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출소, 슬프다”…‘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끝나지 않은 절규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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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강간살인미수 혐의 30대 피고인에 징역 20년 확정
피해자 “20년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평생 고민해야”
6월12일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6월12일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이아무개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성폭행을 목적으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뒤따라가 무차별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사건 공론화와 혐의 입증을 위해 처절한 목소리를 내 온 피해자는 형 확정에 "굉장히 슬프다"며 사법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강간등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31)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10년간 신상공개와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취업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유지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항소심 형량에 대해서도 "징역 20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5월22일 오전 5시께 부산진구 서면에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 살해하려 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당시 피해자 A씨의 머리를 발로 가격,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A씨를 재차 공격한 뒤 어깨에 들쳐 메고 CCTV 사각지대인 현관 1층 구석으로 이동했다. 약 7분 후 다시 CCTV에 등장한 이씨는 현장에서 도주했고 경찰과 구급대가 출동했을 때 피해자의 바지와 상의 일부는 벗겨진 상태였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조사를 받으며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 검찰은 1심에서 가해자에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폭행 혐의를 인정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이아무개씨가 조사를 받으며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 검찰은 1심에서 가해자에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폭행 혐의를 인정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초동수사 부실로 이씨는 기소 당시 살인미수 혐의만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살인미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1심 선고 이후 온라인 상에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사건을 공론화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착용한 바지에서 이씨의 DNA를 검출하는 등 추가 증거를 찾아냈고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피해자는 직접 항소심 공판에 출석, 사건 당시 입었던 청바지가 일반적인 물리력 만으로 벗겨지는 형태가 아니라며 성범죄 또는 시도가 있었음을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강간이나 살인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범행 당시 정신과 약을 먹고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변명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씨는 구치소에 수감된 다른 재소자들에게 A씨 신상정보와 주소를 보여주며 출소 이후 '보복' 하겠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돌려차기로 피해자 머리를 가격하는 장면(왼쪽)과 가해자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일부 ⓒ 연합뉴스, 온라인커뮤니티 캡쳐
부산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이아무개씨가 돌려차기로 피해자 머리를 가격하는 장면(왼쪽)과 가해자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일부 ⓒ 연합뉴스, 온라인커뮤니티 캡쳐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방비 상태에 있던 피해자의 머리를 의도적·반복적으로 집요하게 가격해 실신시키고 외관상으로도 위중한 상태에 빠졌음이 분명한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에 나아갔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항소심 선고 이후 "나이 32살에 20년 징역은 무기징역과 다름없다"며 "2심 재판부가 언론·여론 등을 의식해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지 못해 제대로 된 재판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상고를 기각했다.

6월12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을 마치고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 연합뉴스
6월12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을 마치고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 이아무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 연합뉴스

사건 공론화 한 피해자 "지속 문제 제기할 것"

대법원 선고가 나온 후 피해자는 참담함을 드러냈다. 

A씨는 이날 "범죄 가해자는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살아야지 생각하겠지만, 범죄 피해자는 20년 뒤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평생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며 "굉장히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원심이 그대로 확정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도 "초기 수사 부실대응이나 피해자들의 정보 열람 제한 등에 대해 지속해 문제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행 신상공개 제도 한계점에 대한 개선책을 도출하고, 피해자 상고권 등 구조적 문제를 고쳐나가는 데도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 가해자 이씨는 항소심의 징역 20년이 부당하다며 상고했지만, 검찰은 상고하지 못했다. 형사소송법 제383조에 따르면, 양형부당 사유에 따른 상고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이 선고된 때만 가능한데 이는 '피고인'에게만 적용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피고인 이익을 위해서만 상고할 수 있고 항소심 형량이 가볍다는 등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양형부당 상고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 법률 대리인인 남언호 변호사는 "피고인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중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50세의 나이로 출소하게 되면 재범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신림동 강간 살인 사건 같은 모방 사건도 낳았는데, 이는 살인이 또 다른 살인을 낳는 잔혹한 현실"이라며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반성문 제출, 우발적 범행으로 인한 감형 요소가 아닌 가중 요소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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