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엑스포보다 중요한 것
  •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5 17: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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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에 부산에 다녀왔다. 3박 4일의 부산-김해 여행 기간 동안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며 부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하철 서면역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데, 승강기 앞의 바닥이 너덜너덜 까져 있었다. 부산의 얼굴인 서면, 전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인데 어째 관리가 이 모양인가. 지하에서 승강기를 타고 밖으로 올라와 두어 발짝 내디딘 후 상처투성이 도로 상태를 보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심 ‘여태 제대로 된 부산시장이 한 명도 없었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러면서 무슨 엑스포?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면 돈을 쏟아부어 도로를 재정비했을 게다, 물론. 그러나 엑스포 유치 신청 이전에 도시의 근간이 되는 도로 등 기본적인 시설들을 점검하고 보수해 놓아야 하지 않았나.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정치에 올인한다고 나라가 달라지지 않는다. 손님을 초대하려면 집을 청소해야 한다. 시의 예산이 부족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는 모습 ⓒ 연합뉴스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예전에 부산에 왔을 때는 마중 나온 이들의 자동차에 몸을 싣거나 행사를 마치고 야간에 택시로 이동해 눈에 띄지 않았던 부산의 다른 모습을 보고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지하철을 타며 목격한 서면역의 첫인상은 지저분했지만, 손님을 맞는 부산 사람들의 친절함과 독특한 개성에 나는 매료되었다. 내가 묵었던 서면의 B호텔 근처의 음식점들, 야식을 즐기던 라면가게의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생각난다. 종업원이 없어, 식사를 마치고 음식 값을 내려면 가게 밖의 길가에 나가 “사장님!”을 소리쳐 불러야 했다. 내가 돈을 안 내고 도망치면 어쩌려고 저렇게 태평이신가 싶었다. 이렇게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살리면 부산은 세계적인 미항으로 거듭날 텐데. 부산만의 매력을 살리려는 노력, 오래된 항구도시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1970년대와 2023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서면에서 이틀을 보낸 후 김해로 넘어갔다.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인도 현대도자전’ 개막식에 맞춰 아침부터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먼 길을 갔다. 44번 버스에서 내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워 여행의 피로를 잊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상징인 돔을 향해 걷다 무심코 아래를 보았는데 어머나! 물고기와 꽃 이파리가 길바닥에 새겨진 게 아닌가. 상감 기법을 길바닥에 새긴 센스,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부산 명지신도시의 동네서점 책방너머에서 신간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의 낭독회를 마치고 대구행 기차를 탔다. 서점 행사를 위해 잠깐 들른 대구는 깨끗하고 부티가 흘렀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지역감정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길게 쓰지 않으련다. 아무튼 부산에서 대구로 넘어간 그날, 나는 한국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 도시의 품위는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세운 어떤 기념물이나 커다란 국제행사의 유치에 있지 않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세운다며 배후도시 개발을 위해 국제포럼을 개최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뭘 새로 짓기 전에, 지금 있는 김해공항과 부산역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리모델링해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으로 변모시키면 좋겠다. 잠시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픈 곳으로.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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