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2024년 파리올림픽도 어렵다”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7 10: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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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스포츠 사업 철수 ‘후폭풍’
체육계 “대기업 스포츠 지원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현황(재계 순위)에서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경기도 용인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발표하자, 삼성은 3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를 역시 향후 10년간 충청·영남·호남 등에 위치한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제조업 핵심 분야에 60조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서울 잠실 야구경기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삼성 대 LG의 경기. 야구장을 찾은 삼성 이재용 사장(현 회장)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잠실 야구경기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삼성 대 LG의 경기. 야구장을 찾은 삼성 이재용 사장(현 회장)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년째 4대 프로스포츠 최하위 기록

재계 서열 부동의 1위지만, 정작 스포츠 부문에선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 스포츠단은 현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4대 프로스포츠(축구·야구·농구·배구)의 삼성 구단은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엘리트 체육도 상황은 비슷하다. 10월8일 폐막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레슬링은 13년 만에 ‘노골드’ 수모를 당했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이끌며 효자 종목 역할을 하던 과거와 대비되고 있다. 실제로 이 선대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남달랐다. 특히 학창 시절에 레슬링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낸 이 선대회장은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선대회장은 탁구·배드민턴·육상·태권도 등 비인기 종목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매우 컸다. 1978년 삼성 농구단을 시작으로, 야구단(1982년)과 배구·축구단(이상 1995년) 등을 창단해 한국시리즈 우승, 리그컵 및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실업배구 77연승 등 대한민국 4대 스포츠에서 모두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이 영광은 모두 과거형이 됐다. 2014년부터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스포츠단이 옮겨가자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이미 종료된 2022~23시즌 농구와 배구, 올 시즌에는 야구·축구 모두 최하위를 기록하는 오명을 안았다. 특히 축구는 K리그1 꼴찌를 기록하면서 규정에 따라 K리그2 강등권 싸움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엘리트 체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은 모두 발을 뺐다. 현대차(양궁), SK(펜싱·핸드볼) 등과 달리 삼성은 회장사를 맡은 종목이 없다. 이 선대회장 시절에 맡았던 레슬링협회 후원도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삼성이 발을 빼자 금메달 효자 종목인 레슬링의 위상이 사라졌다. 레슬링은 10월8일 폐막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년 만에 ‘노골드’ 수모를 당했다. 더구나 은메달도 못 딴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다.

무엇보다 삼성의 행보는 다른 대기업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다. 39년째 묵묵히 양궁협회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재계 2위 현대차, 20년째 펜싱과 핸드볼 등 비인기 종목을 지원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 재계 3위 SK, 2015년부터 스켈레톤 국가대표팀과 대한럭비협회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는 재계 4위 LG와는 상당히 다른 행보다.

삼성이 스포츠에서 손을 떼자 ‘스포츠가 퇴보했다’는 평가가 체육계 안팎에서 들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삼성이 승마협회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오너가 ‘옥살이’를 한 것이 결정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이 최서원(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씨에게 뇌물로 말을 제공했던 게 사건의 발단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측이 정씨에게 구입해준 말은 총 3마리로 모두 합쳐 34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후 1년7개월을 복역했다.

재계 “스포츠도 ESG 경영에 포함”

삼성은 1986년 승마단 창단 후 2010년 해체 전까지 한국 승마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 회장이 직접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정도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이 결국 트라우마가 되면서 사실상 삼성은 모든 국내 스포츠에서 발을 뺐다는 게 다수 체육계 인사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내년에 파리올림픽이 개최되는 만큼 삼성이 다시 스포츠 명가로 나서 무너진 체육계를 재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한경 한국체육학회 회장(용인대 체육학과 교수)은 “스포츠는 국위선양이며, 국민에게 국가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매개체다. 또 스포츠를  통해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홍보 효과도 있다”며 “ESG 경영에 스포츠가 포함되는 만큼 ‘재계 1위’ 삼성이 스포츠 분야에서 다시 1등 이미지를 지켜 침체된 체육계가 다시 부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4대 프로스포츠(축구·야구·농구·배구)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삼성 스포츠단 ⓒ연맹 홈페이지 캡처

1985년 대한양궁협회 회장사가 돼 39년째 묵묵히 대한민국 양궁의 저변 확대와 성장을 뒷바라지하는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은 최근 막을 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 등 총 11개의 메달을 쓸어담았다. 회장사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체육계의 바람과 달리 삼성은 여전히 스포츠에 대한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반도체 등 회사 최대 주력 사업 부진 또한 한몫하고 있어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일각에선 삼성이 과거와 달리 스포츠에서 투자를 소극적으로 하는 이유에 대해 이재용 회장이 가진 스포츠와 기업에 대한 실용주의 경영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삼성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이 회장에게 스포츠 후원 관련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면서 “스포츠와 관련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삼성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이 정상화되고, 훈풍이 불어 여유를 되찾으면 다시 스포츠단을 직접 맡아 국내 체육 발전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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