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동네 투어·장제원은 산악회…그들이 ‘험지’를 거부하는 법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3 12: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비명계 ‘결단’ 촉구 속 계양서 염색‧마실 영상 공개
장제원, 혁신위 ‘친윤 용퇴’ 요구에 버스 92대 세 과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인천 계양을 지역구의 한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는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이재명 인스타그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인천 계양을 지역구의 한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는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이재명 인스타그램

거대 양당의 지도부와 당 주류인 친(親)이재명계‧친윤석열계를 향한 ‘용퇴론’이 안팎에서 빗발치고 있다. 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험지로 나서거나 불출마를 선언해 승리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다. 하지만 당사자들 대부분 보란 듯 지역 행보를 넓히며 완강한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응하지 않으면서 비주류들의 탈당 움직임이 커지는 등 당 안팎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비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일 이재명 대표를 향해 ‘결단’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현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떠나 험지 출마를 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꾸려진 총선기획단이 친명 중심이란 비판이 받고 있는 데다, 인재위원장까지 이 대표가 직접 맡으면서 이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지난 8일 이 대표를 향해 “모든 권력을 다 거머쥐고 있어 ‘사당화’라는 얘기를 듣는 이 대표가 먼저 험지 출마를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가장 좋은 곳에서 다시 출마하겠다고 하면 비명계 의원들에게 다른 데로 가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고 따져 물었다.

 

李 ‘머리하고 동네 투어’…非明은 집단 행동 예고

그런 가운데 이재명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머리하고 동네 투어하는 나 어떤데’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1시간37분 분량의 이 영상엔 이 대표가 지역구인 계양 골목을 다니며 주민들과 사진 찍고 악수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아래엔 ‘잼있는 계양’(재밌는 계양·이재명 있는 계양이라는 뜻)이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이 대표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염색을 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사실상 비명계의 험지 요구를 거부하고 계양을 출마 의지를 다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친명계 의원들이 그를 대신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9일 “험지출마는 낯선 데 가서 죽으라는 것”이라며 “정치를 그만두라는 소리”라고 반발했다. 조정식 사무총장 역시 12일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의 틀이 있다”며 “(이 대표 험지 출마는) 당내서 논의되거나 검토될 시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와 친명계의 요지부동에 이원욱 의원을 비롯한 이상민·조응천·김종민 의원 등 비명계는 집단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원칙과 상식’(가칭) 출범을 예고하며 향후 탈당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경남 함양군 함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회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장제원 페이스북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경남 함양군 함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회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장제원 페이스북

張 ‘산악회 정치’…친윤, 혁신위에 불편 심기

국민의힘에선 친윤 중진 의원들을 향한 용퇴 요구가 더욱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이들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과 당을 위한 ‘희생’을 거듭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대상으로는 ‘윤핵관’ 중 핵심으로 분류돼 온 장제원(부산 사상)‧권성동(강원 강릉) 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혁신위의 공개 촉구 이후 기존 지역구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희생을 정면 거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경남 함양에서 열린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행사에 참석하며 보란 듯 ‘세 과시’에 나섰다. 여원산악회는 부산 사상 지역구를 중심으로 장 의원을 지원하는 외곽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장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경남 함양 체육관에 버스 92대 4200여 회원이 운집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장 의원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 산악회를 통해 존재감을 뽐내왔다. 지난해 7월 이준석 전 대표 중징계로 당이 어수선할 때에도, 그해 12월 권성동 의원과의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에도 수천 명이 운집한 산악회 사진을 공개했다. 이번에도 장 의원이 자신의 세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혁신위에 정면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권성동 의원 역시 최근 ‘무조건 강릉에 출마한다’는 의지를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혹 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을 경우 무소속 출마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권 의원은 이제 자신을 ‘윤핵관’ 범주에서 빼 달라고 요청하는 등 혁신위의 ‘희생 대상’과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들 뿐 아니라 혁신위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 모두 “급하게 밥을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다”(김기현 대표), “정치를 처음 대구에서 시작했으니 대구에서 마쳐야 한다”(주호영 의원)라고 밝히며 부정적인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위도 친윤 용퇴론에 다소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인 위원장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국회 일 처리할 것도 많고, 좀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의 무응답에 대해 “(희생) 요구를 좀 더 세게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혁신위가 머잖아 이들의 험지 출마 안건을 정식으로 당 최고위원회에 접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당 지도부의 결단에 따른 친윤 의원들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당 모두 주류들을 향한 희생 요구와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발로 팽팽한 가운데, 서로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눈치 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13일 통화에서 “이재명 대표도 지금은 침묵하지만 김기현 대표가 용퇴를 결정하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결국 어느 당에서 더 선제적으로 핵심 인사들의 결단이 나오느냐에 따라 혁신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