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마저 거부 당한 與 혁신위, ‘윤심’도 손절할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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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 ‘희생 요구’에 지도부‧중진 ‘요지부동’
인요한 “공관위원장 요청”에도 김기현 “수고 많으셨다”
설화에 내홍까지 더해져 동력 상실…‘빈손’ 마무리 임박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체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체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출범 약 한 달여 만에 사실상 활동 조기 종료 수순으로 가는 분위기다. 당 지도부·친윤계·중진 의원들을 향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거듭된 ‘희생 요구’에도 당사자들이 요지부동인 데다, 인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 내부 문제들이 연달아 터져온 탓이다. 인 위원장이 30일 자신에게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달라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마저도 김기현 대표로부터 즉각 거절당하면서 혁신위 동력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심 내세운 과도한 압박에 싹 튼 반감…“용산도 손절할 듯”

야심차게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는 어디서부터 스텝이 꼬였을까. 10월26일 혁신위원 인선을 완성하고 첫 발을 뗀 혁신위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대사면’을 시작으로 총선 전 당의 변화를 이끌 혁신안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달 3일 발표한 ‘당 지도부‧친윤‧중진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제안은 혁신위 나름의 ‘야심작’이었다.

인 위원장은 계속해서 당사자들을 향해 결단을 촉구했다. 그 과정에서 김기현 대표‧장제원 의원 등 ‘희생 대상’이 자연히 특정됐다. 김 대표 등 당사자들은 혁신위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향한 압박에 공개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내서도 혁신위의 행보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총선 전 당의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며 응원을 보내는 한편,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급기야 ‘폭력적’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당사자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기다리던 인 위원장은 지난 23일 급기야 “일주일 주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리기도 했다. 그 무렵 한 친윤계 의원은 취재진에 “혁신위가 아무리 당으로부터 ‘전권’을 약속 받았다지만, 이렇게 큰 사안을 지도부와 상의 없이 던지고 계속해서 협박하듯 나오는 건 당내 분란만 더 키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당내에선 인 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과시해온 데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인 위원장은 “대통령 쪽에서 ‘지금 하는 것을 소신껏 끝까지 하라’는 신호를 받았다”는 등 자신의 뜻이 곧 윤석열 대통령의 뜻과 같음을 어필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곧장 “그런 적 없었다”며 선을 그었고 김기현 대표도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 말라”고 경고했다.

윤심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여전히 당내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희생 권고안’을 두고 벌였던 지난 한 달여의 팽팽했던 신경전에선 인 위원장이 ‘완패’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 위원장의 희생 권고에 당사자들은 그가 ‘디데이’로 정한 이날까지 끝내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당초에 윤심이 혁신위로 향해 있었더라도 이제 더는 힘을 실어주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용산도 인요한 혁신위를 손절할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1월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1월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공관위원장 추천 요구’, 인요한의 실언 추가?

혁신위의 동력이 급속도로 상실한 데는 인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들이 자초한 부분도 크다고 평가받는다. 혁신안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때 인 위원장이 각종 설화를 일으키면서 번번이 힘이 빠졌다. 출범 초부터 ‘낙동강 하류 세력’ 등 발언으로 우려를 낳았던 인 위원장의 발언들이 결국 혁신위 몰락의 주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지난 27일 이준석 전 대표를 향했던 ‘도덕 없다’ ‘부모 잘못’ 등 실언은 특히 뼈아팠다. 해당 발언 이후 갈 길이 바쁜 혁신위는 사흘 간 활동을 올스톱했고, 혁신위를 향한 안팎의 인식도 크게 악화했다.

그런 가운데 혁신위원들 사이 갈등과 사퇴 해프닝까지 겹쳐 일어나면서 혁신위의 동력과 위상은 더욱 바닥으로 치달았다. 김경진 혁신위원의 ‘혁신위는 시간끌기용’ 발언에 반발한 외부 혁신위원 세 명이 사퇴와 복귀를 거치면서 혁신위 내부의 원심력은 커져버렸다. 이들 세 혁신위원들은 김 혁신위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날까지 김 혁신위원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거치며 다수의 혁신위원들이 활동에 피로감을 느끼고 의욕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세에 몰릴 대로 몰린 인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희생 권고’ 혁신안을 공식 의결하며 동시에 당을 향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다름 아닌 자신에게 총선 공천을 진두지휘 할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혁신위의 전권을 준다고 공언한 말씀이 허언이 아니면 나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다음 달 4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는 인 위원장의 요구가 공개된 직후 일언지하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김 대표는 “그간 혁신위에서 수고를 많이 했다”며 “혁신위 활동이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 공관위원장 자리를 가지고 논란을 벌인 것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당내에서도 이날 인 위원장의 ‘공관위원장 요구’에 대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인 위원장의 진심을 다 알 순 없지만, 일단 ‘요직’을 공개 요구하는 모습이 당내 구성원들과 국민들에게 좋게 비춰질 리 없다”며 “그간 내놓았던 혁신안 제안과 혁신위 행보들마저 퇴색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지적했다. 즉, 인 위원장에게 또 하나의 실언이 추가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다.

이러한 곡절을 겪으며 혁신위가 사실상 ‘빈손 해산’ 수순을 밟게 됐지만, 혁신위의 ‘패배’가 김기현 지도부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초 혁신위를 띄우며 ‘전권’을 허락했던 주체가 김 대표였던 데다, 지난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김 대표가 ‘책임 회피용’으로 혁신위를 띄운 것이란 비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위 활동이 종료된 후 김 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더욱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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