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은 ‘역대급’ 호황에도 왜 웃지 못하나
  • 유호승 시사저널e. 기자 (yhs@sisajournal-e.com)
  • 승인 2023.11.28 07:3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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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슈퍼 사이클’ 감당할 숙련공 턱없이 부족
인력 부족에 납기 지연금 배상 위기감도 고조 

HD현대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 ‘빅3’는 최근 조선소마다 곳간에 3~4년치 일감을 넉넉히 쌓아두는 ‘슈퍼 사이클’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역대급 호황이 ‘신기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가득한 일감을 소화할 인력과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수주한 선박의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매일 발생하는 지연금을 발주사에 지불해야 한다. 간신히 흑자 전환에 성공한 우리 조선사들을 또다시 적자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조선업계는 납기일 준수를 최우선 목표로 인력 채용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3분기 조선업계가 채용한 내·외국인은 1만4359명이다. 조선소들이 원했던 1만4000명을 넘어선 수치다. 목표치보다 많은 인원을 모집하면서 고질적인 인력난은 어느 정도 해소된 분위기다. 일례로 HD현대 조선 부문(현대중공업 등)의 지난해 근로자 숫자는 1만9646명인데, 올 3분기에는 2만1323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한화오션은 8629명에서 8779명으로, 삼성중공업은 8775명에서 9462명이 됐다.

한화오션 경남 거제사업장 모습. ⓒ한화 제공
한화오션 경남 거제사업장 모습. ⓒ한화 제공

충원 인력 10명 중 8명이 외국인 노동자

인력 충원은 향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만에 찾아온 호황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 규제에 따른 LNG선 등 친환경 선박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인력 채용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올 1~3분기 채용한 1만4000여 명의 인력 중 85.9%가 외국인 근로자인 점은 조선사들의 고민이다. 올해 조선소에 투입된 이들은 국내 인력 2020명, 기능인력(E-7) 6966명, 비전문인력(E-9) 5737명 등이다. E-7 및 E-9 비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뜻한다.

정부는 앞서 조선업계 생산인력 안정화를 위해 숙련 E-7 연간 비자 인원을 기존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확대했다. 사전심사부터 비자 발급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기존 한 달에서 10일 이내로 단축했다. 외국인 E-7 비자는 2017년부터 운영됐지만, 체류 자격 전환 요건이 까다로워 산업 현장이 원하는 선발 인력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동안 업계가 불만을 토로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언제든 우리 조선소를 떠날 수 있어, 이들이 많아지는 데는 분명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부족한 인력을 당장 채울 수는 있지만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경쟁국에서 우리나라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현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 유출이나 고용 불확실성 등도 우려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늘려 일감을 소화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인력 육성과 숙련공의 지속적인 충원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돼야 조선업계의 지속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일감이 없을 때는 구조조정을 하고, 시장이 좋아지면 다시 대규모 채용에 나서는 것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면서 “고무줄처럼 인력을 늘리고 줄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선소를 찾는 신규 인력이나 숙련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용 인력의 상당수가 숙련공이 아니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을 급하게 조선소에 투입하면서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숙련공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최소 1~3년이 필요한데,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면서 ‘경험치’를 쌓을 시간이 부족해서다. 기자가 만난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신규 인력들의 숙련도 문제나 외국인 근로자와의 의사소통 문제 등을 고려하면 안전사고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가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조선업계는 채용 문제와 고용인력 안정·확대를 위해 정부와 함께 해결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 조선업 생산인력 양성 사업’을 통해 올해 200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해 현장에 투입한다는 목표다. 아울러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 이들이 조선업계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도 바꿔야 한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왼쪽 다섯 번째)가 현대중공업(현 HD현대) 군산조선소 재가동 선포식에 참가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 안정 위한 제도적 환경 변화 절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21년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 후 관련 분야에 취업한 이들은 930명 중 202명에 그쳤다. 학업을 마친 이들의 약 22%만 전공 분야에 취업한 셈이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근무 여건으로 조선업계에 대한 취업 선호도가 낮아진 결과다.

내년 상황은 더 암울하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내년에는 선박 건조 물량이 더 많아져 현재보다 약 20% 더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3분기 기준으로 조선 ‘빅3’의 전체 인력은 3만9564명인데, 약 8000명이 충원돼야 정상적인 선박 건조가 가능한 셈이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그래서일까. HD현대는 현재 서울대와 손잡고 조선해양공학과 인공지능(AI)을 융합할 인재를 직접 육성 중이다. 동시에 서울대 대학원에 석·박사 융합 과정인 스마트 오션 모빌리티 과정을 개설해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을 우선 채용 중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해 많은 국내 인력 및 관련 학과 졸업자가 조선업계를 찾을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바꿀 계획”이라며 “숙련공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인력을 현장에 배치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조선업계와 지속적으로 협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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