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美브로드컴, 삼성에 갑질했다”…과징금 191억 부과
  • 이주희 디지털팀 기자 (hee_423@naver.com)
  • 승인 2023.09.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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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공급 중단’ 등 내세워 삼성에 불리한 장기계약 강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등 4개 사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등 4개 사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불공정한 수단으로 삼성전자를 압박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장기 계약(LTA)을 강요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행위(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제재 대상은 △브로드컴 인코포레이티드(미국 본사) △브로드컴 코퍼레이션(미국) △아바고 테크놀로지스 인터내셔널 세일즈 프라이빗 리미티드(싱가포르) △아바고테크놀로지스코리아 주식회사(한국지사) 등이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의 LTA 강요로 3억2630만 달러(약 4375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2021년 8월까지 삼성전자가 LTA 이행을 위해 구매한 부품 금액 8억 달러 전액을 관련 매출액으로 보고 부과율 상한인 2%를 적용해 과징금을 산정했다. 다만 브로드컴과 삼성전자 간 LTA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이후인 2021년 8월 조기에 종료되면서 과징금 규모는 200억원에 못 미쳤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0년 3월 브로드컴의 RFFE(통신 주파수 품질을 향상하는 부품)와 와이파이·블루투스 관련 부품을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7억6000만 달러 이상 구매하고, 구매 금액이 그에 못 미치면 브로드컴에 차액을 배상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계약을 맺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브로드컴이 구매 주문 승인 중단, 제품 선적 및 생산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삼성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봤다. 당시 브로드컴은 RFFE 등의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세계 1위 사업자였고 삼성전자는 막 출시한 갤럭시 S20 등의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브로드컴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계약에 따라 삼성전자는 부품 선택권이 제한되고 필요 이상의 부품을 구매해야 했다. 아울러 코보 등 더 저렴한 경쟁사 부품을 사용하지 못해 최소 1억6000만 달러(약 2137억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심의 과정에서 해당 계약이 자발적으로 체결된 상호 호혜적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부품 공급사로서 삼성전자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삼성전자가 부품 구매에 관한 구두 약속을 여러 차례 파기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면 LTA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경쟁사를 배제할 목적으로 삼성전자에 LTA 체결을 강제했다고 봤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구매 주문 승인 중단 등 자사 결정을 '폭탄 투하', '핵폭탄', '기업 윤리에 반하는', '협박'이라고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는 기술 혁신의 핵심 기반 산업이자 연관 시장 파급효과가 큰 반도체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경쟁 여건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브로드컴은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의결은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필요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을 거쳐 확정된다. 삼성전자 역시 브로드컴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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