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성과 엇갈린 신세계의 임원인사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8 16: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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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임원 인사 단행...계열사 CEO 9명 한꺼번에 물갈이한 까닭은?

올해 국내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임원 인사의 문을 연 기업은 바로 신세계다. 50개가 넘는 계열사를 보유한 유통업계 명가이자 재계 11위인 신세계의 임원 인사가 공개되자 언론은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전체 대표이사의 40%에 해당되는 계열사 CEO 9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SSG 랜더스의 김원형 감독이 경질되면서 신세계의 임원 인사는 여러 해석을 낳았다.

그룹의 실질적 경영을 이끄는 정용진 그룹 부회장은 올해 내내 위기의식을 임직원에게 주문했다. 참고로, 유통업계는 그 어떤 산업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유통업을 좁게 해석하면 신세계와 롯데, 현대백화점의 경쟁이지만 넓게 보면 새로운 강자 쿠팡과 네이버 등 이커머스 기업들과의 경쟁으로 확대된다. 최근엔 CJ올리브영이 멀티플랫폼을 강조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를 허물고 있다. 유통업은 레드오션이다.

정 부회장은 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객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고 판도를 뒤흔드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다. 소비하기에 편리한 장소로 신세계를 한정하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키워드가 바로 구독경제와 락인(lock-in) 효과다. 소비를 넘어 먹고 즐기는 모든 분야에 걸쳐 신세계의 유니버스(세계관)를 구축, 고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6월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신세계 유니버스 페스티벌’에서 이인영 SSG닷컴 대표, 강희석 이마트 대표, 전항일 지마켓 대표(왼쪽부터)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과 성과 엇갈린 결과로 나타나

신세계는 2021년 3조4000억원을 들여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다. 신세계의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유통업계 역대 최대 규모의 M&A다. 같은 해 신세계는 4743억원을 투입해 스타벅스코리아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SK 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했고 패션 플랫폼인 W컨셉까지 SSG닷컴을 통해 인수했다. 신세계의 M&A 전략은 명확하다. 신세계는 고객과 세계관을 공유, 그들을 묶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를 위해 성과가 다소 하락하더라도 새로운 변화를 위해 혁신을 요구한다. ‘정용진의 사람’으로 불렸던 강희석 이마트 및 SSG닷컴 대표는 이에 발맞춰 신세계의 사업구조를 온라인과 디지털로 변화시켰다. 전통적인 유통업계의 경쟁 구도는 롯데와의 오프라인 매장 경쟁이다. 업의 본질이 변화했다고 판단한 신세계는 오프라인이 아닌 이커머스로 방향을 틀어 디지털 영역에서 쿠팡과 네이버쇼핑을 정조준했다.

결과적으로, 온라인과 디지털에서 신세계는 쿠팡과 네이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마트는 올 상반기에 4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고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에 고객은 몰입하지 않았다. 쓱닷컴은 쿠팡과 네이버의 상대가 되기엔 부족했고 결국 쓱닷컴, 지마켓의 작년 적자 총액도 1800억원으로 불어났다. 혁신을 지켜보던 이명희 회장이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신세계 임원 인사의 핵심은 강희석 대표의 연임 여부였다. 임원 인사 직전만 해도 강 대표가 신세계그룹의 총괄사장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용진 부회장의 요청에 따라 그룹의 방향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경쟁 구도를 롯데에서 쿠팡과 네이버 등으로 전환시킨 인물이 바로 강 대표다. 그러나 임기 2년 반을 남겨놓고 강 대표는 결국 이명희 회장에 의해 경질됐다. 성과가 따라오지 못한 탓이다.

파격 임원 인사를 단행한 신세계는 온라인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본업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다. 온라인과 디지털 경쟁보다 그룹의 핵심 역량이자 자산인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강화하겠다는 것이 신세계그룹의 방향성이다. 이명희 회장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고 기본 경쟁력을 먼저 갖춰야 함을 신세계 임원들에게 주문했다. 신세계에 혁신은 필요하지만 성과가 그에 맏는 성과가 아직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판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용진 부회장이 SSG 감독으로 그간 뛰어난 성과를 보여온 김원형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는 사실이다. 야구 현장에서 김원형 감독은 한국프로야구(KBO) 역사상 처음으로 와이어 투 와이어(시즌 내내 1위를 기록) 우승 기록을 달성한 명장이다. 업적에서 부족한 점이 없음에도 정 부회장은 베테랑 기용을 위주로 한 감독의 리더십과 리빌딩 부족을 이유로 김 감독을 경질했다. 혁신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왼쪽부터) ⓒ신세계 제공·연합뉴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왼쪽부터) ⓒ신세계 제공·연합뉴스

신세계 미래는 월마트인가 아마존인가

그렇다면 신세계의 영원한 라이벌 롯데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참고로, 롯데쇼핑은 실적 면에서 올해 선방을 기록했지만 백화점의 영업이익률은 계속 하락하는 상황이고 홈쇼핑도 적자로 전환된 상태다. 롯데그룹 역시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인가 아니면 안정에 무게를 둘 것인가를 두고 업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혁신과 성과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또 다른 전통의 강자 현대백화점은 최근 주요 3개 계열사 수장을 모두 교체했다. 현대백화점의 매출 및 영업이익도 줄곧 하락하는 상황이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인사의 칼바람은 해당 분야의 절대강자 쿠팡에 롯데를 포함해 전통의 강자들이 모두 실적에서 밀린 탓에 몰아쳤다.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이마롯쿠’ 경쟁에서 쿠팡은 이미 이마트와 롯데를 넘어선 지 오래고 이커머스에서도 쿠팡은 절대강자 네이버쇼핑을 제쳤다.

쿠팡이 온라인을 넘어 유통업계를 초토화시키자 정용진 부회장은 ‘타도 쿠팡’을 외치며 혁신을 주장했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다만, 글로벌 유통 강자의 대부분은 여전히 월마트 등 전통의 오프라인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이명희 회장이 성과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유다. 신세계가 월마트를 지향하느냐 또는 아마존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인사 방향은 엇갈린다. 혁신과 성과에 관한 신세계의 고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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