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할 수 있어 더 잘 해야죠” 항저우 APG 준비하는 장애인 국가대표
  • 정윤성 인턴기자 (jys7015@naver.com)
  • 승인 2023.09.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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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독자 종목 보치아·골볼 선수들, 막바지 구슬땀
金 노리는 효자종목 ‘보치아’…“체급별 랭킹 1위 보유”
실업팀 생기고 실력 급상승한 ‘골볼’…“우승하고 돌아오겠다”
이종현= 20일 오전 이천장애인선수촌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의 체력단련실 ⓒ시사저널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의 체력단련실 ⓒ시사저널 이종현

“모든 걸 쏟을 준비를 마쳤어요.”

지난 23일 ‘아시아인의 축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또 다른 국가대표 348명이 있다.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항저우APG)에 출전하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시 이천선수촌 종합훈련동엔 아침부터 휠체어를 탄 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가을비가 쏟아져 인적 없는 야외 훈련장과 달리 선수촌 내 훈련장에는 이미 선수들은 땀에 젖어있었다. 이날에만 173명의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오는 10월 22일 열리는 항저우APG를 위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선 45개국 3800여명의 아시아 장애인선수들이 한곳에 모이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348명의 국가대표 선수단이 21개 종목에 참가한다.

 

효자종목 ‘보치아’…다시 한 번 메달 사냥 나선다

장애인 스포츠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유래하지 않은 독자적인 두 종목이 있다. 그중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이름마저 생소한 보치아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명실상부 효자 종목이다. 1988 서울 패럴림픽에서 금메달1개와 은메달 2개를 시작으로 2020 도쿄 패럴림픽까지 9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한 개 이상 안겨줬다. 김승겸(37, 강원도 보치아 실업팀) 대표팀 코치는 “각 체급에 세계랭킹 1위 선수들이 있는 만큼 우리 대표팀이 최강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보치아는 흰색 표적구 ‘잭’에 자신의 공(빨간 공이나 파란 공6개)를 보내 상대 공보다 표적구에 가깝게 붙이면 득점한다. 뇌성마비 장애나 사지마비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맞붙는 혼성 경기다. 장애 중증도에 따라 BC1~BC3까지 체급이 나뉘는데, 신체의 움직임이 가장 제한적인 BC3 선수들은 입에 무는 스틱 등 보조장치를 사용해 공을 투척한다. 김 코치는 “컬링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이종현= 20일 오전 이천장애인선수촌에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보치아(장애인종목) 김연하 선수가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br>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보치아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오랫동안 명성을 떨친 만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도 많다.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이어온 정호원(37, 강원도 보치아 실업팀)은 대표팀의 간판 스타다. 생후 100일 무렵 불의의 사고로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얻은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보치아를 시작하고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보치아는 내게 여자친구 같다. 정말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며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재미와 행복을 느끼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전했다.

국가대표로 데뷔하는 선수도 있다. 보치아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국내 BC1 체급 랭킹 1위에 오르며 국가대표로 뽑힌 김연하(43, 전라북도 보치아연맹)다. 그는 “원래 성격이 긍정적이라 부담감이 없는 편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멘탈을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연하 선수는 몸이 불편한 남편과 두 아이를 가정에 두고 합숙 훈련을 하고 있다. 활동지원사가 가정을 돌봐주고 있지만, 가족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은 9살짜리 딸을 떼어 놓고 선수촌에 들어왔다”며 “아이들 가슴에 꼭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선수들을 보조하는 경기파트너는 보치아의 숨은 공신이다. 신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선수들을 위해 경기파트너들은 선수들의 손과 발이 된다. 김승겸 코치는 경기파트너를 ‘부적’이라 표현했다. 그는 “경기파트너는 경기 도중엔 선수와 대화할 수도 없고 경기에 개입할 수도 없지만, 선수들과 24시간 먹고 자고 훈련하는 존재”라며 “마음이 맞는 파트너가 경기 중에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보치아 종목에 출전하는 정호원 선수가 김승겸 코치와 함께 훈련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보치아 종목에 출전하는 정호원 선수가 김승겸 코치와 함께 훈련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정정당당한 스포츠죠”

장애인 스포츠에만 존재하는 또 다른 종목은 골볼이다. 골볼은 시각장애인들이 펼치는 구기 종목으로 방울이 들어있는 공을 상대 골대로 던져 득점하는 경기다. 선수들은 오직 방울 소리만 듣고 공을 막아내기 위해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1.25㎏의 방울이 든 고무공을 온몸으로 튕겨내고, 맨바닥에 몸을 던지느라 쓸리고 멍들기 십상이다.

잔부상을 달고 사는 격렬한 종목이지만 선수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자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김희진(28, 서울시청 골볼 실업팀)은 “눈을 가리고, 모두가 공평한 상황에서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선수가 됐다”며 골볼을 가장 정정당당한 스포츠라고 표현했다.

그간 우리 골볼 대표팀은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았다. 변변한 실업팀이 없어 리그가 구축돼 있는 다른 국가와 경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본업을 이어나가다 대표팀에 차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김희진 선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본업을 다 포기하고 합숙 훈련을 와서 생계 유지가 어려운 선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골볼 남자 대표팀 손원진 선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골볼 남자 대표팀 손원진 선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나 2018년 실업팀이 생긴 뒤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성적도 뒤따라왔다. 여자 대표팀은 다음 패럴림픽 출전 티켓까지 일찌감치 따내며 금빛 도약을 기다리고 있다. 김진 코치는 “실업팀이 생기고부터 선수들 실력이 월등히 성장했다”며 “이번 대회는 그것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업팀과 대표팀에서 붙어 있다 보니 선수들의 끈끈함이 둘째가라면 서럽다. 손원진(29, 전라남도 골볼 실업팀)은 “선수촌 내에서 골볼 팀 분위기가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고 자신했다. 김 코치도 “우린 언젠가 사고친다는 생각으로 달려오다 보니 더 똘똘 뭉치게 됐다”며 “이대로 팀워크를 유지해서 우승하고 돌아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선수촌 없이 훈련하던 때완 여건 좋아져…사람들 관심도 늘어났으면”

이날 만난 선수들은 장애인 스포츠 환경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고 전했다. 14년 간 코치 생활을 한 김승겸 코치는 “당시엔 선수촌도 없이 훈련장을 빌려서 촌외 훈련을 했었다. 이런 날이 올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건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진 코치도 “대내외적으로 지원이 늘어나니 더 책임감 있게 훈련하면서 실력이 급상승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선수들은 지원만큼이나 관심도 늘어나면 더 큰 힘이 될 거라 입을 모았다. 김희진 선수는 “비장애인 학교에 골볼을 알려주는 장애인식개선 재능기부도 하며 골볼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접하다 보면 장애인 스포츠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승겸 코치도 “관심을 가질 기회조차 없는 건 아쉬운 일”이라며 “노출이 많이 돼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기회가 마련되면 선수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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