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어 ‘빈데믹’…‘빈대’ 불안감이 소비지도 바꿨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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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 청소기·빈대 퇴치제 판매, 전년比 각각 740%,  852% 급증
국내서 발견된 빈대, 해외 유입 개체…직구 상품서 발견 우려도
잇단 예약 취소 문의에 숙박‧여행 업계는 타격 전망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소비지도를 바꿨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용품 판매량이 급증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유통‧여행업계도 타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일명 ‘빈데믹(빈대 팬데믹)’이 소비 지도를 또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급작스럽게 출몰한 빈대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방제 관련 물품 판매가 크게 늘었고, 공용 좌석이나 숙박업소 침구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여행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11월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고시원 등 주거 위생 취약 시설 빈대 방제에 예산 5억원을 긴급 교부하고 빈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숙박시설, 목욕장, 찜질방 총 3175곳의 전수 점검을 시작했다. ⓒ 연합뉴스

‘고열 건조’ 등 방제 효과 있다기에…관련 상품 판매 급증

1970년 이후 자취를 감췄던 빈대가 2023년 한국에 나타났다. 정부가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위생 점검과 방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가시적인데다 직접적 피해를 유발하는 빈대에 대한 ‘포비아(공포증)’는 확산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은 빈대가 서식하는 가구나 벽 틈에 스팀 고열을 분사하거나, 청소기의 흡입력을 이용해 제거하는 방법, 건조기의 50~60℃ 이상의 온도에서 30분 이상 처리하는 방법 등을 물리적 방제 방식으로 제안하고 있다. 빈대를 없애기 위해 ‘셀프 방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는 관련 상품 판매량이 크게 변화했다.

전날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은 이달 1~7일 침구 청소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에 비해 740% 늘었고, 빈대 차단용 침대 커버 판매량이 110% 늘었다고 밝혔다. 고열 스팀기 구매는 같은 기간과 비교해 65% 늘어났고, 빈대 퇴치제의 판매량도 852% 급증했다.

제약사도 빈대 특수를 맞았다. 빈대 퇴치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동성제약의 살충제 제품인 비오킬은 지난달에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4만 여개가 팔렸다. 경남제약의 모스펜스의 10월 판매량은 작년 대비 3배 증가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비오킬 가격이 올랐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가격이 올랐던 게 생각난다”는 토로가 나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자동 분무기, 방충망 매출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규조토 분말을 살포할 경우 빈대 퇴치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 커뮤니티에서 확산되면서 규조토 판매량이 평소의 5배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분말 상태의 규조토는 규폐증(규사 등 먼지가 폐에 흉터를 남기는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유럽에서 빈대가 발견된 매트리스나 소파를 버리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빈대 확산이 심화할 경우 매트리스 관련 매출이 변동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 구로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현장 위생 점검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구로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현장 위생 점검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빈대 포비아’로 여행 취소…“공용 좌석‧침대 불안”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빈대가 해외에서 유입된 개체로 알려지면서, 해외 여행객이나 해외에서 들여온 물품들을 통해 확산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해외 직구와 관련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중국 직구 상품에서 빈대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의류나 이불 등 제품 직구를 자제하고, 반드시 집 밖에서 박스를 개봉하라는 팁도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다.

다중이 사용하는 비행기 좌석이나 기차 좌석, 숙박업소 침대도 ‘빈대 포비아’로 꺼리게 되면서 여행 취소도 이어지고 있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유럽 여행을 다음 주에 가는데 빈대 이슈로 너무 걱정이 된다”,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데, 최근 리뷰에 빈대 후기가 올라왔다”는 우려부터 “빈대 퇴치제를 사려고 약국에 갔는데 품절 대란”이라며 대비 방법을 공유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특히 외국인 투숙객 비중이 높은 호텔업계도 고민이 깊어졌다. 호텔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여행객수가 회복되면서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빈대 리스크’로 다시 긴장 태세에 돌입했다. 업계는 빈대 관련 ‘위생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거나 전문 업체를 통한 방역·방제 조치를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국내에서 빈대 신고가 이어짐에 따라, ‘빈대 포비아’ 현상은 당분간 유통‧여행‧숙박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3일 행정안전부 등 10개 부처를 동원해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가동하고 빈대 퇴치 총력전에 나섰다. 정부합동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등에서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는 총 35건이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 방제를 실시한 곳도 있어, 실제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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