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인적 끊긴 신림동 등산로엔 ‘순찰대’만…“그래도 혼자는 못 다녀”
  • 이승주 인턴기자 (lseungj99@gmail.com)
  • 승인 2023.09.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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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 발생 3주 후…등산객 드물어
‘민·관·경 합동 순찰’에 산악순찰대, 밤낮으로 돌아
인근 주민 “경찰 있어 안심…여전히 무서워 못 올라가”
관악산 생태공원 주차장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 ⓒ이승주 시사저널
서울 관악산 생태공원 주차장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 ⓒ시사저널 이승주

지난달 17일 30대 초등학교 교사가 등산로로 출근을 하다 봉변을 당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만인 지난달 19일 끝내 숨을 거뒀다. 성폭행 살인사건 피의자 최윤종은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지 3주가 지났다. 지난 6일, 다시 찾은 서울 관악산 등산로 입구엔 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안전을 위해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바란다”고 적힌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이날 산에는 등산객보다 등산객을 ‘지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민·관·경 합동 순찰’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관악구는 지난 4일부터 자율방범대, 관악구 공무원, 지구대·파출소 경찰로 구성된 120여 명의 합동 순찰대는 동별 다중밀집 지역, 범죄 우범지역,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 등을 중심으로 순찰을 강화했다.

자율방범대, 관악구 공무원, 지구대·파출소 경찰로 구성된 민·관·경 합동 순찰대가 등산로에서 순찰하고 있다. ⓒ이승주 시사저널
자율방범대, 관악구 공무원, 지구대·파출소 경찰로 구성된 민·관·경 합동 순찰대가 등산로에서 순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승주

미성동 자율방범대 신경자(70)씨는 “보통 하루 1시간 정도 순찰을 돈다”며 “오후에 함께 합동 순찰을 하고 자율방범대는 따로 야간에도 나온다”고 말했다. 자율방범대 박순엽(69)씨는 “(순찰 돌 때) 전혀 무섭지 않다. 경찰도 함께 있고 일이 생기면 바로 신고를 해서 대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조직한 순찰대도 모습을 보였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달 21일부터 ‘관악 둘레길 산악순찰대’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2인 1조 5개조인 산악순찰대는 전체 15㎞에 이르는 관악구 둘레길을 다섯 구간으로 나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순찰한다. 미성파출소 소속 김정우(28) 경장은 “한번 순찰하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며 “왔다 갔다 반복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지금은 2~3명 모여 등산…CCTV 달아도 소용없을 것”

범죄 현장은 등산로 입구에서 15분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나무와 풀이 우거져있는 비탈진 장소였다. 사건 발생 3주가 지났지만 인근 나무에는 국화꽃과 추모 편지가 들어있는 투명 봉투가 걸려 있었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는 산불감시용 CCTV 1대만 설치돼 있었다.

관악구 등산로 성폭행 살인범 최윤종의 범행 장소. 피해자에 대한 추모객의 물품이 걸려있다. ⓒ이승주 시사저널
관악구 등산로 피해자에 대한 추모객의 물품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이승주

관악서는 한 달간 산악순찰대를 시범 운영한다. 이에 김 경장은 “개인적으로 지속하면 좋겠지만 현재 경찰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산악순찰대는 각 지구대, 파출소에서 1명씩 자원해서 편성됐다. 기존 인력에서 빠진 빈자리는 나머지 팀원들이 나눠서 맡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는 이들이 있다. 합동 순찰대를 비롯해 경찰 퇴직자로 구성된 50명의 ‘안전지킴이’다. 김 경장도 며칠 전 순찰 중에 퇴직 경찰관들과 마주쳤다며 “힘을 보태주시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안전지킴이는 지난 4일부터 주요 공원과 관악산 숲길 등 안전 취약지역을 순찰하며 3달간 운영된다.

등산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등산로 입구 벤치에 앉아있던 70대 이아무개씨(70)는 산악순찰대를 보며 “경찰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등산에는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범죄현장) 그곳까지는 무서워서 못 올라간다. 지금은 등산로 입구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김아무개(70)씨도 “경찰이 있어 안심은 되지만 혼자는 못 다닌다”며 말을 보탰다.

관악산 둘레길 산악순찰대. 관악경찰서 미성파출소 김정우 경장과 신사지구대 김수종 순경이 순찰하는 모습이다. ⓒ이승주 시사저널
관악산 둘레길 산악순찰대. 관악경찰서 미성파출소 김정우 경장과 신사지구대 김수종 순경이 순찰하는 모습이다. ⓒ시사저널 이승주

이들과는 다르게 산에 오르는 젊은 여성 등산객도 있었다. “산길이 전혀 무섭지 않다”는 신수연(29)씨의 등 뒤에는 1미터가 넘는 검을 메고 있었다. 매일 4시간씩 무술 연습을 위해 산을 오른다는 신씨는 사건 당일에도 관악산에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사건 전후 등산 행태가 변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혼자 등산로를 오갔는데 지금은 2~3명씩 모여서 온다”며 “마주치는 여성분들에겐 호신용품을 소지하고 올라오라고 당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CCTV를 달아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산 속 사각지대를 다 비추지 못하니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게 차라리 더 안전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CCTV 확대 대책? 설치 방법부터 먼저 생각해야”

사건 발생 약 1주일 뒤인 지난달 23일 서울시는 무차별 범죄 대응을 위해 CCTV 미설치 치안 취약지역을 전수조사해 범죄예방환경디자인(CPTED, 셉테드) 대상 지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원 및 등산로 등을 비롯한 범죄 사각지대에 CCTV도 확대 설치하고 폭력 및 이상행동 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지능형 CCTV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알렸다.

서울시 대책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법무부 범죄예방 환경개선협의회 자문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강석진 경상국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무작정 CCTV 숫자만 늘리겠다는 대책은 논의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설치 장소의 유형에 따라 CCTV의 범죄예방효과와 실제 감시 가능 범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실제로 전력 시설과 거리가 먼 산속이나 공원에 CCTV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울러 논의되고 있는 지능형 CCTV가 있더라도 범죄 예방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범죄 현장을 포착해 출동하더라도 산속에 있는 현장에 접근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등산로에 셉테드를 적용할 수는 있지만 일반 주거지랑은 물리적 환경이 다르다”며 “CCTV 확대 설치를 밝히기 전에 설치 방법부터 먼저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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