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묵은 실손보험 간소화법, 21대 국회서도 물 건너가나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8 17: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논의하려던 법사위, 野 불참으로 파행…본회의 상정 먹구름
과정상 불편 등으로 매년 약 2600억원 실손보험금 미청구
연내 처리 불투명해져…내년엔 총선 영향으로 무산 가능성

환자가 진료 받은 병원에서 바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14년째 논의를 거듭하고 있는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올라갔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법사위는 18일 논의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야당 불참으로 회의 진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이번에도 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총선 등의 정치 일정으로 또 다시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9년 4월11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융소비자연맹, 경실련 등 7개 시민단체 대표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즉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4월11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융소비자연맹, 경실련 등 7개 시민단체 대표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즉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 국민 불편 해소 법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에서 해당 법안이 논의됐으나 계류된 것이다. 이에 법사위는 18일 전체회의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 도중 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민주당이 상임위 일정 ‘보이콧’을 선언하며 법사위 회의에 불참했다. 정상 진행이 불가한 상태다.

개정안은 진료 받은 병·의원에서 직접 중계기관에 전산화된 관련 파일을 전달, 바로 보험금 청구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관련 서류를 직접 떼서 사진을 찍어 앱을 통해 청구하거나 팩스를 통해 보험사에 보내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해당 개정안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지난 13일 법사위 회의에 출석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종이로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가서 청구하고, 수령 하는 과정에 불편함이 있어 실손보험금이 소액일 때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법안이고,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서민들이 (시행되길) 기다리는 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과정상 불편 등의 이유로 청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청구되지 않은 실손 보험금은 각각 2559억원, 2512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달 보험금은 꼬박 납부하지만 소액에 번거로운 과정 탓에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은 의료법 위반 가능성 등을 이유로 거세게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앞서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시민, 환자 단체와 의사 단체는 실손보험 간소화 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협회 관계자들이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촉구 공동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협회 관계자들이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촉구 공동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단체 “위헌소송도 불사”…총선 다가올수록 통과 가능성↓

환자 단체는 “민간 보험사의 환자 정보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이라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환자 정보가 더 손쉽게 보험사로 넘어가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단체들은 “보험사가 개인의 의료 정보를 쉽게 취득하게 되면 보험 가입·갱신 시 이를 활용해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도 인상될 것이고,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줘 결국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4개 단체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전송거부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법사위 회의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의료법 21조 2항, 약사법 30조 3항에서는 의료관련 정보열람이나 제공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보험업법 개정안은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의료법, 약사법 취지와 충돌할 수 있다”면서 “법적 정합성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보험업법 담당 상임위원회서 의견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의협) 상근부회장이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이정근 대한의사협회(의협) 상근부회장이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이에 금융위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국회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실, 법제처에서 법률 정합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환자 정보가 보험사에 보험 가입 및 보험금 지급 거절 등에 대한 우려 역시 건강정보심사평가원 등 전문적인 기관에 자료 중계업무 위탁을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법 개정 권고를 시작으로 논의를 거듭한 해당 법안은 이번엔 통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지난 5월 정무위 법안소위에 이어 6월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치며 법사위로 법안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한 차례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국회 상황이 여야 대치로 악화되면서 연내 처리 무산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21대 국회에서 처리될지도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내년 총선 준비에 돌입하면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