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싸움 보고 있기 지친다…우리 위한 공약 내는 후보 찍을 것”
  • 이승주 인턴 기자 (lseungj99@gmail.com)
  • 승인 2023.09.18 10: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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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총선 예비고사’ 격전지 된 강서구…정당 지지도와 유사한 표심
‘윤석열 대 이재명’ 대리전에 ‘검경 대결’로 여야 구도 짜여

‘대한민국 민심의 축소판’. 10월11일 구청장 보궐선거가 열리는 서울 강서구의 민심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지금 강서구는 마치 세 개의 조각으로 나뉜 케이크 같았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그리고 어디에도 표심이 기울지 않은 중도·무당층이 있었다. 

강서구에서 실제 접한 세 축의 민심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정당 지지도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60대 이상은 여권 지지를, 40대를 기준점으로 30~50대는 야권 지지 성향을 많이 드러냈다. 지역에서 만난 20대들은 이번 선거는 물론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여야가 모두 싫다”는 의견을 많이 표출했다. 지지층의 크기와 지지 강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강서구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케이크 조각 크기는 엇비슷했다.

이번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의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로 불린다. 총선 전에 열리는 유일한 선거로, 총선의 승패를 가를 수도권 민심을 확인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구도도 흥미롭다.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은 김태우 전 구청장이 예비후보로 뛰어든 데 이어 민주당이 친이재명계로 평가받는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을 공천하면서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리전 구도가 짜였다. 만약 김 전 구청장이 여당 후보로 최종 낙점될 경우,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대표해 ‘검경 대리전’이 치러지는 모습도 연출될 전망이다. 

거대 양당의 프레임 싸움도 매우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는 국민의힘 귀책사유로 치러진다. 여당 소속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지난 5월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해 실시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민주당은 ‘여권 심판론’ 프레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여당은 ‘김명수 대법원의 편향성’을 내세우며 오히려 ‘야권 심판론’ 프레임을 가동하고 있다. “불법 사실을 공익 제보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김명수 대법원이 얼마나 왜곡·편향됐는지 확인해 주는 일”이라는 김기현 대표의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김 전 구청장은 2018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관 재직 시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돼 올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고 구청장직도 잃었다. 사법부는 그의 공익신고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여당은 그 책임을 사법부와 전임 정권에 돌리고 있는 셈이다. 

과연 강서 구민들의 민심은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을까. 현장에서 접한 민심은 당초 예측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2020년 총선에서 강서 갑·을·병 모두에서 민주당 의원이 당선됐고, 지난 지방선거 직전까지 12년간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집권했던 점 등을 들어 ‘민주당이 다소 유리’하다는 분석을 많이 했다. 실제 지난 대선 당시 강서구는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이 윤석열 후보를 앞섰다. 보궐선거가 여당 귀책사유로 치러지는 점도 불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지역에서 실제 만난 주민들은 결이 다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결코 어느 한쪽으로 판세가 기울어졌다고 할 수 없는 민심의 기울기였다. 9월9일 주말부터 13일까지 수차례 강서구를 찾았다. 

10월11일 치러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을 살펴보기 위해 시사저널 취재진이 주민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60대 이상은 與, 40~50대는 野 지지 

강서구 민심을 파악하려면 강서 구민들의 발을 쫓아야 했다. 그래서 까치산역부터 화곡역·발산역·방화역을 훑었다. 지하철 5호선의 4개 역은 강서구를 관통해 지역주민들의 발이 돼주고 있다. 

9월9일 오전 까치산역을 찾았다. 2호선과 5호선이 맞닿아 있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까치산역은 강서구 선거 유세의 단골 장소로 꼽힌다. 역사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노년층을 제일 먼저 만났다. ‘누가 당선됐으면 좋겠나’라는 질문에 답은 ‘국민의힘’으로 모여졌다.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꼽히는 60대 이상에게는 ‘여권 심판론’이나 ‘김태우 심판론’이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곡8동에 사는 박아무개씨(79)는 “김 전 구청장이 사면된 건 잘된 일”이라며 “정정당당한 판결이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 있던 70대 여성 역시 “공익제보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나”라면서 “민주당이 억지로 그런 것(결론)을 만들었다”고 했다. 

반면 40대와 50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50대 남성은 “사면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바로 다시 후보로 나오는 게 정치 도의에 맞느냐”며 “모든 걸 떠나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까치산역 1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까치산시장 입구에서 만난 40대 여성도 “김 전 구청장의 사면을 보라. 지금 국민의힘이 하는 걸 보면 어떻게 여당에 표를 줄 수 있나”라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던질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대부분의 20대 “진영 대결에 관심 없다” 

선거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평가받는 ‘스윙보터’ 20대의 목소리는 또 달랐다. 화곡역 사거리에서 만난 운동복 차림의 20대 청년들은 ‘어느 쪽을 지지하나’라는 질문에 “양측 모두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도 관심이 없다”는 답을 내놨다. 강서구 구석구석에서 만난 20대 청년 가운데 열에 아홉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은 ‘실용’과 ‘현실’을 강조했다. 발산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이지씨(여·25)는 “지금까지 강서구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며 “진영 대결엔 관심이 없다. 대신 전세 피해 구제나 복지 등 실질적인 일을 해줄 구청장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했다.

정치에 무관심해 보이던 2030세대들에게 질문을 바꿔 물어보니, 이들의 응답 또한 달랐다. 보궐선거에 무관심하다고 대답하던 중도·무당층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내 삶을 바꿀 정책’ 등을 내놓는 후보를 찍겠다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했다. 

방화역 인근 방신 전통시장에서 두부를 팔던 50대 상인은 “양당 모두 자기들 정치만 하지 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신경도 안 쓴다”며 시장에서 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백화점을 언급했다. 맞은편 과일가게 사장(37)도 비슷한 지적을 제기했다. 족발을 판매하던 최아무개씨(여·69)는 “국민 입장에서 양당의 싸움은 그저 시끄러울 뿐이다. 이제는 보고 있기도 지친다”며 시민을 위한 ‘손에 잡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보고 싶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강서구를 떠나기 전에 발산역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여기서 만난 70대 중반의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거대 양당이 펼치는 정치는) 지금도 너무 혼란스럽다. 싸움만 하지 말고 시민을 위해, 우리를 위해 일하라. 그런 공약을 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강서구의 민심은 확실했다. 세대도, 지역도, 이념도 초월하는 확실한 주문이었다. 주민을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일해 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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