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한국 내부에서 펼쳐지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2 09:05
  • 호수 17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가 신냉전을 거쳐 ‘열전(熱戰)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21세기 신냉전의 원년은 2012년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푸틴(3월), 북한에서 김정은(4월), 중국에서 시진핑(11월) 등 권위주의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권력자들이 차례로 정치 무대에 등장한 해다. 열전의 문턱이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전(2월)을 감행한 때를 말한다.

정확한 시대 인식에 실패한 정치 세력은 나라를 말아먹기 십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연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국제 질서의 변화에 대처한 건 적절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20세기 후반에 벌어졌던 냉전시대의 철 지난 반공이념과 친미·친일로 치부한다면 시대 흐름을 온전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한·미·일 가치연대는 신냉전 시대 불가피한 정책

9월10일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중국 총리에게 중국의 세계적인 지배력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했다. 그녀의 중국과 ‘헤어질 결심’엔 4년 전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 합류할 때와 크게 달라진 세계 정세가 반영됐다. 철 지난 이념이나 친미 때문이 아니었다. 당면하고 현실적인 중국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시진핑은 4년 전보다 더 왕성하게 글로벌 지배욕을 드러내 7월1일 발효시킨 대외관계법은 “중국의 이익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주체는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탈리아는 중국에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다 미국 중심 서방 블록의 압박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대일로와 이별했다.

신냉전에서 열전의 문턱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중국과 가장 근접해 있는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가장 큰 특징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들을 동원해 한국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 국적자는 92만 명, 중국인 출신 귀화자는 18만 명(법무부 통계월보 7월 기준). 이 규모의 중국인 혹은 중국계가 본국의 지침에 따라 조직적으로 집단행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 파괴력의 수준은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2년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던스’가 중국 공산당이 세계 각국에 비밀경찰서를 세웠으며 한국에도 해당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는 주장을 해 파문이 일었다. 그 후 서울 강남구의 중식당 ‘동방명주’가 논란이 됐다.

 

형법 98조 간첩죄, 중국·러시아 등에 적용 못 해

정부 관계자는 내년 총선 때 일부 중국인에 의해 벌어질 수 있는 정치 개입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통상 중국 공산당 정부가 주요 상대국 내부에 자기 편 세력을 심고 확대하는 사업을 통일전선전략(통전)이라고 한다. 통전은 마오쩌둥이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1949년 공산당 정권을 세울 때 진가를 발휘했다. ‘적중에 적을 만든다’는 게 행동강령이다. 결국 간첩을 심는 것이다. 1992년 우호적인 분위기가 충만했던 한중 수교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현실이 시진핑의 중국 집권 이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중국 공산당 정부의 통전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필요한 건 입법 체제의 정비다. 문제는 형법 98조의 간첩죄 조항.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적국’은 오직 ‘북한’만을 의율한다. 즉,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일본 등에서 작동하는 한국을 상대로 한 간첩 활동을 규율할 법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뿐 아니라 ‘외국’ 혹은 ‘외국인 단체’로 넓히는 형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