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요양병원 살인 사건 CCTV도 살해 도구도 없다? 사건 당일 이상한 행적들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8 07:3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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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동료 환자가 살인’ 결론
‘근무지 이탈’ 군의관의 의료행위, 허위 사망진단서 등 병원 과실 여부 쟁점

5월7일, 경기도 의왕시 소재 S요양병원에 입원한 80대 환자 A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요양병원은 A씨의 죽음을 ‘병사’로 판단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목졸림)에 의한 질식사였다. 경찰은 6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같은 병실에 입원한 70대 환자 B씨를 살인 피의자로 검찰에 송치했다.

남은 쟁점은 병원의 과실 여부다. 모 부대 소속 군의관 C씨가 사건 당일 병원의 대진 의사로 근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방부로도 사안이 번졌다. 군의관은 민간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는데, C씨는 2022년 9월부터 이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병원 관리·감독 책임자가 병원장이니만큼 병원에 대한 수사 결과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

직접 증거 없는 살인 사건, ‘동료 환자의 범행’ 잠정 결론

군 수사기관은 12월13일 피의자 신분의 군의관 C씨 사건을 경찰에서 이첩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 병원 다른 관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날 요양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건 당일, 대진 의사로 근무 중인 군의관 C씨와 당직 의사 D씨가 병원에 있었다. A씨를 처음 목격한 인물은 간병인이다. A씨가 잠든 모습을 5월7일 새벽 0시경 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5월7일 새벽 5시10분경 이동식 좌변기의 용변통을 비우기 위해 A씨 침상으로 이동했다. A씨의 자리는 병실 오른쪽 첫 번째였다. 간병인은 당시 숨진 상태의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자신의 침상 옆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모습이었다. C씨는 이후 A씨 상태를 확인했다. C씨와 119구급대는 A씨의 턱, 팔, 다리가 사후강직(고인의 전신 근육이 굳어지는 현상)된 것으로 판단했다. D씨는 이날 A씨가 병사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

A씨의 사망은 단순 병사로 끝날 뻔했다. 하지만 의왕경찰서는 “고인의 사망 모습이 자연사와는 다르다”며 부검을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5월31일 A씨의 사망 원인이 경부압박질식사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부검감정서에는 “목 부위에 대한 외표검사상 선상의 눌린 자국은 끈(삭상물)에 의해 목 부위가 압박되면서 형성된 끈자국(삭흔)일 가능성이 고려된다”는 결과가 담겼다. 끈의 종류나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진 않았다.

간병인과 환자 등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당시 병실에는 A씨를 포함해 모두 5명의 환자와 간병인이 있었다. 문제는 A씨 살인 사건과 관련한 직접 증거는 없었다는 점이다. 병실 내부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는 설치되지 않았다. 경찰은 살해 도구로 추정되는 ‘끈’도 특정할 수 없었다. 경찰은 압수수색 당시 병실 내부에서 다양한 끈을 확보해, 이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도 피의자를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사건 당일 B씨 외의 인물들이 A씨에게 접근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경찰이 병실 입구의 CCTV를 통해 확인한 외부인 출입 여부,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다. B씨는 A씨의 옆자리 침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B씨가 경찰 조사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A씨가 자녀들과 식사할 것이라는 내용을 듣고 자신과 비교돼 기분이 나빴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B씨는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경찰은 6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11월19일 B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의왕서 관계자는 “제3의 인물이 A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은 없다”며 “수사 결과 B씨가 오랜 기간 A씨에게 부정적 감정이 있던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입원 중인 B씨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 살인 사건이 일어난 요양병원 cctv 캡처 ⓒA씨 유가족 측
환자 살인 사건이 일어난 요양병원 cctv 캡처 ⓒA씨 유가족 측
환자 살인 사건이 일어난 요양병원 cctv 캡처 ⓒA씨 유가족 측
환자 살인 사건이 일어난 요양병원 cctv 캡처 ⓒA씨 유가족 측

군의관이 8개월간 병원 근무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남은 쟁점은 병원의 과실 여부다. A씨의 유가족은 지난 5~11월 세 차례에 걸쳐 군의관 C씨, 당직 의사 D씨는 물론 병원장과 간호사 등 모두 8명의 병원 관계자를 업무상과실치사, 변사체검시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C씨가 군의관이라는 사실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의료진은 한 병원에 소속돼 의료행위를 하려면 지자체에 의료진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후 의료기관장은 의료법상 환자 진료를 위해 다른 기관 소속 의료진에게 진료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군의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군의관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등에 근거해 민간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다. 정이원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군의관의 민간병원 근무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근무지 이탈’ 문제로도 이어진다. 그런데도 군의관 C씨는 어떻게 요양병원에 근무할 수 있었을까. C씨는 대학원 동기인 당직 의사 D씨의 부탁을 받고 해당 병원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C씨는 2022년 9월17일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려 8개월 동안이다. C씨는 토요일마다 D씨와 근무 시간을 나눠 일했다. D씨는 자신의 월급 일부를 C씨에게 주기적으로 건넸다. 당시 병원장인 E씨, 함께 근무한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은 C씨의 신분을 몰랐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는 사이 의료법상 책임 주체인 해당 요양병원장은 바뀌었다. 군의관 C씨의 근무 시작 무렵 병원장은 E씨였는데, A씨의 사망 사건 이후 병원장이 F씨로 변경됐다. 기업정보조회 ‘크레탑세일즈’에 따르면, 병원장은 사건 이후인 지난 7월 이처럼 변경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의료계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전에 해당 병원이 매물로 나왔다. 병원 소유권이 넘어가는 순간, 다음 소유권자에게 책임이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족은 고소장에서 “병원 운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병원 운영에 중대한 공백 내지 소홀이 있었다”며 E씨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망진단서에서 회진 문제까지

이 밖에 의료진의 라운딩(회진) 미실시와 허위 답변 문제도 제기됐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직 간호사는 사건 당일인 5월7일 새벽 3시30분경부터 라운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5월6일 오후 10시경 이후 라운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간병인이 5월7일 새벽 0시경 A씨의 잠자는 모습을 확인한 만큼, A씨의 사망 시간은 5월7일 새벽 0시~5시10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됐다. 당직 간호사의 새벽 라운딩 시간과 겹치는 것이다. A씨의 유가족은 고소장에서 “의료기관인 요양병원에는 의료행위가 즉각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인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며 병원 측의 과실을 주장했다.

사건 당일 의료진의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당직 의사인 D씨는 A씨의 사망 원인을 ‘병사’로 명시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A씨는 사망 당시 침상 옆 바닥에서 엎드린 채로 발견됐다. 다른 사망 원인으로 낙상 등을 포함한 ‘외인사(자연사가 아닌 죽음)’나 ‘기타 및 불상’도 기재할 수 있었다. 이 밖에 A씨의 유가족은 고소장에서 “의료인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 이전 이미 피해자의 신체에 사후강직이 있었다”며 “그런데도 피해자의 신체에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폐소생술을 한 것은 시신을 훼손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피의자가 가해 행위를 해 입은 피해만 남아 사망의 원인을 유추하기 용이했을 것”이라고 했다.

복수의 의료계 관계자는 “허위 사망진단서 발급의 경우 사건 당일 해당 의사가 사인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사건 당일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는 정확한 검사를 바탕으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사인과 안 맞을 수는 있다”며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허위 사망진단서 발급으로 단정하기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A씨가 침상 옆 바닥에서 발견된 만큼 외상을 통해 알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의왕경찰서 역시 A씨의 발견 당시 자세가 자연사와 달라 부검을 의뢰한 바 있다.

요양병원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군의관 C씨는 군 수사기관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2월13일 해당 사안을 경찰로부터 이첩받아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개인적인 일탈 행위지만 군 기강 확립을 위해 법과 규정에 의거해 면밀하게 수사한 후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병원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됐다. 의왕서 관계자는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마쳤다”며 “그러나 사안이 복잡해 내년에야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병원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하고 질문을 남겼다. 하지만 병원 측은 “수사 종결 이후에 의견을 표명하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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