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윤미향 재판, 의도적으로 지연된 정의? [쓴소리곧은소리]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 승인 2023.09.23 16: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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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 의원, 4년 임기 중 3년4개월 채운 후 의원직 상실형 최종 판결 나와
윤 의원은 ‘2심 유죄’까지 만 3년…조국 전 장관, 1심 판결 3년2개월 걸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에 있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헌법 제27조 제3항 제1문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공정한 재판에 더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진정으로 공정한 재판이 되기 위해서는 때를 놓치지 않는 신속한 재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어지는 재판으로 인해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사람도 있고, 재판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정당한 배상·보상을 받지 못해 집안이 망하고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늦더라도 재판 결과가 공정하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것일까?

최강욱 전 의원에 대한 재판을 두고 ‘지연된 정의’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재판 과정에 3년8개월이 걸렸고, 결국 국회의원의 4년 임기 중에서 3년4개월을 채운 상태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그래도 “지연된 정의가 정의 구현의 불발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 정의의 확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사법적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사법 절차에서 지연된 정의를 긍정할 때는 지연된 정의가 양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확인 경력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상고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김명수의 사법부’에서 심각해진 지체 현상

이와 유사한 예로 불법수집증거 문제를 생각해 보자. 같은 논리라면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라 하더라도 진실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증거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널리 인정되는 것은 자칫 증거의 불법수집을 조장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이론에 따라 증거의 불법수집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지연된 정의도 마찬가지다. 이를 긍정할 경우에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절실함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판사들도 인간이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판사들에게 재판의 지연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핑계는 무수히 많다. 안 그래도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인데, 지연된 정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예 멍석을 깔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 절차에서 지연된 정의를 막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사법부의 독립 및 그 내용으로 인정되는 법관의 독립 때문에 재판을 독촉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기껏 압력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 법관 근무평정인데, 김명수 사법부에서 이러한 근무평정을 크게 완화함으로써 최근 재판 지연이 더욱 심해졌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법관 수를 대폭 늘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조일원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10년 이상 변호사 경력이 있는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10년 이상 경력의 유능한 변호사 중에서 판사 지원자가 많지 않고, 거꾸로 지원자 중에는 법원에서 찾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유능한 변호사들을 유인하기에는 판사의 대우가 충분치 않고, 업무량은 과중하다는 점도 이야기되지만, 10년 동안의 변호사 경력은 수많은 인맥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이 판사가 되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재판의 지연을, 지연된 정의를 방치한다는 것은 사법의 존재 의미를 반감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한 재판은 국민이 필요로 할 때 재판 결과가 나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연된 정의는 때로는 반쪽짜리 정의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정말로 정의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재판 지연을 막겠다는 판사들의 사명감이 중요

과연 어떻게 재판의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정의가 지연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강조되어야 할 점은 역시 판사들의 사명감이다. 마치 의사들이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내듯이, 재판의 지연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사건들에 대해서만큼은 최선의 노력으로 제때 재판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중장기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당연히 법원에 지원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어떻게 유능한 법조인들을 법원으로 끌어들일 것인지, 그리고 법원 내에서 어떻게 이들을 더욱 유능한 판사로 키워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사법 시스템의 전문성 및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민사, 형사, 행정, 특허, 조세 등 모든 법 분야를 두루 판결하는 만능판사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시대에 맞춰 각 분야의 전문법원을 두고, 판사들도 여러 분야의 재판 업무를 교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문법원에서 평생 일하는 전문법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와 관련해 국민이 가장 많이 분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재판 지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지연된 재판이다. 특히 최강욱 재판의 경우 꼭 3년8개월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1심과 2심 법원에서 일관되게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법리 적용에 대한 복잡하고 치열한 논의 때문에 1년4개월을 끌어야 할 사안이었는지에 대해 다수의 법조인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사건의 경우에는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2개월이 걸렸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3년8개월이 지났어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1심 판결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그사이에 재판의 한복판에 있던 송철호 울산시장은 임기 4년을 꽉 채우고 물러났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령, 김복동 할머니 장례금 유용 등에서 2심 유죄 판결을 받은 윤미향 의원은 3년 전인 2020년 9월에 기소됐다. 윤 의원 역시 국회의원 임기 4년을 다 채운 후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의도적인 재판 연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사건들이 모두 판사들의 과중한 업무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재판의 지연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부득이하게 정의가 지연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지연된 정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국민이 묻는다. 최강욱 재판, 조국 재판 등에서 의도적으로 지연된 정의, 그것이야말로 사법농단이 아니냐고. 과연 법원이 이에 대해 어떤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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