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도 겁난다” 일상 덮친 ‘빈대’ 포비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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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버스부터 택배까지…빈대 확산에 불안감 호소하는 시민들
11월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고시원 등 주거 위생 취약 시설 빈대 방제에 예산 5억원을 긴급 교부하고 빈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숙박시설, 목욕장, 찜질방 총 3175곳의 전수 점검을 시작했다. ⓒ 연합뉴스
11월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고시원 등 주거 위생 취약 시설 빈대 방제에 예산 5억원을 긴급 교부하고 빈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숙박시설, 목욕장, 찜질방 총 3175곳의 전수 점검을 시작했다. ⓒ 연합뉴스

"지하철이나 버스에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는다. 행여나 옷에 빈대가 딸려 올까 걱정된다."

"해외 직구는 당분간 안할 생각이다. 택배나 식품배송 박스를 문 밖에서 뜯어야하나 고민된다."

'빈대 포비아'가 일상을 덮쳤다. 전국 각지 다중이용 시설은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도 빈대 발견 사례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합동대책반을 꾸려 대응하고 있지만 확산 속도가 빠르고 추세 예측이 어려워 사안이 장기화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정부 합동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전국 17개 시·도 등에 접수된 빈대 의심신고 건수는 30여 건이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 방제를 실시한 곳도 있어 실제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약 10년간 질병관리청에 접수된 빈대 관련 신고가 9건인 점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가 긴급 대책본부를 꾸린 것도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와 주요 지자체는 빈대 확산을 막기 위해 합동점검반을 편성하고 상담창구를 개설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11월8일 광주 동구 광주교통공사 용산차량기지에서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빈대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특별 살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8일 광주 동구 광주교통공사 용산차량기지에서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빈대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특별 살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연합뉴스

지하철도, 버스도, 택배도 '불안'

시민들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숙사나 사우나, 고시원 등 다중시설을 중심으로 확인된 빈대가 일반 가정집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빈대 확인 사례가 여러 건 공유되면서 공포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 조아무개(32)씨는 "천으로 된 지하철 의자에는 앉지 않는다"며 "온라인 상에서 지하철 의자에 앉았다 빈대가 옷에 묻어온 것 같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불안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택배 이용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신선식품 배송 박스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글이 SNS를 통해 확산하는 등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40대 주부 채아무개씨는 "물건 구매나 장보기를 주로 온라인 쇼핑으로 하는데 택배 박스 안팎에 빈대가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박스를 만지는 것 조차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도 안전지대가 아니라 걱정이고 출퇴근하며 빈대가 어딘가 붙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유통업계나 물류 회사도 비상이 걸렸다. 다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이로 삼고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 빈대 특성상 택배 물류센터나 저온의 신선식품 배송 관련 시설에서 빈대가 서식하기 어렵고, 이를 매개로 가정으로 전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SNS에서 확인되지 않은 빈대 확인 게시물로 곤욕을 치른 업체 관계자는 "모든 물류 사업장이 전문업체의 정기 소독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관련 해충이 발견된 사례는 없다"며 "최초 유포자와 유언비어를 퍼 나른 이들 모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10월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같은달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 연합뉴스
10월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같은달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 연합뉴스

대중교통·숙박시설 집중 점검 및 방제

해외 여행을 다녀온 후 집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사례도 공유되고 있다. 이에 당국은 공항과 항만 방역을 한층 강화하고 빈대 유입 경로 등을 분석 중이다. 

동시에 정부는 빈대 국내 확산 방지를 위해 다음 주부터 4주간 대중교통과 숙박시설 등을 중심으로 빈대 집중 점검·방제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에 승인된 빈대 살충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향상된 기능의 살충제를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빈대는 감염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인체 흡혈로 가려움증이나 이차적 피부 감염증을 유발하는 해충이다.

정부의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에 따르면, 빈대를 발견하면 고열 스팀기와 살충제 등으로 물리·화학적 방제 조치를 해야 효과적이다. 빈대에게 물렸다면 우선 물과 비누로 씻고 증상에 따른 치료법과 의약품 처방을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 여행 중 빈대에 노출된 경험이 있으면 여행용품을 철저히 소독하고 용품을 밀봉 후 장시간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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