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재명은 2023년 이재명과 달랐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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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전당대회 당시 ‘비례민주주의 강화‧위성정당금지’ 공약
총선 앞 “일단 이겨야” 입장 변화…野일각 “소탐대실” 비판

“당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2022년 7월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28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비례민주주의 강화, 위성정당금지, 국민소환제, 의원특권제한, 기초의원 광역화 등 정치교체를 위한 정치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이 의원은 77.77%에 달하는 압도적인 당심을 업고 제1야당 대표에 올랐다.

그로부터 500일, ‘변화’를 외쳤던 이 대표의 ‘변심’이 감지되고 있다. 이 대표가 ‘총선 승리’를 이유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나 위성정당 출현이 가능한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다. 이를 두고 비이재명(비명)계뿐 아니라 이 대표를 엄호했던 친이재명(친명)계 일각에서도 ‘공약 뒤집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2022년 李 “다당제 바람직…비례대표 강화가 맞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과 전당대회 기간 ‘정치 개혁’을 거듭 강조했다. 여야 간 정쟁에만 매몰된 정치가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거대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2월5일, 대선 유세를 위해 부산 해운대를 찾은 이재명 당시 후보는 “우리 정치의 첫번째 문제는 거대 양당 두 곳만 있고 제3의 선택지가 없어서 국민들께서 울며 겨자먹기로 덜 나쁜 쪽을 찍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양당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수정당도 자신의 정치 의지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 교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대선 기간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발생하는 사표 문제와 소수정당 배제 문제를 언급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사했다. 당시 야권의 대선 주자였던 윤석열 후보의 ‘정권교체론’에 맞서 ‘정치교체’ 카드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한 후에도 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그해 7월17일 전당대회 출마선언문을 통해 ▲비례민주주의 강화 ▲위성정당금지 ▲국민소환제 ▲의원특권제한 ▲기초의원 광역화 등을 내세웠고, “약속은 천금같이 지키면서 마이너스인 신뢰잔고를 조금씩 충실하게 늘려가겠다”고 공언했다. 과거 정의당과 갈등을 빚은 ‘위성정당 사태’의 반성문으로 읽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추진을 촉구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민정, 김두관, 윤준병, 이탄희, 이학영,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김한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추진을 촉구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민정, 김두관, 윤준병, 이탄희, 이학영,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김한규. ⓒ연합뉴스

2023년 李 “선거는 승부, 이상적 주장하다 총선 진다”

그러나 굳어보였던 이 대표 입장이 총선을 5개월 앞두고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민주당의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야권 일각에서 제기되면서다. 29일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적힌 시뮬레이션 보고서까지 받아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이 대표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실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동일한 득표를 얻더라도 어떤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택하고, 위성정당을 만드는지에 따라 의석수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민주당의 경우 연동형을 택하면 16.45석을 잃지만 국민의힘은 9.55석, 이준석 신당은 4석, 정의당은 2.3석, 조국 신당은 0.65석을 각각 얻는 것으로 분석된다. ‘총선은 현실’이라는 이 대표의 고민이 이 ‘숫자’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 대표는 전날 오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인 주장을 멋있게 하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라며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리도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이 폭주와 과거로의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면서 “지금은 국회에서 어느 정도 막고 있지만 국회까지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대표의 이 같은 변화에 비명계뿐 아니라 친명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번에도 공약을 뒤엎는다면 이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묘사한 ‘마이너스인 민주당의 신뢰잔고’가 ‘파산’에 이를 것이란 우려 탓이다. 이에 친명계로 분류되는 이탄희 의원은 전날 “저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본인의 현 지역구(용인정) 불출마를 선언하고 험지 출마를 발표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선거제 개편에 앞장서 왔던 김종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겨서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실’과 ‘이상’을 둔 당내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당은 30일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민주당 내에선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병립형은 비례의석을 정당 득표율만큼 단순 배분하는 제도다. 현행 준연동형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 의석수를 미리 나눠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그에 못 미칠 때 일부를 비례대표로 채워준다.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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