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뒤집힌 ‘공매도’ 갈지자 행보…정책 일관성 어디로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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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B 무차입공매도 적발에 與 공개 압박에 금지 선회
‘불법 공매도’ 전력 시장조성자 거래 허용에 개미 한숨
‘글로벌 스탠더드’ ‘전면 재개’ 외치던 당국 정책 신뢰↓
코스피가 6일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가운데 이날 종가는 전장보다 134.03포인트(5.66%) 상승한 2,502.37로 집계됐다. 코스닥지수 역시 전장보다 57.40포인트(7.34%) 폭등한 839.45로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6일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가운데 이날 종가는 전장보다 134.03포인트(5.66%) 상승한 2502.37로 집계됐다. 코스닥지수 역시 전장보다 57.40포인트(7.34%) 폭등한 839.45로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한시적 금지에 나섰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됨에 따라 제도를 개선하기 앞서 선제적으로 마련된, 역사상 4번째 조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은 앞서 불법 공매도 의심 사례가 적발됐던 시장조성자 등의 차입공매도는 허용한다는 점에서 불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공매도 전면 재개’ 시동을 걸어왔던 당국의 스탠스를 완전히 뒤집는 결정이라 갈수록 정책 일관성에 신뢰를 잃어간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성자’ 거래 허용에 불신 여전한 개미들

지난 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브리핑을 열고 공매도 전면 금지안을 발표했다.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기존에 공매도 거래가 가능했던 코스피200, 코스닥150지수 350개 구성 종목을 포함해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시장 전 종목에 대한 신규 공매도 진입이 막힌다. 단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 등의 차입공매도를 제외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지난달 금감원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HSBC의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촉매제가 됐다. 금감원은 이들 IB가 수개월 동안 국내 주식 110개 종목에 총 56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의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제도가 외국인과 기관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성토 수위를 높여왔다. 결국 당국이 이에 호응한 셈이다.

일단 개미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전의 공매도 전면 금지 때와 마찬가지로 유동성공급자 등의 차입공매도는 허용한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특히 시장조성자가 공매도 금지 예외에 포함돼 있는 것에 일부 투자자들은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불법 공매도 전력 때문이다.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가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가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조성자는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거래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통상 증권사가 이런 역할을 한다. 주식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팔 물건을, 팔려는 사람에게는 살 물건을 내놓는 역할이다. 거래가 이뤄지기 어려운 쪽으로 주문이 몰려 있으면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 시장 조성자들이 개입해 주문을 내도록 하는 것이 시장조성자 제도 도입 취지다. 이런 이유로 당국은 공매도 금지 기간에도 시장조성자에게 거래를 허용해 주는 등 규제 특혜를 주고 있다.

시장조성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게 공매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은 시장조성자가 이를 악용해 불법 공매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한국거래소가 22개 전체 시장조성자의 3년6개월간 거래내역(2017 1월~2020 6월)을 점검한 결과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공매도 의심 사례가 적발됐다. 당시 금융위나 거래소 쪽은 단순 실수나 오류라는 식으로 설명할 뿐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의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공매도 전면 금지 대상에 시장조성자를 포함하라고 하는 이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치고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치고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 다음 공매도로 집중 메시지결국 정치권 입김?

아울러 이번 결정이 급작스럽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불과 한 달 전만하더라도 당국은 공매도 제도 손질에 미온적인 모습이었다. 지난달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온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개인과 기관, 외국인의 담보비율을 일원화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매도 전산화에 대해) 거래를 복잡하게 하는 게 개인투자자 보호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사이 글로벌 IB의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지난 27일 정무위 종합감사에서는 “원점에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모든 제도 개선을 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후 여당 의원들의 개선 촉구가 이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도대체 금융당국은 대통령 취임 1년6개월 동안 공매도 관련 공약 이행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이제 와서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늦장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금감원은 공매도에 관한 제도적 개선과 한시적 금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와 정부 관료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금융위를 공개 압박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엔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같은 당 장동혁 의원에게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집중)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공매도 금지가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 완화 노리던 당국…이제서 “신뢰 얻어야 할 대상, 개인투자자”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정책 행보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당국은 올 초부터 꾸준히 공매도 전면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 나선 이복현 금감원장은 “공매도 규제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며 “금융 시장 불안이 몇 달 내 해소된다면 되도록 연내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같은 달 “금융당국도 공매도를 정상화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며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의 보호 육성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다만 시기와 방법은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있으니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역시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정확한 시점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공매도 전면 재개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공매도 전면 재개’를 외치던 정부가 방향을 180도 틀었다는 점에서 정책 일관성이나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MSCI가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에선 한국 증시는 18개 항목 중 6개 항목에서 ‘개선 필요’ 평가를 받으며 선진 지수 편입이 최종 불발됐다.

공매도 금지에 대해 블룸버그는 스마트카르마 홀딩스의 분석가 브라이언 프레이타스의 말을 인용해 “공매도 금지는 한국이 신흥시장에서 선진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이 원장은 이날 “선진지수 편입 자체가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라며 “우리가 신뢰를 얻어야 할 대상은 외국인과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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