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 집행을 대체할 수 있다? [쓴소리 곧은 소리]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5 16: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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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무기징역 살다 가석방되자 또 살인 저지른 자에게 사형 선고
처음부터 ‘가석방 없는 종신형’ 판결했으면 2차 희생자 막을 수 있었다

법무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이 더 험난할 수도 있지만, 정부 내에서는 이에 대한 합의가 형성된 셈이다.

그동안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해서는 찬반이 날카로웠다. 한편에서는 사형 집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영원히 교도소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형에 못지않은 잔인한 형벌이며,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법무부가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애초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사형의 폐지를 전제로서 이에 대한 대체 형벌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1999년 유재건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형폐지특별법안’에서는 무기징역으로의 대체를 제안했으나 2001년 정대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이후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또는 절대적 종신형)이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에서는 사형을 폐지하지 않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즉, 형벌의 종류로서 사형과 무기징역의 중간 단계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하나 더 두겠다는 것이다. 비록 대다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보편적인 형벌 체계는 아니지만,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에 관한 논란이 날카로운 것은 법률상 사형은 존치되어 있지만, 20년 이상 사형 집행이 되지 않고 있어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최근 국민 여론은 묻지마 범죄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사형 폐지는커녕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형을 폐지할 경우 국민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형을 집행할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이 크게 퇴보했다는 국내외의 비판이 매우 격렬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사형 폐지도, 사형 집행도 곤란한 상황인 셈이다.

이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최대한 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사형 판결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몇몇 사건에서는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동료 죄수 살해한 무기수에게 또 무기징역 선고

예컨대 무기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료 죄수를 살해한 사람에게 대법원이 다시금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것에 대해 국민은 사실상 추가적인 형벌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그것이 정당한 형벌인지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살인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60대 전과자가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살인을 해서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만일 법원에서 최초의 형벌을 무기징역형이 아니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판결했다면 그 범죄자는 출소할 수 없었을 것이며, 선량한 시민이 그의 살인에 의해 희생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범죄 예방 효과 및 교화 효과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형벌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형벌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선량한 시민의 보호에 있다. 교화되지 않은 범죄자를 가석방으로 사회에 돌려보내고, 그의 범죄로 인해 선량한 시민이 희생당하게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욱이 사이코패스 등 특수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교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형이 존치되고 있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무기징역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량한 시민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범죄자의 인권, 범죄자의 교화보다는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이를 도입하는 것이 국가의 우선적 과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면서 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했지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78년 이를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형벌로서 위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도 이러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논란이 있다. 범죄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독일처럼 사형도 없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없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범죄자 인권보다 선량한 시민부터 보호해야

희대의 살인마라 하더라도 무기징역 이상이 불가능하고,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복역 이후에 가석방이 가능해진다. 20대 또는 30대의 범죄자가 40대 또는 50대에 출소해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범죄자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된 이후에 사형 폐지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대체 형벌이 이미 도입되었으니, 이제는 사형을 폐지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서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으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사형제도 폐지 입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도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서구의 선진국들도 사형을 폐지한 사례가 많다. 다만,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지하기는 어렵다.

만일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 없이 정부가 혹은 국회가, 일방적으로 사형을 폐지할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역풍이 불어올 수 있다. 사형 폐지 자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자칫 그 상황에서 묻지마 범죄 등의 발생이 증가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론까지도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매우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위한 치밀한 준비도 중요하다. 특히 어느 정도의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 판결이 필요하고, 또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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