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 6년, 빛보다 그림자 많았다 [쓴소리 곧은 소리]
  • 박형명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prev04@naver.com)
  • 승인 2023.09.01 16:05
  • 호수 17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수행하듯 모심으로써 사법부 권위를 40년 전으로 후퇴시켜
특정 연구회 출신 판사들 등용…이념·정파적 판결에 재판 지연 예사

1970년대 후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을 초청해 골프 라운딩을 할 때 벌어진 일이다. 대법원장을 수행했던 캐디가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장관님’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캐디는 아마 자기가 모시는 골퍼가 대통령보다 아래 사람이고 대법원 운운하니 대법원장관으로 호칭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캐디의 실수는 서슬 퍼렇던 유신체제하에서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실추돼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법무 참모 정도로 인식되던 당대 분위기를 본의 아니게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것이 호사가들의 평이었다.

우리 사법부에는 ‘대한민국 법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다음 달인 9월13일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넘겨받은 날을 기념한 것이다. 이때를 법원이 실질적으로 수립된 날로 보는데 이를 기려 9월13일을 ‘대한민국 법원의 날’로 제정해 매년 대법원에서 기념식을 열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듬해 2018년 9월13일에는 ‘사법부 제70주년’이라는 타이틀로 거창하게 기념식을 개최했고, 이 자리에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 현관에서 기다리다가 문 대통령이 도착하자 공손하게 인사하며 영접한 후 행사장까지 문 대통령 한 발짝 뒤에서 안내하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사법부 수장이 행정부 수반을 수행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2018년 9월13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 3년이 넘었는데 1심 판결조차 안 나와

필자는 이 장면이 김명수 사법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대법원 현관에서는 법원행정처장이 영접하고 대법원장은 식장에서 대통령을 맞이하면 족할 사안이었다. 국회에 대통령이 방문하면 국회사무총장이 영접을 하고 국회의장실로 안내해 국회의장이 맞이해서 차를 나누는 의전과 비교해 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사법 70주년 행사에서 보여준 김 대법원장의 처신은 자신이 대통령의 수행원 정도라는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사법부의 권위를 ‘대법원장관’이던 40여 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조금 유식한 표현을 쓰면 역사를 후퇴시킨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김 대법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법원은 크게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대략 두 가지로 그 문제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변질된 것이, 정치와 이념이 법원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왔다는 점이다. 편파적이라고 비난받는 특정 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중용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 자체에 의심을 샀다.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도 공정성의 중요한 내용이다. 이념에 경도된 판사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정권에 유리하게 재판을 끌어나가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들은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켜 기소 후 3년이 넘어 겨우 1심 판결이 선고되거나 어떤 사건은 아예 1심 판결조차 선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도 정치 성향이 뚜렷한 판사가 사자명예훼손 사건에서 이례적인 판결을 해서 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에는 사건이 계류된 당사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담당 재판장과 가까운 변호사가 누구냐? 이런 질문도 문제가 있지만 김명수 사법부를 거치면서 당사자들의 질문이 하나 더 늘어났다. 담당 재판장의 성향이 어떠냐? 특정 연구회 출신이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어떻게 재판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심리도 하기 전에 결과가 예상되는 재판이라면 그 재판의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이른바 ‘사법농단’을 척결한다면서 법원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수많은 고위 법관, 능력 있는 법관을 사지로 몰아넣거나 법원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중 한 사람에 대해서는 사표 수리도 거부하며 정치권에서 탄핵하도록 유도해 법관의 손발을 묶으려 했다. 판사들로 하여금 정치권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을 하면 탄핵소추를 각오해야 하는 위험을 안겨준 것이다.

 

워라밸 추구하는 판사들, 하향 평준화돼

두 번째로 변질된 것이 법원이 예전만큼 일을 안 한다는 점이다. 사건을 대하는 판사들의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 오랜 세월 법조를 경험한 법조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원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의 최종 해결기관이다. 신체의 자유를 직접 억압하는 형사사건뿐만 아니라 민사사건도 당사자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재산, 명예 등이 걸려 있어 당사자들은 목을 매고 있다. 이러한 사건에 결론을 내리는 법관은 단순히 월급 받고 자리를 지키는 직장인이 아니라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갖고, 경건하고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사안을 파고들어 적정한 결론을 내릴 사명이 있다. 오죽하면 근대 사법제도를 만든 서양에서 법관직을 성직(聖職)에 비유하겠는가.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고취시키기는커녕 법원 내부로부터 독립이 중요하다는 핑계로 각종 제도(승진제 폐지, 인기투표로 전락한 법원장 추천제, 사무분담 권한의 분산, 인사평정제 약화 등)를 통해 일 안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확산시켰다.

이로써 판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실하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사건을 처리하는 수많은 판사의 의욕을 꺾어 결국 하향 평준화가 초래되는 좌파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판사가 되면 안정된 직장에서 간섭이나 지시 없이 출퇴근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괜찮은 보수를 받으며(공무원치고는 높은 편이다) 노후까지 보장받는 데다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예우를 받는다.

그들은 왜 이렇게 대우를 받는가. 판결을 기다리는 국민에게 최선을 다해 신속·공정하게 판결을 하라고 나라가 이런 대접을 하는 것이지 워라밸을 추구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에 근무하는 법관들이 ‘주식회사 서초물산 회사원’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9월24일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 종료일이다. 돌이켜보면 김명수 시대의 사법부는 빛보다 그림자가 많았다.

개혁 실험은 처음엔 기대되는 바 없지 않았으나 갈수록 정파성과 이념성이 드러나면서 신뢰를 잃었다. 신임 대법원장은 어깨가 무겁겠지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우리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법원으로 정상화되기를 고대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형명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