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정신병·마약중독·성도착증 치료할 ‘의료 사동’ 만들어야
  • 박재상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 (drpark1017@naver.com)
  • 승인 2023.11.03 12: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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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칼부림’ 등 이상 동기 범죄자들의 재범률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어
공주의 국립법무병원만으로 전국 55개 교도소의 해당 환자들 감당 못 해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공주시 소재 국립법무병원은 법무부 소속의 유일한 정신병원으로 범죄를 일으킨 정신병자, 마약중독자와 정신성적 장애자(성도착증)를 전문적으로 치료해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 적응 훈련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건전한 시민으로 복귀시키는 특수한 정신병원이다. 다행인 것은 범법을 저지른 정신병 환자가 국립법무병원에 입원·치료 후 퇴원하면 재범률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2011년과 2018년에 퇴원한 정신병 환자의 3년 내 재입원은 각각 5.5%, 1.5%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2022년 범죄예방정책 통계분석〉. 정신병 환자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면 범죄를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

몇 년 전, ‘진주 방화 사건’의 당사자인 안인득도 이 사건 전에 그가 행한 범죄로 인해 과거 정신감정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았고 법원에서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고 3년의 보호관찰 처분만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수십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방화 사건을 저질렀다. 그가 국립법무병원에 입원했더라면 이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며 수십 명의 피해자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체조 등을 통해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체조 등을 통해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연합뉴스

의료 사각지대 놓인 교도소의 정신병·마약중독·성도착 환자들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사건 수가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2009년에 치료감호 청구가 350건이었던 반면, 2021년에는 78건으로 확연하게 감소했다〈검찰연감 2021, 대검찰청 자료〉. 국립법무병원에 입원한 2017년의 새로운 피치료감호자는 241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135명으로 반 가까이 떨어졌다〈국립법무병원 통계〉. 과거에 비해 판사가 치료감호 처분을 덜 내리고 있다는 의미다. 검사와 판사조차 치료감호 효과를 잘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결국, 국립법무병원에 와야 할 환자들이 교도소로 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2012년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는 2177명(전체 환자의 12.5%)이었는데, 2021년 4869명(전체 환자의 22%)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2022 교정통계연보〉. 교도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교도소 내에 정신병 환자의 비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무척이나 힘들어졌다고 한다. 정신과 폐쇄병동에 있어야 할 정신병 환자가 교도소에 와 있어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며(일반 교도소 수용자와 동일하게 범법 정신질환자를 다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임) 속수무책이라고 푸념했다.

현재, 국립법무병원에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져서 입원해 있는 전체 환자 수는 800명 정도로 이들 중 740명 정도가 정신병 환자(1호 환자)이며, 25명 정도가 마약중독자(2호 환자)이고, 35명 정도가 성도착증 환자(3호 환자)다. 이들 800명을 제외한 나머지 범법 정신질환자는 전부 교도소로 갈 수밖에 없다. 전국에 있는 55개 교도소가 소속된 교정본부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겨우 1~2명 정도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도소 내 정신질환자 상당수가 화상 진료를 받고 외부 병원으로 진료를 나가거나 대리처방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경우, 정신과 진료의 특성상 대면 진료가 필요하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도소에서는 자체적으로 많은 간호사와 임상심리사 등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급성기 중증 정신병 환자를 간호사나 임상심리사만으로 대처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국립법무병원에 수용되지 못한 정신병 환자나 마약중독자, 성도착증 환자 대다수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7년에 개원한 국립법무병원은 36년간의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500여 명의 직원 중 거의 400명 가까운 직원이 의료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립법무병원이야말로 법무부 산하 교도소, 소년원까지 포함하는 전국 수용기관과 보호관찰소의 정신질환자를 담당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장·단기적 해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국회, 초당적으로 치료감호법 등 개정해주길

‘단기적 해법’은 다음과 같다. 교도소는 이미 전국에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으니 이를 잘 활용만 한다면 상당 규모의 예산도 줄일 수 있다. 국립법무병원에도 정신과 의사가 부족한 형편이지만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경제적일 것이냐를 잘 판단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공주에 있는 국립법무병원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전과 충남·북의 교도소와 연계를 맺고, 그곳에 ‘의료 사동’을 설치해 국립법무병원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방문 진료를 나가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도소 의료 사동에서 정신질환 수용자의 강제 치료가 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국립법무병원이 ‘교도소로 찾아가는 정신병, 마약중독과 성도착증 치료 병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장기적 해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립법무병원과 교도소 사이의 장벽이 낮아져야 한다. 징역형을 받은 교도소 수용자와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피치료감호자가 원활하게 교도소와 국립법무병원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교도소 의료 사동과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질환 수용자의 강제 치료가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치료감호법을 포함한 법률의 개정 및 정비가 시급하다. 치료감호 처분을 받지 않은 교도소 수용자가 급성기 중증 정신병 상태에 있다면, 국립법무병원으로 전원시켜 치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인력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립법무병원의 재원 기간을 줄이고 급성기 중증에서 벗어난 환자는 교도소로 보내 나머지 징역형을 교도소 의료 사동에서 보내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의료체계가 개선되면 법무부 산하 전국 수용기관의 정신질환자 의료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고, 교도소를 안정화할 수 있다. 따라서, 전일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립법무병원에서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이를 확산시킨다면 정신병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이상 동기 범죄의 재범률 또한 10년 내 10% 이하로 확연히 낮출 수 있다.

장·단기적 해법과 더불어, ‘사법입원제’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공공의료의 제대로 된 역할’과 ‘지방자치단체, 경찰과 법무부의 지속적인 연계’ 등 체제의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상 동기 범죄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정책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며 염원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민생 치안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당파를 떠나 여야 모두가 같은 마음일 테니, 이번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법사위원회,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가 협력해 초당적으로 진행해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박재상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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