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정치는 쇼 비즈니스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3.12.01 17: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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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과 관련된 어느 신문 기사를 읽다가 웃었다. <‘이준석 창당, 좋게 본다’ 38%로 상승…총선 파괴력 커지나>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이 조사를 한 여론조사기관이 다음과 같이 밝혔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신당 창당 시 지지 의향을 묻는 것이 아니라 신당 창당 자체에 대한 인식이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9일 동대구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9일 동대구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니 굳이 주의사항을 알려줘야 할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사를 왜 하지? 게다가 이준석 신당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는 74%가 부정적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57%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신당 창당 자체에 대한 인식이라는 건 신당 창당 시 지지 의향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텐데, 민주당 지지자들이 신당을 지지할 가능성이라도 있단 말인가?

여론조사에서 이른바 ‘역선택’ 문제가 논란이 돼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그걸 몰랐나?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여론조사를 했을까? 아마도 ‘재미’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게 나를 웃게 만들었다. ‘재미’라는 말을 부정적 의미로 쓴 건 아니다. 나는 “정당이건 언론이건 대중에게 재미를 줘야 성공한다”는 재미 예찬론자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와 같다.”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당선되었을 때 한 말이다. 예전엔 정치를 그렇게 해서야 되겠느냐며 이 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이젠 그게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다.” 그게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 순 있겠다.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여론 민주주의’ 체제에서 ‘쇼 비즈니스’ 마인드를 무시하는 정치인은 성공하기 어렵다.

최근 어느 논객이 “5년 평균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제일 높은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은 보수엔 ‘불가사의’다”라고 썼다.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 불가사의를 가능케 한 핵심 이유를 의인화해서 말하자면 ‘탁현민’이라고 답하련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문재인이 탁현민이다. 그는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바로 ‘쇼 비즈니스’의 본질이 아닌가.

대통령 윤석열에겐 그게 없다. 그러니 탁현민의 역할을 해줄 사람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게다. 그 결과는 만성적인 30%대 지지율이다. 이런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한 3개월 전 8·28 발언이다. 이 발언 전후로 벌어진 윤 정권의 ‘이념 공세’는 미련함의 극치였다. 그의 발언은 자신이 비난한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을 깨겠다는 뜻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혐의를 통째로 뒤집어쓰고 말았으니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다. 거칠고 우둔한 발언과 일처리는 어느덧 윤 정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그게 다 이미지를 생명처럼 여기는 ‘쇼 비즈니스’를 깔본 탓이다.

언론은 최근 이준석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준석이 예뻐서가 아니다. 옳아서도 아니다. 그는 싸움의 재미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재미만 주다가 끝나는 게 아니냐고? 비극적 서사도 강력한 재미의 원천이니만큼 그런 주제넘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핵잼’과 ‘노잼’의 이상적인 결합이 될 수도 있었던 이준석과 윤석열의 혈투도 앞으로 계속될 쇼의 일부일 뿐이니까 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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