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괴물이 산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0 11: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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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안다는 착각, 나는 아니라는 방관이 만드는 《괴물》...“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미나토(구로사와 소야)가 심상치 않은 일을 겪는다고 직감한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학교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본의 이름난 작가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쓰고,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고인의 유작이다. 11월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첫 주에만 12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남들과 다르면 별종 취급을 받는 걸까. 구분 짓고, 단절돼야 하는 존재인 걸까. 어른들이 괴물의 실체를 찾아나서는 동안,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얼룩이 스며든다. “괴물은 누구게?” 아이들로부터 천진하게 발화된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의 속내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내용에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NEW 제공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영화의 막이 오르면, 으슥한 풀숲을 걷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휘파람을 불며 손에 든 라이터를 빙빙 돌리며 걷는 중이다. 이윽고 호수 기슭에 당도한 아이는 멀찍이 떨어진 화재 현장을 바라본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와 건물을 집어삼킨 불길, 밤하늘을 뒤덮은 연기가 가중하는 불안의 기운과 달리 아이의 뒷모습은 태연해 보인다. 마침 낙인처럼 등장하는 《괴물》이라는 붉은색 글자의 타이밍은 공교롭다. 화재와 아이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아이는 방화범일까?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 베란다에서 같은 화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미나토는 엄마 사오리에게 질문한다.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한 대수롭지 않은 대화라 여겼던 사오리는 이날을 기점으로 점차 미나토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숭덩숭덩 잘린 머리카락, 한쪽만 남아있는 신발, 물통에서 쏟아져 나온 흙은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미나토의 힘겨운 지목과 여러 정황이 가리키는 이는 담임 선생님 호리(나가야마 에이타)다. 그러나 사오리의 타당한 추궁에도 교장(다나카 유코)을 위시한 학교 측은 ‘(선생님의) 손과 (아이의) 코의 접촉이 있었다’거나 ‘오해를 부른 점이 있다’ 등 의뭉스러운 표현으로 일관한다. 호리의 태도 역시 반성의 기미라곤 없다. 얼마 후 호리가 결국 학교에서 연 학부모 공청회를 통해 공개 사과에 나서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괴물》의 장막은 이제 막 한 꺼풀 벗겨졌을 뿐이다.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누구도,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장편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을 제외하고 자신이 직접 쓴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괴물》은 이례적으로 일본의 스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으로 연출했다.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 격인 《도쿄 러브스토리》(1991)를 시작으로 《마더》(2010), 《콰르텟》(2017) 등 인기 드라마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 등 다수의 영화 각본을 쓴 작가다.

그간 유사 가족, 아이들의 모험, 가해자와 유족의 관계 등 비슷한 모티프를 다뤄온 두 사람은 2018년 말부터 함께 각색 작업을 거쳐 그들의 기존 모든 작품 세계를 아우르고 관통하면서도 새로운 영역의 깊이를 완성한 《괴물》이라는 작품에 함께 도달했다. 76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대신 전한 수상 소감은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을 위해 썼다. 그것이 평가돼 감개무량하다”였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응원. 사카모토 유지의 펜 끝에 실린 《괴물》의 시작점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연합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연합뉴스

누가 괴물인지를 좇으며 알게 되는 것

영화가 점차 입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동일한 타임라인이 사오리에서 호리의 시점으로 재구성되는 2장에 이르러서다. 사오리가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추적하던 것들은 호리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다. 호리는 미나토의 발언으로 폭력 교사의 누명을 쓴 채 근신 처분을 받는다. 학교와 지역사회는 그의 호소에 무감하다. 신문 기사를 통해 범죄자에 가까운 낙인이 찍히고, 모르는 이들의 괴롭힘까지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무턱대고 당할 수만은 없는 호리가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기 위해 미나토의 행적을 좇으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2장은 거대한 혼란 그 자체다. 호리는 무고할 뿐 아니라, 미나토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정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미나토가 아니라 같은 반 학생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다. 영화의 오프닝, 호숫가에서 화재 현장을 바라보던 아이다. “괴물은 누구게?” 스무고개 같기도 하고 노랫말 같기도 한 문장은 《괴물》의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주문이기도 하다. 사건의 새로운 국면이 등장할 때마다 괴물 찾기의 초점은 조금씩 움직이며 모든 인물을 관통한다. 이 아이가 아니라면 누구인가, 이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일까. 언제 어떻게 실체가 드러날 것인가.

《괴물》의 인물들은 모두가 조금씩 나름의 이유로 괴상하게 군다. 교장은 얼마 전에 불의의 사고로 손녀를 잃은 슬픔을 겪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교내 학교폭력 문제에 이상하리만큼 고장 난 기계처럼 반응한다. 학교 밖에서는 지나가는 여자아이를 몰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모습이 사오리에게 목격되기도 한다. 호리는 의욕 넘치는 교사지만 아이들에게 ‘남자다움’을 설파하는가 하면, 책에서 오타를 발견해 출판사에 정정 요청 메일을 보내는 집요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지역 사람들은 그가 ‘걸스바’(일본 유흥업소의 일종)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는 출처 없는 소문을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사오리는 나무랄 데 없는 엄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들에게 평범성을 지나치게 종용하는 면이 있다.

미나토와 요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들여다보는 3부는 아이들만의 세계다. 공간 배경 역시 학교와 집에서 멀리 벗어난 숲속 아지트가 중심이다. 어른들의 관찰 결과가 아닌 그들 스스로의 능동적 움직임 안에서 아이들은 즐거움과 괴로움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 어른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경직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각자의 괴물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스스로를 ‘괴물’이라 인식한다. 그리고 그 깊은 두려움을 공유한다.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두 아이는 호리의 말처럼 남자답지 못하고, 사오리의 바람대로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는’ 미래를 이뤄줄 수 없을 듯한 자신의 존재를 괴롭게 여긴다. 학대를 일삼는 요리 아버지의 폭언대로 스스로를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일지 모른다고 느끼는 아이들의 두려움은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3장은 그렇게 관객 각자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릴 타이밍을 제시한다. 괴물이 누구인지, 학교폭력의 진짜 가해자인지 밝히는 것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다. 어른들이 진짜 궁금해야 했던 것은 아이들이 감추고 있던 상처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장을 나눠 하나씩 속내를 들춘 영화의 의도 앞에서, 모두가 혈안이 됐을 괴물 추적은 멋쩍고 무색해진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주)NEW 제공

어김없이 약동하는 에너지와 희망찬 빛을 보기까지

《괴물》이 지닌 ‘좋은 다면성’은 어른들이 모두 유해하기만 한 존재는 아님을 잊지 않고 상기시킨다. 사오리는 남편, 교장은 손녀의 죽음에 얽힌 각자의 비밀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호리는 때때로 실수하긴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좋은 선생님이다. 인생에서 발생하는 미숙의 순간들과 마음속에 쌓이는 상처는 은연중에 이들 각자의 괴물성을 발휘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상처 입히려는 목적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괴물》의 초점은 악을 감지하고 선을 그어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 있는 삶의 복잡성 자체를 이해하는 것으로 향해 있다.

다나카 유코가 연기하는 교장은 그런 점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바꾸는 캐릭터다.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무책임한 방관자, 호리의 시점에서는 그릇된 교육자로 비친 그는 3장에서 미나토가 진심을 털어놓는 유일한 어른이다. 누군가에게 말 못 할 일이 있다면 대신 악기를 불라는 그의 말에 미나토는 힘껏 호른을 불어 소리를 낸다. “몇몇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 아니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하는 거야.” 미나토와 교장이 함께 호른에 마음을 실어 토해 내는 장면은 이 영화가 빚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구조는 일부만을 보고 잘못된 판단에 도달하는 과정을 촘촘히 그려내며 체험하게 하지만, 약간은 인위적인 도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두 소년 배우의 아름다움과 존재감이 이야기를 압도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괴물》은 불신과 방관의 풍경이 이어지는 사이, 그 안에서 할퀴어지는 존재들을 책임감 있게 응시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영화다. 퀴어와 집단 괴롭힘 등의 이슈에 폐쇄성으로 대응하는 동시대 일본 사회를 겨냥하고, 각자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듯한 날카로움은 인상적이다. 화마와 태풍, 악의적 편견과 뜬구름 같은 무수한 소문이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약동하는 에너지와 희망찬 빛이 들어찬다. 믿어야 할 것은 결국 그런 것뿐이라는 듯이. 그것은 어른들의 가치관과 판단에서 가뿐하게 벗어나 내달리는 미나토와 요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세계의 풍경이다. 영원히 불가능한 세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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