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옵티머스 후폭풍이 바꾸는 증권가 기상도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9 07:3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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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흐림’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은 ‘잠깐 맑음’, KB증권 새 대표 이홍구는?

2019년 라임·옵티머스 펀드에서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지 4년 만에 사모펀드 판매사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제재가 일단락됐다. 금융위원회는 11월29일 제21차 정례회의를 열고 박정림 KB증권 대표에게 직무정지 3개월을,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는 문책경고를 내리는 중징계 안건을 최종 의결했다.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은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를 받으면서 경영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2021년 1월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금융정의연대 법률지원단장 신장식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월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금융정의연대 법률지원단장 신장식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0월28일 오후 1조6000억원대 피해가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와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 모습 ⓒ연합뉴스

금융위 징계에 희비 엇갈린 증권 CEO

금융위 징계 처분을 받은 증권사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금감원 제재심 결정인 ‘문책경고’보다 한 단계 낮은 처분을 받은 양 부회장은 안도했지만, 박 대표는 금감원 결정(문책경고)보다 한 단계 높은 제재를 받았다. 정 대표도 중징계를 받으면서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3~5년간 금융회사 취업이 제한된다. 금융회사 임원 제재 수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그래서일까. KB금융지주는 12월14일 계열사 대표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KB증권 대표 후보로 이홍구 현 KB증권 WM영업총괄본부 부사장을 추천했다. 추천 후보의 대표 선임은 12월 중 해당 계열사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심사와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한편 박 대표는 징계 처분에 즉각 반발했다. 박 대표는 징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중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동시에 냈다. 이에 따라 직무정지는 12월21일까지 해제됐다. 임기는 12월 말까지다. 박 대표는 지난달 금융위가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3개월 직무정지를 통보한 후 KB금융지주 총괄부문장과 한국거래소 사외이사를 자진 사임했다.

정 대표의 행보는 어떨까. 박 대표에 이어 금융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정 대표 또한 최근 소송을 제기했다. 정 대표는 12월11일 서울행정법원에 문책경고 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본안 소송 전에 법원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금융위가 내린 문책경고 효력은 정지된다. 연임도 가능해진다. NH투자증권 측은 “현재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과 달리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은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금융위로부터 경징계를 받은 만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양 부회장이 당시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지 않아 직접적인 결정권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제재 수위가 경감됐다. 이번 결정으로 선임 1년 만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양 부회장은 올해 3월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징계 리스크에서 벗어난 양 부회장은 대신증권을 이끌며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지정을 위해 힘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투사가 되려면 별도 기준 자기자본이 3조원을 넘어야 한다. 대신증권은 본사 사옥 매각 등 자본 확충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남았다. 라임펀드 관련 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 사태 관련 투자자와의 첫 민사소송은 지난 9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로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1심에서는 대신증권이 투자금 전액(100%)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2심에서는 80%로 비율이 낮아졌다. 투자자 측 대리인이 대법원에 상고한 만큼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끊이지 않는 대신증권 불완전판매 의혹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신증권은 최근 불완전판매 의혹에 휩싸였다. 대주거래 상품을 판매하면서 초기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무한 손실 여부에 대해 사전 고지하지 않은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주거래는 주식을 빌려 거래하는 개인 공매도다. 개별 종목 주식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증권금융이나 증권사에서 해당 주식을 빌려 판 후 주식 값이 판 가격보다 더 떨어지면 싼 가격에 똑같은 주식을 수량만큼 사서 상환함으로써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한 여성 투자자는 이 거래에서 투자 금액의 10배에 달하는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2월 대신증권 대주거래 상품에 2500만원을 투자했다가 투자손실금으로 2억2000만원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초기 투자자의 경우 3000만원까지 투자가 가능하다. 금융투자교육원 홈페이지에서 사전 교육과 모의투자 교육을 이수한 후 개별 증권사에 등록하면 누구나 투자할 수 있다. 이 여성은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두 종목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등해 원금의 10배 가까운 투자 손실을 입었다.

대주거래가 처음인 이 여성은 전문 투자상담사가 아닌 ‘고객감동센터’ 상담사와 전화로 계약했다. 대주거래가 성사되는 데 5분이면 충분했다.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계약서는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대신증권 측은 사전에 무제한 손실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고지하지 않았다. 손실액이 이렇게까지 불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짧은 시간 안에 위험성에 대해 모두 다 살피고, 거래하는 게 불가능했다.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대신증권에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하소연했다.

ⓒ대신증권 제공·KB증권 제공·NH투자증권 제공

대신증권 “내년에 예정대로 종투사 진입”

대신증권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거래의 경우 본인 인증 등 로그인 절차를 거치면 따로 계약서가 없다고 한다. 교육 이수와 투자성향 조사 등 사전에 대주거래가 변동성이 크고, 난도가 높은 투자인 줄 알면서 고객 스스로 자발적으로 투자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억울한 마음은 알겠지만, 비대면 시스템 절차에 따라 고객이 스스로 진행한 부분이다.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금감원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안타깝지만, 고객 스스로 책임질 부분이다. 손실을 보전해 주면 배임이 된다. 이 같은 관행이 반복되면 국내시장에 ‘증권투자 자기책임 원칙’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신증권은) 최근 오너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내년 상반기 중 무리 없이 종투사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옥 매각 없이도 자기자본 3조원은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황 위기 봉착에 증권가 CEO 교체설 ‘풀풀’

증권가 인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분위기는 연임으로 대부분 가닥을 잡은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 올해는 업황 위기에 일부 최고경영자(CEO) 교체설에 무게가 쏠린다. 자기자본 기준 상위 회사 26곳(외국계 제외) 가운데, 올해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CEO는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사장,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박정림·김성현 KB증권 사장,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사장,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 박봉권 교보증권 사장,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사장, 김병영 BNK투자증권 사장, 곽봉석 DB금융투자 사장, 김신·전우종 SK증권 사장, 임재택 한양증권 사장 등 16명이다.

가장 먼저 임원을 교체한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최 회장은 CEO직에서 물러나 고문직을 맡는다. 회사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차기 CEO를 선정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의 표적이 되면서 흔들리는 증권사 대표들도 있다. 메리츠와 키움증권이 대표적이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사모 전환사채(CB) 기획검사 결과, 임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 상장사가 CB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활용처를 제한하는 등의 행위가 적발됐다.

키움증권은 올해만 두 차례나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지난 4월 라덕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김익래 당시 다우키움 회장과 그의 친형은 주가조작 타깃 종목 중 하나인 ‘다우데이타’ 주식을 사전 매도해 도마에 올랐다. 최근 영풍제지 급락 사태에서는 다른 증권사와 달리 증거금률을 40%로 방치하면서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키움증권은 연내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신청을 계획했으나. 오너 리스크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발목이 잡혀 계획을 접어야 했다.

대형 증권사 CEO 교체 바람이 최근에는 중소형 증권사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교보, 하이투자, DB금융투자, BNK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 수장 인선에 관심이 쏠린다. 가장 먼저 12월8일 BNK금융지주는 자회사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신명호 전 유안타증권 IB부문 대표를 낙점했다. 2014년부터 CEO로 선임된 김신 SK증권 대표, 2020년부터 교보증권 대표를 맡고 있는 박봉권 대표, 곽봉석 DB금융투자 대표, 임재택 한양증권 대표, 최근 ‘부동산 PF 꺾기’ 관행 의혹을 받는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대표 등의 연임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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