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9부 능선’ 넘었던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국회에서 발목 잡혔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4 14: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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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참패에 관치 논란과 제도 개선 요구 거세져…행안부 ‘민간플랫폼 허용’으로 급선회했지만 국회에서 외면

실패 위기에 빠진 고향사랑기부제를 살릴 구원투수로 꼽히는 ‘민간플랫폼 허용’ 방안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 통합플랫폼인 ‘고향사랑e음’만을 고집하던 행정안전부는 거세지는 관치(官治)행정 논란과 제도 개선 요구를 고려해 최근 민간플랫폼 허용 쪽으로 입장을 전격 선회했다. 활발한 민관 협업과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제도가 활성화될 일만 남았나 싶었지만, 이번엔 국회가 낮은 전문성과 상황 판단력으로 민간플랫폼 허용의 발목을 잡고 나섰다. 롤러코스터를 탄 고향사랑기부제의 종착지는 성공과 실패 중 과연 어디일까.

ⓒ연합뉴스
11월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가운데) ⓒ연합뉴스

행안위 소위, 민간플랫폼 허용안 반대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1월15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운영 근거를 관련법에 명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보류했다. 말이 보류지 소속 위원 9명 가운데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제외한 8명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민간플랫폼을 참여시키기보다 고향사랑e음을 고쳐 쓰면 되지 않느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날 소위에서 가장 강하게 민간플랫폼 반대 의견을 낸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민간플랫폼을 허용하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플랫폼 구축 비용이나 운영 수수료를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에서 충당하게 된다”면서 “(지자체들에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별도의 수수료가 없는 정부 통합플랫폼 고향사랑e음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제도 개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행안위 법안심사제1소위는 행안부 측에 내년 2월 임시국회가 열릴 때까지 고향사랑e음 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핵심 논의이자 촌각을 다투는 제도 개선안이 허무하게 뒷전으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민간플랫폼 허용을 염원해온 상당수 지자체 등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예 민간플랫폼 허용이 물 건너갈 여지도 있어 지역사회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수수료 문제 등은 민간플랫폼 허용으로 얻을 득(得)에 비해 미미한 부분임이 일본 고향세(고향사랑기부제의 롤모델) 사례나 국내 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환기된 바 있다. 송재호 민주당 의원은 “고향사랑e음을 이용하는 지자체들도 개발비와 운영비를 갹출해 부담하는 상황”이라며 “이 비용 또한 계속해서 증가할 가능성이 커 수수료 부담 때문에 민간플랫폼을 허용하지 말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여론 모여 겨우 바뀐 정책 방향 ‘말짱 도루묵’

2008년 도입된 일본 고향세는 애초에 민간이 지역 사업을 기획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민간플랫폼에 편리하게 기부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자연스레 기부자가 늘어나고 선의의 경쟁 속에 민관 협력의 우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 고향사랑기부제는 모금 창구를 정부 통합플랫폼으로 일원화하고 기부금을 이용한 다양한 지역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등 단점을 노출하며 올해 1월 시행 후 끊임없이 관치행정 논란에 휩싸여 왔다. 흥행 참패는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8월말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의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액은 총 265억여원이다. 일본이 고향세 도입 첫해 750억여원을 끌어모은 것과 비교하면 지극히 저조한 실적이다.

국회 행안위의 이번 논의 결과는 행안부가 최근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상황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행안부는 10월12일 공식 설명자료를 통해 “건실하고 다양한 민간플랫폼이 진입해 운영될 법령상 근거와 플랫폼이 갖춰야 할 세부 기준, 신청 절차 등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고향사랑e음은 민간플랫폼에 기부 제한 사항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를 비롯한 각계에서 빗발치는 민간플랫폼 허용 요구에 부응해 ‘고향사랑e음 고집’에서 ‘민간플랫폼 전면 허용’으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들이 외부 토론회에 참석해 “21대 국회에서 민간플랫폼 허용 방안 등이 담긴 개정법률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기존에 행안부는 고향사랑e음으로의 플랫폼 일원화 방침을 철통같이 사수하며 민간플랫폼을 노골적으로 외면해 왔다. 고향사랑기부제 흥행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일부 지자체가 민간플랫폼과 연계해 기부금을 활발히 모금하자 행안부는 이들을 가차 없이 제지했다. 광주 동구청은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 ‘E.T 야구단’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상영관인 광주극장을 지원하고자 민간플랫폼으로 고향사랑기부금을 모금하다가 8월4일 행안부로부터 모금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받았다. 말이 요청이지 통보나 다름없었다. 지방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행안부는 개별 지자체들에 그야말로 ‘갑(甲) 중 갑’이라서다.

행안부는 지난 1월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강원 양구군청의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이용을 중단시켰다. 당시 행안부 측은 “기부 희망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연간 기부금 상한액(500만원) 초과 여부를 확인하려면 공공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세액공제 절차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민간플랫폼은 공공 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이러한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행안부가 민간플랫폼을 인위적으로 막았다기보다 제도 자체가 그런(민간플랫폼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시쳇말로 ‘답정너식’ 태도를 보였다.(시사저널 1767호 [단독] 관치에 뿔난 지자체들, ‘골리앗’ 행안부에 잇달아 반기 기사 참고)

ⓒ민간플랫폼 ‘위기브’ 사이트 캡처
광주 동구청은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 ‘E.T 야구단’을 지원하고자 민간플랫폼으로 고향사랑기부금을 모금하다가 8월4일 행정안전부로부터 모금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받았다. ⓒ민간플랫폼 ‘위기브’ 사이트 캡처

이렇던 행안부 입장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바뀌다 보니 그 진의를 의심하는 설왕설래가 뒤따르는 지경이다. 일각에선 행안부가 민간플랫폼을 허용하는 시늉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추정한다. 한 민간플랫폼 사업자는 민간플랫폼 허용 시 사전에 자격 요건을 심사·승인하겠다는 행안부의 세부 계획에 대해 “과도한 진입장벽을 둬서 민간플랫폼 기업들의 진입 의지를 꺾어 여론 수렴이라는 명분과 정부 통합플랫폼 고수란 실리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이에 송정아 행안부 균형발전진흥과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아무 업체나 다 받아들일 순 없으니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이지 우리가 권한을 휘둘러 과도하게 심사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내년 총선 이후에나 민간플랫폼 재논의”

송 과장은 “행안부는 고향사랑기부제가 조속히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하고 각계의 건의 사항을 청취해 왔다. 특히 장관님이 외부에서 대안으로 부각되는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해 (수렴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라고 몇 차례나 강조하셨다”면서 “(지자체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민간플랫폼을 허용해야 한다고 워낙 많이 제언했기에 민간플랫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확실히 정한 것”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후 맥락을 종합해 보면 오랜 토의와 진통을 거쳐 겨우 사회적 합의에 다다른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허용 건을 국회만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행안부는 예상치 못한 국회 변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미 ‘21대 국회 내 통과’라는 목표는 물 건너갔다. 송정아 과장은 “일단 당분간은 국회에서 요구한 고향사랑e음 활성화 방안을 준비할 계획”이라며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중이라 민간플랫폼 허용 방안이 다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려면 내년 4월 총선 이후 원(院) 구성이 끝날 때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 고향사랑기부금 265억원…실적 저조한 지자체들 집행에 난항

올해 1월 시행돼 8월까지 전국의 각 지자체가 모은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은 총 265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17개 광역 시도를 놓고 보면 전남 73억2800만원, 경북 43억3800만원, 전북 36억원, 경남 30억5000만원, 강원 21억6800만원, 충북 12억9900만원, 경기 8억5300만원, 충남 8억3900만원, 광주 7억7700만원, 제주 5억6400만원, 서울 3억7300만원, 대구 3억3400만원, 부산 3억2200만원, 울산 3억1500만원, 대전 1억7500만원, 인천 1억5700만원, 세종 5000만원 정도다.

기부액이 가장 적은 세종과 가장 많은 전남의 차이는 14배 이상이다. 현재 등록된 주소지 지자체에는 기부할 수 없어 인구가 많은 서울, 부산 지역의 기부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다른 지역으로 출향민이 많은 시도의 기부액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관련 데이터를 제출하지 않은 광주와 전북을 제외하고 자체 예상 기부액의 절반 이상을 달성한 광역 시도는 9곳에 불과했다. 경북이 79.8%로 선두를 달렸고 제주는 14.1%로 꼴찌였다.

대부분 지자체는 고향사랑기부제 기부액이 적어 특정 사업 예산으로 활용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 기부금을 일단 적립한 후 내년쯤에나 사용할 계획이다. 대전시의 경우 11월7일 기준 시 자체 모금액 4600만원과 5개 자치구 모금액을 합쳐 2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는데, 홍보비로 나간 돈이 1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져 지역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시가 자체적으로 모금한 기부금이 홍보비의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정명국 대전시의원(국민의힘)은 11월10일 대전시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비즈니스에 비유하며 “1억원 투자해서 4000만원을 거둬들였다고 하면 사업하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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