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강인 ‘월클’ 원투펀치 막기엔 아시아 무대가 약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5 11: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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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결정력을 이강인이 보조하는 역할로 시너지 효과 극대화
일본과 함께 아시아 2강… 티켓 대폭 늘어난 북중미월드컵 진출 무난할 전망

2026년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은 사상 최초의 미국·캐나다·멕시코 북중미 3개국 공동 개최 대회다. FIFA는 북중미월드컵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본선 참가국 수를 기존 32개국에서 무려 48개국으로 대폭 늘렸다. 상업성을 혁신적으로 증대하기 위한 FIFA의 개혁이다.

참가국이 증가하며 각 대륙에 분배되는 본선 출전권도 크게 늘어났다. 아시아는 8.5장(본선행 8장, 플레이오프행 1장)으로 유럽(16장), 아프리카(9.5장) 다음으로 많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때는 4.5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본선으로 가는 관문은 넓어지고 턱은 낮아졌다. 아시아 전통의 강호인 한국·일본·이란·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오세아니아대륙에 속하지만 아시아축구연맹으로 옮겨 경쟁하는 호주 등 이른바 ‘아시아 5룡(龍)’은 이 체제에서 본선행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5룡은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아시아에 걸린 5장의 티켓을 모두 차지했다. 나머지 본선 출전 기회는 그동안 월드컵 경험이 적었던 신흥 국가들에 돌아가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게 FIFA의 계산이다. 특히 중국·인도·인도네시아처럼 엄청난 인구를 기반으로 거대 시장을 지닌 국가들이 새 동기부여를 가질 만하다.

그러나 FIFA의 기대나 스폰서들의 계산과 달리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출전권이 늘어나도 경쟁을 뚫어내야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나갈 수 있다. 11월 FIFA A매치 주간에 시작된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 그런 명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호주는 1·2차전을 모두 어렵지 않게 승리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UAE, 월드컵 개최를 통해 큰 경험을 쌓은 카타르 역시 2연승을 거뒀다. 전 한국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었던 김판곤 감독의 말레이시아가 2연승을 달린 것은 모두가 놀란 돌풍이었다. 반면 중국과 인도는 각각 조 3위, 인도네시아는 조 최하위에 놓였다.

11월2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페널티킥으로 선취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싱가포르·중국 대파하며 월드컵 아시아 예선 쾌조의 스타트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 한국은 아시아 2차 예선 C조의 절대강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홈에서 치른 싱가포르와의 1차전에서 5대0 대승을 거둔 한국은 이어진 원정 경기에서도 중국을 3대0으로 완파했다. 조편성 발표 직후부터 한국의 조 1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중국·태국의 언론과 축구인들은 어떻게 조 2위를 확보해 다음 라운드로 갈 것인지 현실적 논의를 하기 바빴다. 9월까지 흔들리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도 10월 A매치 주간에 튀니지와 베트남을 각각 4대0, 6대0으로 꺾고 자신감과 안정감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그 연속성을 11월까지 이어갔다.

특히 베트남을 상대로 아시아의 밀집수비를 깨는 전술적 예행연습을 한 것이 11월 싱가포르·중국과의 경기에 도움이 됐다. 손흥민·이강인·황희찬·조규성 등 다양한 득점 루트로 상대 골문을 두들겼다. 김민재·정승현 등 수비수들의 타점을 이용한 세트피스 전략은 굳게 닫힌 수비를 열어젖혔다. 과거 아시아 약체 팀들의 밀집수비에 선제골을 뽑지 못해 애를 먹다 역습 한 방에 당하는 쇼크는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황금세대엔 해당되지 않는 일이 됐다.

11월 싱가포르전과 중국전 모두 한두 수 아래의 팀을 잡는 교과서 같은 공략법을 보여준 사례였다. 싱가포르를 상대로 한국은 전반에 골대 불운에 오프사이드 오심이 겹쳐 선제골을 좀처럼 뽑지 못했다. 그러나 전반 44분 이강인의 왼발 택배 크로스를 조규성이 마무리하며 골망을 열었고, 후반에 황희찬·손흥민·황의조·이강인의 연속 골이 다양한 루트로 터졌다. 중국 원정은 득점이 줄었지만 내용은 더 압도적이었다. 일방적인 홈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반 11분 손흥민이 페널티킥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종료 직전에는 이강인의 코너킥을 손흥민이 머리로 연결해 추가골을 터트렸다. 후반 막판에는 손흥민의 프리킥을 수비수 정승현이 헤더로 마무리해 4만 관중을 침묵에 빠트렸다. 중국은 유효 슈팅 없이 단 3개의 슈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11월21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 이강인이 중국 류양과 볼 경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팀 10골 중 5골에 직접 관여한 이강인 효과 톡톡

공한증(恐韓症)의 부활이었다. 태국 원정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두며 잠시 들떴던 중국은 수년 전보다 훨씬 더 벌어진 한국과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언론들은 “3골 차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중국은 싱가포르를 대파한 태국에 골득실차에서 밀려 2위 자리도 내줬다. 카타르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베트남에도 패하는 부진 속에 조 최하위를 간신히 면하며 본선행에 실패했던 중국은 이번에도 위기를 맞았다.

한국의 전력은 현재 아시아에서 일본과 함께 2강으로 꼽힌다. 승부를 결정할 수 있는 에이스의 존재감에서는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10월부터 ‘캡틴’ 손흥민의 결정력을 ‘골든보이’ 이강인이 보조하는 강력한 ‘월드클래스’ 원투펀치가 가동되며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10월 2경기에서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포함해 무려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대표팀이 기록한 10골 중 5골에 직접 관여했다.

11월 월드컵 예선에서도 이강인 효과는 여전했다. 특히 싱가포르전에서는 5골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선제골 장면에서는 지난 카타르월드컵 때처럼 조규성과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조규성은 경기 후 “강인이가 돌아 뛰라고 외쳤고 그에 따라 움직이자 공이 내 발에 정확히 도착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3득점 과정에도 찬스의 시발점이 되는 패스나 화려한 드리블을 전개했다. 5대0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골은 그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왼발로 터트렸다.

중국전에서는 이강인-손흥민의 콤비 플레이가 빛났다. 승부를 결정지은 두 번째 골은 최근 클린스만호의 필승 공식인 니어포스트를 노리는 이강인의 정교한 코너킥을 손흥민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헤딩으로 연결하며 나왔다. 이후에도 두 선수의 2대1 플레이는 중국 수비라인을 거침없이 찢었다. 이강인이 휘젓고 손흥민이 파고들어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의 선방 덕에 중국은 소나기 실점을 피할 수 있었다.

손흥민 역시 중국전에서 유달리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 원인은 중국 언론과 축구인, 팬들의 허세였다. 한국 대표팀이 입국할 당시 손흥민·이강인의 많은 중국 현지 팬이 공항에서 환영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기·질투하며 그들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일부 축구 전문가는 “손흥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 소식을 접한 손흥민은 중국전 하루 전 최종 훈련에서 이례적으로 “아예 숨도 못 쉬게 만들어주자”는 모두발언을 동료들에게 던지며 승리 의지를 북돋웠다.

실제로 중국전에서 득점이 나올 때마다 손흥민은 거침없이 세리머니를 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찰칵’ 동작 외에도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동작도 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손흥민을 존중하지 않은 중국 측의 발언에 대한 대답이었다. 늘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손흥민은 이 경기 후 이례적으로 “중국에서 나를 막는 방법을 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직설화법을 보였다. 중국의 자극은 오히려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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