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요양시설 사고, 추락사·질식사에도 안전장치 없다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8 07:3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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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사 가능성에도 방범창 설치 않고 환자 방치하기도
요양병원 병실 CCTV 설치 의무화·간병제도 개선 목소리도

경기 의왕시 소재 S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환자 살인 사건’을 계기로 요양시설의 안전 사각지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병실 내 폐쇄회로(CC)TV 부재, 라운딩(회진) 미실시 등이 이번 사건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이 ‘안전장치’ 마련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요양시설 문제는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환자의 항문에 기저귀를 넣은 간병인, 결핵 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여해 살해한 의혹을 받는 요양병원장 등 환자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건이 반복됐다.

의료행위 과정에서 환자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한 요양병원 원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11월14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들, ‘환자 항문 기저귀’ 알고도 방치

인천지방법원 형사4단독 안희길 판사는 12월7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60대 간병인 A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4월24일~5월4일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재 요양병원에 입원한 60대 환자의 항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모두 10장의 위생패드 조각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의 배변 후 뒤처리를 수시로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해자는 뇌병변을 앓아 장애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A씨의 범행은 피해자의 가족이 피해자의 항문에서 이물질을 발견하며 발각됐다.

병원 근무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정황이 드러났다. 판결문을 보면, 간호조무사는 4월27일 피해자의 항문에서 위생패드 조각을 확인했다. 간병인 A씨가 4월24일 피해자의 항문에 위생패드 조각을 처음 넣은 후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는 “항문에서 나왔어요”라며 위생패드 조각과 피해자의 항문 사진을 간호사들의 단체채팅방에 올리기만 했다. 이를 관리자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간병인 A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위생패드 조각을 피해자의 항문에 추가로 넣었다. 이에 해당 요양병원장은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환자들의 간병, 관리 등에 대한 지도와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1심 재판부는 “요양병원 대표자인 B씨는 평소 입소자들의 현황과 건강 상태, 병원 내 근무자들의 근무 실태, 인력 배치, 시설 등에 대해 관리와 감독을 철저히 해 입소자에 대한 부당한 학대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장애인 환자에 대한 학대행위를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관리와 감독, 교육을 철저히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간병인 A씨와 함께 기소된 B씨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양병원장의 환자 살인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요양병원을 운영한 C씨는 2015년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결핵 환자 2명에게 염화칼륨(KCL)을 투약해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환자들은 투약 10여 분 만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KCL은 일부 국가가 사형 집행에 사용하는 약물로 알려졌다. C씨는 당시 혼자 환자들을 진료하고 약물을 주입했다고 전해진다. C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투약 행위에 고의성이 있다며 C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다만 법원은 “피해자들의 직접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직접 증거 역시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한 상황이다.

이번 의혹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8년여가 지난 후에야 제기됐다. 요양시설은 외부인이 허가 없이 출입하기 어려운 만큼, 보호자의 감시를 피하기 쉽다. 낙상 등 안전사고에 대비한 장치가 마련됐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보호자들이 사고 발생 직후 관련 안내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경기 의정부시 소재 한 요양원장 D씨는 2019년 5월 환자의 낙상 사고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보호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D씨는 2022년 1월13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른 사건은 어떠했을까. 시사저널은 최근 2년(2022년 1월1일~2023년 12월14일 기준)간 사법부가 요양병원·요양원 같은 요양시설의 안전사고와 관련해 내린 판결(63건)을 살펴봤다. 이는 낙상, 추락사·질식사, 폭행 등 환자의 안전과 관련한 내용이다. 판결문에는 요양시설 관계자들이 낙상, 음식물 섭취 등과 관련한 안전 문제에 주의를 소홀히 한 정황이 나타났다.

기저질환자에게 투약 안 해 사망하기도

경기 의정부시 소재 요양원에서는 2020년 4월23일 환자의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전조현상은 3일 전부터 있었다. 치매 환자는 4월20일 낙상 사고로 상처를 입었고, 하루 후에는 “집에 가겠다”며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는 결국 이틀 후인 4월23일 추락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창문에는 방범창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재판부는 2022년 1월26일 요양원장에게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요양원은 피해 환자가 추락, 낙상 위험이 있는 입소자임을 알았다”며 “그렇다면 입소자들의 추락을 막기 위해 창문에 방범창을 설치하거나 창문의 일부만을 열리게 하는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등 안전관리를 철저히 했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사건은 반복됐다. 70대 환자는 2022년 1월16일 경기 안산시에서 시설의 대피실 내 열려 있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사망했다. 요양원장 E씨는 다른 입소자를 찾기 위해 대피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자신을 뒤따라 들어온 피해 환자를 대피실 밖으로 내보낸 후 출입문을 잠그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의 경우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며 “요양원 내 대피실과 같이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의 출입 통제를 철저히 하는 등 돌발적인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한다”고 했다. E씨는 2022년 6월22일 벌금 900만원을 선고받았다.

요양시설이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지 않은 사건도 발생했다. 전북 부안군 소재 시설 운영자 F씨와 촉탁의사 G씨는 갑상선 절제술 이후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환자에게 2019년 1월15일부터 호르몬제를 투여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이에 따라 2019년 4월5일 응급 상황이 발생했고, 환자는 결국 6월20일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환자와 관련한 간호기록, 보호자의 제출 자료 등을 일절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재판부는 2022년 11월17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인정해 F씨에게는 벌금 700만원, G씨에게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밖에 강원도 춘천시에서는 요양보호사가 2020년 5월 피해자의 입안을 확인하지 않고 음식을 떠먹여 사망(기도폐쇄에 의한 질식)하게 한 사건도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받았다.

 

“복지부 관리·감독 강화가 현실적 대안”

전문가들은 요양시설 직원 교육 강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각에선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다른 규정이 적용되면서 생기는 문제도 제기했다. 병실 내 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가 대표적이다. 의료기관인 요양병원은 의료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병실 내 CCTV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 병원은 의료법상 수술실에만 CCTV를 설치한다. 반면, 노인복지법 등에 근거를 둔 요양원은 병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재원도 다르다. 요양병원은 건강보험에서,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받는다. 이에 따라 요양원 입소 환자들은 간병비를 보험에서 지원받지만, 요양병원의 경우엔 환자 개인이 간병비를 부담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등 인력 부족 문제도 제기된다.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현장에서 이동이 잦은 환자들을 부축하고 옮길 수 있는 남성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17개 시도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12월14일 기준 모두 7547곳이다(표 [전국 17개 시도 요양병원 및 입소형 장기요양시설 현황] 참조).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요양병원이 요양원 역할을 했지만 요양원 설립 이후 두 곳의 역할과 범위가 모호한 상황”이라며 “현실에서는 요양병원, 요양원의 역할이 혼재돼 있는 만큼 소속 직원들에 대한 교육,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설 관계자들과 환자, 환자 사이의 폭행 등 병실 내 안전사고를 간병인이 빠르게 알 수 있지만, 요양병원의 경우 1인당 간병비 부담이 커 공동 간병인 제도가 대부분이다”며 “간병인 제도 지원을 통해 여러 명의 간병인이 환자를 케어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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