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연루, 13억 내놔” 동남아서 韓사업가 노린 ‘셋업 범죄’
  • 이금나 디지털팀 기자 (goldlee1209@gmail.com)
  • 승인 2023.09.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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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체포 상황 연출해 ‘수사 무마’ 갈취…캄보디아 현지 경찰도 섭외
은행에서 현금으로 범죄수익금 중 일부를 현금으로 송금하는 피의자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제공
은행에서 현금으로 범죄수익금 중 일부를 현금으로 송금하는 피의자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제공

동남아 현지에서 피해자에게 범죄 누명을 씌우고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금품을 뜯어내는 이른바 '셋업 범죄(Set up)' 일당이 검거됐다.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실제 현지 경찰도 섭외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수사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박아무개(63)씨와 권아무개(57)씨 등 4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7월4일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60대 사업가 A씨에게 "성매매 혐의 수사를 무마하려면 미화 1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협박해 1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총책 박씨는 평소 골프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범행대상으로 선정한 후, 범행 수개월 전부터 캄보디아 현지에서 10년 넘게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는 한인 브로커 주아무개(51)씨를 통해 '체포조'를 미리 섭외했다.

범행 당일 라운딩을 마치고 들른 주유소에 경찰로 추정되는 현지인 6명이 들이닥치자 박씨는 A씨에게 "성매매로 체포된 것 같다. 현지에서 징역형을 살 수 있다"고 했다.

A씨가 의심하지 않도록 일행 중 권씨도 함께 체포되는 것처럼 꾸몄다. 이들은 실제 현지 경찰서로 끌려가 5시간가량 대기했다. 권씨는 먼저 13억원을 주고 풀려난 것처럼 연기했다. 결국 A씨는 체포조가 제시한 국내 계좌로 13억원을 세 차례에 걸쳐 송금했다.

돈을 뜯어낸 일당은 귀국 후 김아무개(50)씨를 주축으로 본격 34곳의 은행을 돌며 범죄 수익금을 현금화하고 이를 분배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범행을 의심하자 합의금을 분담하자며 5억원을 다시 돌려주며 피해 신고를 막으려 한 정황도 있다.

경찰은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사람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범죄자로 몰아간 뒤 돈을 뜯어내는 전형적 '셋업(Set up) 범죄'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셋업 범죄는 피해자 본인도 범죄에 연루됐다고 생각해 피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이용한 범죄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형사처벌을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 적극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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