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증시에 1400만 개미들은 ‘발만 동동’
  • 이석·조문희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0 12:05
  • 호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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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무너진 ‘공매도 신기루’
전문가들 “공매도 테마가 아니라 기업 펀더멘털 살펴야”

금융 당국은 11월6일부터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Short Selling)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공매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여겼던 개미투자자들은 환호했고, 증시 현황판은 곧바로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공매도 수혜주로 꼽히는 이차전지주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불장’이 전개된 것이다. 이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등이 상한가를 쳤다. LG에너지솔루션(22.76%), LG화학(10.62%), 삼성SDI(11.45%), 포스코홀딩스(19.18%), 포스코DX(27.00%), 에코프로에이치엔(28.73%), 엘앤에프(25.30%) 등도 강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66% 오른 2502.37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도 마찬가지였다. 3년5개월 만에 사이드카(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됐을 정도로 주가가 급등했다. 코스닥은 7.34% 상승한 839.45에 장을 닫았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2020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차전지와 바이오, 면세·여행·유통 등 중국 소비테마주 등 공매도 잔고가 쌓여 있는 종목들을 중심으로 단기적인 주가 모멘텀이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개인투자자들의 투심을 자극해 당분간 주가 랠리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시사저널 최준필
금융 당국이 11월6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이 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공매도 금지 둘째 날인 11월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공매도 금지가 쏘아올린 ‘혼돈장’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코스피는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급등한 지 하루 만에 2500선을 반납했다. 1%대 하락 출발한 코스피는 낙폭을 키워 2.33% 하락한 2443.96에 장을 마쳤다. 장 중 한때 2410선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코스닥에선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은 ‘매수’가 아니라 ‘매도’ 사이드카였다. 장 중 805선까지 떨어졌던 코스닥은 오후 들어 하락 폭을 줄여 1.80% 내린 824.35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급등했던 이차전지주가 대거 폭락하면서 상승분을 반환했다. 코스피 시장에서 포스코홀딩스와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11.02%, 10.23%씩 크게 떨어졌다. 이들 종목은 전날 20%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코스닥 시장에선 엘앤에프가 15.29% 급락했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DX도 장 중 10% 안팎 떨어졌으나, 오후 들어 하락 폭을 줄이면서 각각 -4.85%, -5.83%에 장을 마감했다. 이들은 전날엔 상한가를 기록하거나 상한가에 준하는 폭등세를 보인 종목이다.

당초 시장에선 공매도 세력이 손실을 막기 위해 빌렸던 주식을 되갚는 과정에서 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전날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외국인이 예상보다 빨리 ‘팔자’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전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1조2000억원 가까이 사들였지만, 이날에는 개장부터 순매도세로 전환했다.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해 주식을 매입하는 ‘숏커버링’ 물량을 일정 부분 소화하고, 이날에는 차익 실현 물량을 쏟아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증시 하락세는 공매도 금지 사흘째인 11월8일에도 이어졌다. 장 초반까지만 해도 전광판이 빨간색 일색이었지만, 얼마 안 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외국인은 이틀째 물량을 쏟아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92% 내린 2421.62로, 코스닥은 1.62% 하락한 811.02로 장을 마쳤다. 공매도 금지를 둘러싼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나흘째인 11월9일에는 혼조세였다. 코스피는 소폭 상승했지만, 코스닥은 이날도 하락하면서 800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갈팡질팡 장세에 개미들 역시 큰 혼란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금지 이슈가 단기적으로는 지수 상승을 견인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급에 따른 움직임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본다. 공매도 금지를 일종의 ‘테마’로 접근하고, 섣부른 투자를 유의하라는 조언이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때로는 펀더멘털(기초 여건)로 설명되지 않는 단순 수급에 의한 반등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증시에 대한 안전핀 역할이라기보다 오로지 수급에 의해 움직이는 ‘숏커버 테마’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은 과거 세 차례 공매도 금지 기간의 주가 흐름을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2008년 공매도 금지 기간 첫날에는 코스피가 0.58% 하락했고, 코스닥이 0.04% 상승했다. 2011년에는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0.27%, 4.77% 상승했다. 반대로 2020년에는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3.19%와 3.72% 하락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3번의 공매도 금지 기간에 주가지수가 오른 경우가 있었지만 공매도 금지 조치보다는 다른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을 것”이라면서 “공매도 금지 조치는 외국인 자금 이탈 등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정의정 한투연 대표가 11월6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도 ‘빨간불’

특히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인해 정부가 추진하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최근 리서치 기업 스마트카르마의 브라이언 프레이타스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공매도 금지가 과도한 밸류에이션에 제동장치 역할을 하지 못해 일부 종목에 거품을 형성할 것”이라며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로 이동할 가능성을 더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1월6일 기자들과 만나 “(공매도 금지는) 선진적 공매도 제도 도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MSCI 선진지수 편입은 정부 당국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공매도도 그중 하나인 것은 맞다”면서 “정부는 MSCI 편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 개선 사항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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