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마녀사냥” 트럼프의 역공, 본선에서도 통할까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9 08: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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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리스크를 지지층 결집과 선거운동 수단으로 활용…중도·무당층 겨냥한 외연 확장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리턴 매치’를 가정한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어서다. 아직 대선까진 1년이 남아있지만 미 정치권에서조차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과 밴드왜건(대세 편승)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당내 경선과 달리 ‘외연 확장’이 필요한 본선에선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어떻게 작용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6일 뉴욕 대법원에 출석한 후 법정 밖에서 자신의 주장을 역설하고 있다. ⓒAP 연합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6일 뉴욕 대법원에 출석한 후 법정 밖에서 자신의 주장을 역설하고 있다. ⓒAP 연합

‘1·6 의사당 난입’ 사건 재판 생중계 요청도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2위 후보군과의 격차를 점점 더 벌리며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선거 분석 업체인 ‘파이브서티에잇(FiveThirtyEight)’에 따르면 11월14일(현지시간) 기준 각종 가상 경선 여론조사 결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58.6%의 지지율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14.1%),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9.0%), 기업가 출신 비벡 라와스와미(5.0%)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 정치권에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차츰 우위를 점해 가고 있다. 미국 CNN방송이 11월9일 공개한 조사(오차범위 ±3.3%p)에서 ‘만약 오늘이 대선이라면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49%가 트럼프를, 45%가 바이든을 각각 꼽았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지난 8월 CNN 조사(트럼프 47%, 바이든 46%) 결과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가 11월3일 6개 경합주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트럼프가 바이든에 48%대 44%로 앞섰고, 특히 6개 경합주 가운데 5곳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대선까지 1년이나 남아있긴 하지만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활’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한껏 자신감을 충전한 트럼프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해충’이라고 비유하는 등 특유의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는 11월11일 뉴햄프셔주 클레어몬트에서 행한 연설에서 “우리나라에서 해충처럼 살며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선거에서 속임수를 쓰는 공산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파시스트와 급진적 좌파 깡패들을 근절할 것을 맹세한다. 그들은 미국인과 아메리칸드림을 파괴하기 위해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2020년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자신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되풀이했다.

트럼프의 행보는 법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11월6일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산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한 금융사기 민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을 향해 “정치적 마냐사냥을 저지른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날을 세웠고, 재판을 맡은 아서 엔고론 판사에 대해서도 “매우 불공정한 재판이다. 사기는 내가 아니라 법원에 있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는 4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에서 엔고론 판사와 여러 차례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측은 또 최근 자신이 기소된 4건의 형사사건 중 핵심인 1·6 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 재판을 생중계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언론사가 해당 재판의 생중계를 요청하자, 트럼프 변호인단도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사건을 비밀스럽게 처리하려고 해 재판 과정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보수 성향 매체인 ‘내셔널 리뷰’의 리치 라우리 편집장은 최근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형적이지 않은 법정 행동은 이것이 전형적인 법적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죄판결 받더라도 대선 출마 가능

또 다른 일각에선 트럼프의 이 같은 행동과 요구는 자신의 재판을 대선 선거운동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의 형사재판은 내년 대선의 중요한 일정들과 맞물려 있는 만큼 선거운동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자 이를 오히려 선거운동 기회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재판이 생중계될 경우 법정은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이미 잇따라 기소되는 과정에서 지지율 상승과 정치자금 급증 효과를 누린 바 있다.

전 대통령이 기소된 4건의 형사사건 중 1·6 사태 당시의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와 관련한 재판과 성추행 입막음 의혹 사건 재판은 각각 내년 3월4일과 3월25일 열릴 예정이다. 연방정부 기밀문건 유출 사건 재판은 내년 5월20일 시작된다. 조지아주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와 관련한 재판은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다만 패니 윌리스 풀턴카운티 검사장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사건은 수개월간 재판이 지속돼 내년 겨울이나 2025년 초까지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미국 법상 현재 기소된 혐의만 놓고 보면 전 대통령은 기소된 상태는 물론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지지층 결집’보단 중도층 및 무당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와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 등은 중도층 및 무당층 표심을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CNN 조사에서 트럼프는 ‘봉사할 수 있는 체력과 영민함’(53%, 바이든 25%), ‘힘 있는 세계 지도자’(48%, 바이든 36%)라는 점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강점으로 인식됐지만, 중도층 및 무당층 표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 ‘법치 존중’(35%, 바이든 51%), ‘정직·신뢰’(33%, 바이든 42%) 등에선 약점을 드러냈다. 퀴니피액대가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응답자의 68%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45%도 트럼프가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대선 1년 전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향후 정치적 돌발 변수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 캠프 본부장을 지낸 짐 메시나 메시나그룹 CEO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1년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뒤졌다고 소개하면서 “초기 여론조사는 믿을 수 없다. 초기 여론조사에 답변하는 사람들은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돼 있다”며 “부동층은 아주 늦게까지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이 이번 선거를 결정할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메시나 CEO는 2008년 금융위기, 2012년 허리케인 샌디 강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론하며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할 수 없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트럼프가 감옥에 갈 것인가. 그것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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