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남의 집 얘기, “200석” 들먹이는 민주당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0 16:05
  • 호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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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저 모양이니 가만히 있어도 이긴다는 오만에 갇혀
‘이재명 유일정당’으로 가는 광경 마음 놓고 펼쳐지기도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우리 당 최대 목표는 (국민의힘을) 100석 이하로 최대한 내리는 것이다.”(이탄희 민주당 의원)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몇몇 인사의 입에서 ‘총선 200석’ 얘기가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지난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범민주 진보 세력, 그리고 국민의힘 이탈 보수 세력까지 다 합해 200석이 되길 희망한다”는 얘기를 했다. 민주당 단독이냐, 다른 당과의 연합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경우든 200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범야권이 22대 국회에서 200석을 차지하게 되면, 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고, 개헌과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마음대로 의결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윤석열 정부는 형체만 남게 되고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바라는 적극적 야당 지지층에서야 반길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이 22대 국회의 공룡정당이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국민의힘 지지층만 그런 것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강경 일변도 입법 독주를 지켜보다가 등을 돌렸던 중도층 또한 그 트라우마가 여전히 살아있다. 민주당이 200석 넘게 차지해도 이제는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변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뉴시스
9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5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정식 사무총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총선기획단에 ‘가결파 징계’ 주장한 인사도

이 같은 200석 포부는 과거 이해찬 전 대표의 ‘민주당 20년 집권론’이나 ‘50년 집권론’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 초기 당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 “20년 집권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대표가 된 후에는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은 일이 있다. 그런 말들이 민주당의 오만으로 비춰지면서 민주당이 5년 만에 다시 정권을 빼앗기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일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 내부에서도 오만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진다. “총선 압승을 언급하는 태도가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매 맞을 소리다”(박용진 의원), “위기가 몰려오는데도 200석 압승론을 떠드는 정신 나간 인사들도 있다”(김두관 의원), “대세론·낙관론 운운하며 ‘총선 200석 확보로 윤석열 정권 무력화시키자’고 하면 국민이 떠난다”(박지원 전 국정원장). 급기야 이재명 대표가 직접 입단속에 나섰다. 이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200석 발언에 대한 언론보도를 거론하고는 “모든 선거를 앞두고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며 자제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까지 나서서 오만하게 들리는 발언에 대한 단속에 나섰지만, 그런 말을 삼간다고 민주당의 근본 문제가 덮이는 것은 아니다. 굳이 200석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오만해 보이는 광경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22대 총선기획단은 비명계로부터 ‘친명 기획단’이라는 반발을 샀다. 친명계의 핵심인 조정식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았고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친명계 인사들로 구성됐다. 특히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가결파 징계’를 주장한 원외 인사들이 포함되어 노골적인 ‘이재명 사당화’라는 반발을 낳고 있다.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총선기획단 인선을 보고도 통합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친명계 사당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항의했다. 4년 전 21대 총선기획단 당시에는 비주류였던 금태섭 전 의원이나 프로게이머 출신 황희두씨를 영입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기획단에서는 그런 고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자객공천’, 說이 아닌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

더 심각한 것은 민주당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자객공천설’이다. 자객공천이라는 말은 흔히 여야가 서로 상대 당의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전략적 공천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민주당 내부에서 비명계 후보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친명계의 자객공천설이 기정사실처럼 유포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만 들더라도 송갑석 의원 지역구(광주 서갑)에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위 사무총장, 윤영찬 의원 지역구(경기 성남중원)에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상민 의원 지역구(대전 유성을)에 이경 상근부대변인, 전해철 의원 지역구(안산 상록갑)에 양문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 김종민 의원 지역구(충남 논산·계룡·금산)에 황명선 전 논산시장, 박영순 의원 지역구(대전 대덕구)에 박정현 신임 최고위원 등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대단히 많다.

‘자객공천’ 대상으로 거명되는 비명계 의원 숫자는 무려 20~30명에 달한다. 자칫하면 민주당의 총선이 국민의힘과의 대결이 아니라 ‘친명 대 비명’ 구도로 전개될 상황이다. ‘개딸’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조응천 의원은 비명계의 현재 상황을 ‘도마 위 생선’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는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며 투명한 공천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4년 전 총선 당시 서울 강서갑 후보 경선에서 강성 지지 세력의 지원을 받은 강선우 의원이 금태섭 전 의원을 이긴 것처럼, 친명계 정치 신인들이 친명계의 결집력을 등에 업으면 비명계 현역 의원들을 꺾을 가능성은 대단히 커진다. 실제로 친명계는 당원들의 결집력뿐 아니라 ‘더민주전국혁신위’ 등 원외 친명 조직의 세력화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어 후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에서 비명계를 말살하는 ‘자객공천’은 설(說)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 이후 친명계가 장악한 민주당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에서 전해지는 것은 승리에 도취된 오만과 자만이다. 보궐선거에서 패한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를 만들어 연일 뉴스를 내놓고 있다. 그 성과가 실제로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혁신하겠다는 말은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을 뺏긴 이후로 한 번도 의미 있는 혁신을 한 적이 없다. 이 대표가 주도했던 ‘김은경 혁신위’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민주당은 그냥 지금 그대로 총선을 치를 태세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저 모양이니 가만히 있어도 이긴다는 오만에 갇힌 것이다. 그러니 ‘이재명 유일정당’으로 가는 광경이 마음놓고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둔 압승은 민심을 외면한 집권 세력의 자충수가 낳은 결과였지,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언론과 국민의 시선이 국민의힘으로 향해 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국민은 민주당을 향해 ‘당신들은 혁신에 손 놓은 것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피하고 총선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당의 오산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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