군 명령체계에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포함하려는 계산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바그너의 미래와 관련해선 “단순히 수장을 교체한다고 바그너 내부가 기존 체제로 유지될 수는 없어 보인다”면서 “이미 바그너 내부에서 뿌리 깊게 진행된 프리고진의 영웅화와 그의 카리스마를 대체하는 누군가를 찾는 것보다 바그너그룹을 다른 용병집단에 분리, 합병시키면서 이들과의 명령체계를 더 효과적으로 손보는 것이 러시아 정부에는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찌 됐든 분명한 사실은 많은 전문가가 전망하듯 프리고진이 이끌던 독자적인 바그너그룹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 공군 소장 출신 군사전문가인 션 밸은 “프리고진이 없는 바그너그룹이 향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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