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반도체의 봄’은 언제나 돌아올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9 10: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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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적자 폭 시간 갈수록 감소
글로벌 경기 침체 및 금리 언제 잡힐지가 관건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반등은 경기 회복의 전제다. 반도체 업계가 오랜 침체기를 끝낼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67조4047억원, 영업이익 2조4336억원을 기록했다. 직전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2.3%, 영업이익은 무려 264.04%나 늘어났다. 범위를 좁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만 보면 3분기 매출 16조4400억원에 3조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전히 영업손실 상태이긴 하지만 손실 폭은 1분기 대비 8300억원, 2분기 대비 약 6100억원 줄어들었다.

ⓒ연합뉴스
10월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의 한 부스에서 관계자가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업계 오랜 침체기 끝날 조짐

SK하이닉스도 AI 열풍 속에 주력인 D램 판매가 늘어나면서 3분기 출하량이 22% 증가했다. 덕분에 3분기 SK하이닉스 실적은 2분기보다 매출은 24% 늘어났고 영업손실은 38% 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정도를 극적인 상황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회복되고는 있지만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다. 지난 10월 국내 반도체 수출 실적은 89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7% 줄었다. 두 자릿수 감소 폭에서 이제 한 자릿수로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년보다는 적다.

무엇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아직 회복 조짐이 거의 없다. 최근의 반도체 시황에 나타난 긍정적 신호는 제한적이며, 그나마 수요가 늘어서라기보다는 감산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D램의 경우 삼성전자는 월평균 웨이퍼 투입량을 지난 1분기 70만 장 수준에서 2분기 63만 장으로, 3분기 들어서는 59만 장 수준까지 줄였다. 1분기와 비교하면 3분기에는 D램 생산량을 15% 정도 하향 조정한 셈이다. SK하이닉스의 월평균 D램 웨이퍼 투입량도 올 1분기 44만5000장 수준에서 2분기 41만 장으로, 3분기에는 39만 장으로 줄었다. 1분기와 비교하면 12% 수준의 감산을 진행 중으로, 올해 4분기에는 투입량을 더 줄이고 있다.

문제는 두 회사의 재고 자산이 감소하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다는 점이다. 역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주문이 예년만큼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세계 반도체 매출은 8월 대비 1.9% 증가했고, 작년 9월 대비 4.5% 감소했다고 한다. 전월 대비로 보면 지난 3월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어 긍정적이지만 역시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여전히 줄어든 상태다. 이 정도를 본격적인 반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요가 늘지 않으면 제조사들의 감산 효과에도 한계가 있다. 반도체 재고는 고객사가 먼저 재고를 소진하고 난 후 공급업체들의 재고가 줄어드는 순서로 이어진다. 아직은 고객사 재고 소진도 끝나지 않았다. 특히 낸드플래시의 경우 재고가 1년분 이상 남아있는 고객사도 많다고 한다.

반도체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은 수요 증대에 기반을 둔 공급 확대로 이어져야 가능하다. 메모리반도체 세계시장 규모는 올 2분기 19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37억 달러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D램 시장의 질적인 도약을 견인할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과 DDR5(초고속 메모리기술)도 초기 시장에 불과하다. AI 투자 확대에 따른 수요 증대 효과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수요가 공급에 미치지 못하면서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하락하는 추세가 멈췄을 뿐, 본격적으로 상승하지는 못하고 있다. 바닥을 지난 것은 맞다. 재고 수준은 지난 1분기에 역대 최대치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고, 2분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재고량 감소분보다 신규 주문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부터다. 반도체 업체들의 감산 기조가 2023년 말까지 계속된다면 점진적인 회복 국면 진입을 예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이제 연말이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특별한 수요 폭증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 1분기까지는 상황이 달라지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계의 반등 시기를 내년 상반기 이후로 보는 보수적 관측이 확대되고 있다. 업체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망가졌던 서버 시장도 수요가 돌아오는 건 내년 2분기부터가 될 것이다.

회복 수준은 경기 상황에 좌우된다. 반도체 경기도 전반적인 글로벌 제조업 경기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사실 지금 반도체 경기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인플레이션이다. 먼저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이어서 금리 하락이 이뤄져야 투자 확대가 가능하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경기가 개선된다. 반도체 시장과 세계 GDP 성장률의 상관관계는 0.88에 이를 정도로 깊다. 경기 침체 우려가 다소 줄었다고 하지만 2024년 세계경제는 누적된 고물가 및 고금리 영향으로 인한 경제활동 둔화에 따라 추세 이하의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GDP 성장률은 올해보다 다소 낮게 전망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소비 대국인 미국 및 중국의 예상 성장률이 낮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4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의 3%보다 낮은 2.9%, 미국은 올해의 2.1%보다 낮은 1.5%, 중국도 올해의 5%보다 낮은 4.2%를 전망하고 있다. 경기 회복 지연에 수요 둔화가 계속된다면 제조업 업황의 어려움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반도체 시장의 회복 역시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내년 반도체 시장 규모는 60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이건 2022년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뜻이다.

 

내년 상반기 이후 본격 반등 전망

반도체 경기의 반등 없이 우리나라의 수출 회복은 어렵다. 지금의 반도체 경기 부진은 경기 하강으로 인한 세계적 수요 감소로 촉발됐다. 반도체 시장은 2024년 2분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서고, 점차 더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남아있는 변수는 공급 부문에 있다. 시장이 회복되면 그동안 공급량을 조절하던 메모리 업계는 감산을 완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에 2024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 신규 공장 가동 시기가 대부분 2024~25년으로 잡혀 있다고 한다. 목표한 대로 많은 신규 공장이 가동되면서 공급이 늘어나면 반도체 가격 상승이 오래가기는 어렵다. 공급이 크게 늘어나도 가격이 유지되려면 수요가 충분히 늘어날 만큼 거시경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과거 반도체 산업의 경기 사이클 주기는 경기 상승 국면에서 약 3년, 경기 하강 국면에서 약 1년 동안 지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세계경제가 본격적으로 나아지지 못하면 반도체 시장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공급과잉 상황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 데도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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