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이 생각나는 청년의 흥미로운 여정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2 11:05
  • 호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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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근접한 재미교포 작가 이창래의 《타국에서의 일 년》

《순교자》의 김은국 정도로 인지되던 한국 디아스포라 작가군들의 요즘 행보는 놀랍다. 《파친코》의 이민진, 《핵가족》의 한요셉,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의 프란시스 차 등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한국인(국적은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 작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창래 작가가 새 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My Year Abroad)》으로 고국 팬들을 찾아왔다. 이 소설의 두 가지 특이점은 청년의 관점에서 그려내는 섬세한 문장, 탁월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디아스포라들이 가진 특유의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타국에서의 일 년|이창래 지음|알에이치코리아 펴냄|700쪽|2만2000원
타국에서의 일 년|이창래 지음|알에이치코리아 펴냄|700쪽|2만2000원

주인공인 청년 틸러 바드먼은 어머니가 떠난 후 아버지 클라크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쓸쓸한 대학생이다. 이 청년의 시각에서 정처 없는 가족 구조나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운 위치,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8%의 DNA적 민족과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배경들이 깔려 있다. 해외연수를 앞둔 틸러는 골프장에서 포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자수성가한 중년의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이자 화학자인 퐁 로우와 만난다. 퐁 로우는 틸러의 남다른 미각을 인정하고, 새로운 음료인 ‘자무’ 사업을 위한 여정에 포함시킨다. 하와이, 선전, 마카오, 홍콩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틸러는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기 힘든 자기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인 홍콩공항에서 30대 여성 밸과 그녀의 아들인 빅터 주니어를 만난다. 밸은 남편이 불법적인 사업을 하는 것을 알고, 당국에 고발한 후 증인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 불안한 임시 동거는 끊임없이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는 이 불안한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치유해 가는 힘든 존재들의 분투를 느낄 수 있다.

틸러의 관계에는 다양한 디아스포라적 시각이 있다. 작가는 중간중간에 그들만이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통찰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틸러를 초대한 퐁은 자신의 조국인 중국에 대해 “거기가 깨끗해지는 날이면 중국이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되겠지”라고 말한다. 퐁의 아버지가 중국산 식재료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다. 이는 중국의 토지가 세계의 공장이 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오염된 것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베이징 중앙미술아카데미의 교수였던 부모가 문화대혁명을 거쳐 변모했던 가정은 여느 중국 작가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깊게 담고 있다.

틸러는 하와이, 선전, 마카오 등을 여행하며 다양한 민족을 현장에서 체험한다. 이 중에는 중국인은 물론이고 조선족, 필리핀인 등 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군상이 있다. 사실 거대한 저택을 꾸미며 살아가는 그들은 20대 청년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이들이지만 틸러는 특유의 감성과 미각이나 노래 등을 바탕으로 중간에서 존재하는 흥미로운 소년이다. 독자들은 혼돈스러운 틸러에게서 자신을 찾고, 사랑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는 이들은 익숙한 구도로 느낄 수 있다. 틸러의 여정이 마치 김만중의 ‘구운몽’이나 도가의 ‘한단지몽’ 같은 구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물 드럼과 그의 딸 콘스탄스를 만나는 여정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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